2021. 7. 18. 21:48ㆍ 해외여행/2017 빈∙프라하 혼자여행
일기 아카이브/ 중부유럽 혼자여행
2017. 09. 07.
Frau Seack의 확언으로 더 이상 괴팅엔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제 그냥 떠나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8시 5분 기차를 타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사실 잠투정을 부리다 챙기는 게 조금 늦어져 그냥 10시에 갈까 했지만, 일단 기차역에 가보고 못 탈 것 같으면 그때 기다리지 뭐, 하고 떠났다.
우리와 다르게 유럽 기차는 출발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비행기처럼 좌석 값이 오르는 모양이었다. 분명 어젯밤에 보았을 때는 170유로대였던 가격이 출발 직전에 끊으려고 보니 180유로로 올라있었다!
그래도 KTX보다 편하고 쾌적했다. 해리포터에서 나왔던 것처럼 작은 탁자가 있는 방도 있었다. 아주 조용해서 잠자기에도 딱 좋았다. 사람도 몇 없고 내 옆에 공간도 있어서 캐리어 도둑맞을 걱정도 안 해도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트램, 버스 등을 탈 수 있는 티켓부터 끊었다.
트램!! 🚋
숙소가 있는 Westbahnhof(서역) 도착
게스트하우스 도착! 외관은 이래 보여도 안은 굉장히 깨끗했다.
내가 예약한 방은 4인실 혼성 도미토리.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한 방에서 묵어야 하는데, 금고가 있어서 마음이 조금 놓였다. 짐만 놓고 얼른 다시 나왔다.
그리고 간 곳은... ↓
비엔나에 와서 눈에 띈 것은 계속해서 일정한 소리를 내던 시각장애인 신호기. 모든 신호등에 음향신호기가 있고, 신호가 바뀌면 BPM도 달라져서 굳이 버튼을 누를 필요도 없었다. '시민 일반'의 범주가 확연히 다르다는 게 이런 데서 보인다.
버스치인 나는 여기서도 그 티를 팍팍 내고 다닌다. 트램을 반대로 탄 거다. 더군다나 내가 원래 타야 할 곳조차 아닌 곳에서 탔다. 방향이 틀렸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탄 셈이다. 한 정거장 뒤로 가서 원래 내가 탔어야 할 지하로 내려가는 트램을 탔으니까.
2017. 09. 08.
깜짝 놀란 사실! 호스텔을 나오다가 물이 있어서 마시려고 보니 'Tap Water(수돗물)'였다. 작은 글씨로 비엔나의 물은 95%가 알프스에서 바로 오기 때문에 음용이 가능하다 했다. 바로 옆 나라인 독일의 수돗물엔 석회가 한가득인데! 검색해보니 오스트리아 정부가 수질 검사엔 한 철저하단다. 그래서 Tap Water를 마음껏 마셔도 된다고! 물값을 아낄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물가 높은 도시에서 그나마 다행인 사실이다.
벨베데레 궁전을 둘러보며 느낀 감상은 여기에서 다루었다. ↓
그다음 행선지는 성 페터 성당 ↓
비엔나 3대 카페 중 하나라는 Cafe Landtmann에서 자허토르테와 아인슈패너를 시켜놓고 일기를 썼다. '유럽 거리의 노천카페에 앉아서 일기 쓰기'가 로망이었다.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근처 다른 테이블에 있는 손님 중엔 담배를 피우는 이들도 있었지만, 노천카페에 대한 로망이 간접흡연을 이겼다.
밤엔 미리 표를 예매해두었던 '한 여름밤의 꿈'을 관람했다. ↓
Westbahnhof(서역)에서는 항상 버스커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날의 아티스트는 Victor와 Kris. 하루 끝의 선물 같았던 공연이었다.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들의 콘서트를 누렸다.
2017. 09. 09.
인생 최초 후무스 도전했다. 윽 쨔 (정색)
(힁... 잉크 다 날아가고 있어...)
(저기에도 적어놨네 "진짜 맛없었다" ㅋㅋㅋㅋㅋㅋ)
아니 여기 뭔데 사진 이렇게 잘 나오는데
헤헤 두고두고 써먹는 인생샷 여기에서 다 건짐
여행하다 주워들은 로컬 수확제도 구경하러 왔다. 간간히 시식 코너가 있었다. 시식 코너 못 지나치는 사람... 나... ㅎㅎㅎ 시원한 생맥도 한 잔 사서 마셨다 🍺
수확제 이야기는 여기에서 다 풀었다~ ↓
비엔나 중심가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굉장히 넓은 공원 'Augarten'!
또 걸어 걸어 야외 테라스에서 와인을 마실 수 있는 바에 자리를 잡았다. 🍷
숙소 돌아갈 시간. 경유한 역 이름도 StadtPark(= City Park)
나는 잠자기 직전 이불 속에 들어가서야 마침내 꼼지락꼼지락 브라를 벗고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A 침대에 짐을 풀었던 여자애는 잠옷 그런 거 없고 그냥 팬티 바람이 곧 편한 차림이었다. C 침대 주인인 남자애도 트렁크만 입고 잤다. 잠옷을 챙기느니 배낭 무게를 줄이겠다는 거지. 와우... 쿨한 유럽 청년들...
2017. 09. 10.
오늘은 진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오늘 가는 곳은 '미술사 박물관'이니까. 스케일이 장난이 아닌 곳이다. 일단 미술관에 들어가면 뭘 먹을 수가 없으니까 근처에서 요기를 했다.
↓ 제목.. 제목..! 장장 여섯 시간 동안 박물관을 돌아다녔다.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파지니 더 이상은 그림에 집중이 안 돼서 나왔다.
(근데 기억이 안 난다. 이런 걸 먹었다는 것도 사진 한 장 남아있어서 알지, 어디에서 먹은 건지, 맛은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서역에 돌아왔는데 버스킹 존에서 Kris와 Victor가 또 공연을 하고 있었다. 다시 보니 더 반가운 마음! 전보다 모여 있는 사람도 더 많았다. 노래에 흥이 오른 한 아이가 나와서 춤도 췄다. ☺️ 노래를 듣다 이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졌다. 녹화 대신 녹음을 선택했다. (20분 가까이 되는 이 음원은 이후 여행 내내, 한국에 돌아와서도 자주 듣는 favorite이 되었다. 영화 비긴어게인 OST를 듣는 느낌이다. 들을 때마다 Westbahnhof에서 공연을 볼 때의 그 분위기가 떠오른다.) 감사한 마음에 지갑을 털어 관람료를 냈다.
너무 좋아.. 🥰 여러분도 꼭 들어보세요
2017. 09. 11.
가장 먼저 간 곳은 슈니첼 맛집 피그밀러! ↓
배 든든하게 채우고, 미술관 도장깨기의 마지막인 '알베르티나' 미술관에 왔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두 주인공이 아침을 맞이하던 곳.
비엔나 여행 내내 하루 일정은 미술관 하나, 카페 하나(+ 공연 하나)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유럽에 와서 가장 먼저 여행지로 선택한 곳이 비엔나였던 이유가 애초에 이 수많은 미술관들을 다 가보고 싶어서였으니까. 교환학생 1지망으로 썼던 곳도 사실 비엔나 대학이었다. 점심 먹고 산책하듯이 미술관에 올 수 있는 곳이 여기 비엔나 아닌가.
하지만 며칠 동안 말 상대도 없이 혼자서만 돌아다니고 밥도 대충 먹고 다닌 데다 흐린 날씨가 이어지니 조금씩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알베르티나 미술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Café Museum'을 찾아갔다.
Apfelstrudel(압펠슈트루델, 사과파이)과 Melage(멜란지) 커피를 주문했다. 압펠슈트루델은 오스트리아의 전통 음식이고 멜란지 커피는 'Wiener Melange'라는 이름이 있기도 한 비엔나의 스페셜티 커피다. 어, 그럼 '비엔나 커피' = '아인슈패너'라고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ref. 비엔나 커피 | 위키백과
- 멜랑슈(Melange)는 우유 거품을 올린 커피 음료이다.
- 아인슈페너(Einspänner)는 휩트 크림을 올린 커피 음료이다.
- 프란치스카너(Franziskaner)는 우유를 넣고 휩트 크림을 올린 커피 음료이다.
오, 위키백과피셜 비엔나 커피는 3종이었다.
아무튼 비엔나에서 먹은 다른 음식은 그다지 기억에 남은 게 없지만 이 압펠슈트루델만큼은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이날 비가 추적추적 내렸고 조금 쌀쌀했던 데다 나는 지치고 외로웠다. 그때 먹게 된 따뜻한 바닐라 소스가 곁들여진 달콤한 사과파이. 한 입 떠먹을 때마다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요즘도 그런 기분일 때면 압펠슈트루델이 먹고 싶다.)
비엔나 오는 기차표도 당일 아침에 기차역에 가서 끊었는데 다음 행선지 표라고 다를 게 뭐 있나. 혼자 다니는 자유 여행이니 어디로 가든, 언제 떠나든 내 마음이었다. 비엔나에서는 이제 보고 싶었던 것은 다 보았으니 다음 여행지로 떠날 때가 되었다. 할슈타트를 가고 싶었지만 날씨 운이 없어서 다음으로 미루고 프라하로 바로 넘어가기로 했다. 비엔나 버스 터미널에 가서 미리 표를 끊었다.
Verbindung: Wien → Prag
내일 밤 11:55에 출발해서 프라하에 새벽 4:30에 도착하는 일정. 밤에 움직이는 거라 요금도 저렴했다. 11.90유로! 아무리 그래도 국경을 넘는데 어떻게 고작 만 육천 원 밖에 안 하지? 다른 나라에 가려면 바다를 건너든 하늘을 날든 해야 하는 한반도 거주자로서는 마냥 신기한 가격이다. 하긴 근데 비엔나에서 프라하까지 거리는 차로 가면 330km 밖에 되지 않으니 그리 멀지도 않긴 하다. 서울에서 여수 가는 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내일 하루 종일 비엔나에서 돌아다니다가 잠은 버스에서 자야겠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 설렘보다 외로움이 더 커지는 때가 오자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예상보다 비엔나에 하루 더 머무르게 되면서 지난 며칠 묵었던 숙소를 연장하려 했는데, 내가 있던 자리는 이미 예약이 차서 다른 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나를 향해 인사하는 환한 목소리. ㅎㅎㅎ 가장 왼쪽의 닐과 가장 오른쪽의 아라는 이후 프라하에서 나의 동행이 되어주었다.
2017. 09. 12.
비엔나에서 머무르는 마지막 날. 며칠 전에 이미 왔던 벨베데레 궁전을 다시 찾았다. 상+하궁 티켓을 모두 끊었는데 8일엔 상궁만 봤기 때문!! 하궁에선 클림트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오늘도 비가 왔다. 전에 올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전엔 발랄하던 정원이 오늘은 차분하고 조용하다.
상궁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단출한 하궁.
'상대적'으로 단출하다는 거지 와서 보면 이 건물도 화려하다. 건물에 붙어있는 조각상이 몇 개야...
(하궁은 뚝딱 봤다. 하지만 써놓은 일기가 없다.)
맡겨두었던 캐리어를 챙기러 숙소에 들렀다. 숙소 게시판엔 아침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과 근처의 좋은 카페 추천 목록이 붙어있었다. 'with garden'에 꽂히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말에 Gardencafe를 골랐다.
끙끙대며 캐리어를 끌고 온 나를 살가운 얼굴로 맞아준 카페 사장님. 비엔나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간을 여기 정원에서 보냈다.
브이로그 재질 아니냐고 😂 혼자서 할 건 다 함 ㅎㅎㅎ 돌아다니면서 영상도 많이 찍었는데 왜 이때는 유튜브 해볼 생각이 없었을까
자허토르테를 점심 삼아 먹으면서 일기를 썼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 어디서든 시간만 나면 일기장을 펼칠 수 있었다. 케익을 밥 삼아 먹을 수 있는 것도 혼자 돌아다니니 가능한 일이겠지. 자세히 보면 9월 3일 자 일기 쓰고 있다. 사실 이렇게 쓴 일기는 Landtmann 카페에서 마시던 커피 이야기에서 진작 끝나버렸다. 이 글의 시점이 어느 순간부터 왔다리 갔다리 하는 건 그 이유다. 마치 그날에 쓴 것처럼 말하다가 다시 지금 시점(2021)에서 말하다가... 뭐 일기 아카이빙 글이니까 🤷🏻♀️
날씨가 춥긴 추웠던 모양이다. 9월 중순인데 가디건을 두 겹이나 입었네.
여러 비엔나 카페에서 보낸 시간은 이 글에 한데 모아 적어두었다. ↓
버스가 출발하는 자정까지 또 어딜 돌아다녔냐...
바로바로 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오페라 공연! 'Le Nozze di Figaro(피가로의 결혼)'을 보러 Wiener Staatsoper(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을 찾았다. 오늘 이 공연이 적절한 이유는 나에게 남아도는 시간과 티켓값을 맞바꿀 수 있기 때문. 바로 현장에서 구매하는 입석 티켓! 한국이나 오스트리아나 공연 티켓값이 만만치 않은 것은 매한가지지만, 나처럼 돈은 없고 시간과 체력은 넘치는 여행객이라면 당일 입석 티켓을 노려볼 수 있다. 일찍부터 가서 줄을 선 결과 4유로에 티켓을 살 수 있었다.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의 입석 티켓을 구매하는 팁은 여기(↓)를 참고하시길.
캐주얼룩만 챙겨 여행을 다니면 아쉬울 때가 있다는 걸 여기에서 알게 됐다. 드레스코드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내 캐리어에서 가장 격식 있는 옷에 가까운 게 이 정도였다. 셔츠와 가디건, 검은 바지. 극장엔 정장과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아니 정말로 '드레스'라고 하면 생각하는 진짜 그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 여행 중에 그래 저렇게 예쁜 옷 입고 서울에선 해볼 일 없는 경험을 여기에서 해보는 것도 좋았을 텐데 싶었다. 다음번에 여행을 간다면 적당히 격식 있고 우아해서 이런 공연에 입고 와도 좋고 레스토링이나 바에 입고 가기에도 괜찮은 옷 한 벌도 캐리어에 꼭 담아야지.
공연이 끝나고 예정대로 나는 야간 버스를 타고 프라하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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