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Neil과 Ara와 함께 한 프라하 여행

2018. 3. 12. 09:51해외여행/2017 빈∙프라하 혼자여행

할슈타트에서 하루를 보내고 프라하로 이동하려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흐린 날씨 때문에 빈에서 하루를 더 묵게 되었다. 마침 오페라 공연도 보고 싶었고, 벨베데레 하궁도 마저 보아야 했기에 빈에 더 머무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서역에서 머무르던 숙소가 깨끗하고 마음에 들어서 하루 더 연장하려 했더니 가능은 한데 방은 옮겨야 한다고 했다. 전날 밤에 방 문제로 난리를 쳤던 투숙객 한 명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원래 묵었던 바로 그 방이었다. 그 사람이 소동을 피울 땐 몰랐지, 덕분에 이렇게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될 줄은.

 

새 방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먼저 입실한 두 사람이 보였다. "Hello!", 한 마디 했을 뿐인데 한 사람이 엄청 흥분해서는 "You are korean!!!!" 하고 반겨주었다. 그 짧은 단어에 한국인이 하는 영어 특유의 인토네이션이 있었단다. 직장 동료인데 같이 유럽을 여행 중이라는 두 사람은 닐(Neil)과 아라(Ara), 두바이에서 근무 중인 필리핀인이었다. 한국 연예인이나 TV 프로그램에 무척 관심이 많았고, 특히 닐은 관심 수준을 훨씬 넘어선 열혈팬이었다.

 

이야기 소재가 다양한 만큼 밤새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유명하면서도 잘 모르는 두바이에 대해 두 사람이 정말 많은 걸 알려주었다. 두바이에서 술을 사려면 별도의 라이센스가 필요하다는 것, 사과 하나조차도 곧장 배달해준다는 슈퍼마켓. 여름엔 숨막히게 덥지만, 대신 에어컨이 없는 곳이 없다는 것! 심지어 버스정류장에도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다고 했다. 두바이에서 돈을 모으려는 노동자들은 여러 명이서 한 방을 같이 빌려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 거주 환경을 들어보니 한국의 고시촌보다도 열악한 상황이었다. 또, 두바이로 사업 진출을 하려면 막대한 세금을 내야 하는데, 그걸 피하려면 현지인을 스폰서로 끼고 들어가야 한댔다. 대신 그 스폰서와 사업 이익을 거의 1:1로 나누어야 한다고. 꿈을 바꾸었다. 두바이 현지인으로...! 아무튼, 그런 두바이에 스폰서를 끼지 않고 들어온 기업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애플! 애플의 고고한 자존심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이 업인 중년 아저씨도 만났는데, 한국도 물론 와본 적이 있고, 심지어 한국의 문화도 굉장히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 전에 판문점을 갔다가 일행을 두고 먼저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되었는데, 나중에 한국인 친구가 깜짝 놀라 얼른 나오라고 하면서 그 식당은 'Dog-restaurant'*이라고 해서 충격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진짜 엄청나게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그게 dog food였다니! 그 이야기를 듣고선, 엄청 웃으면서 한국에 개를 위한 식당 같은 건 없다고, 한국에서는 별로인 거 앞에다 prefix로 '개'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친구분이 그런 의도로 말한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여전히 아저씨는 반신반의했지만, 친구분이 했다는 말 뉘앙스가 아저씨가 하필 그 식당을 고른 걸 탓하는 듯 했던 걸 보면, 골라도 맛없기로 유명한 집을 골라 갔다는 말을 하려 한 게 아닐까 싶다.

*시간이 흘러 다시 생각해보니, 'Dog-식당'이 보신탕이나 개고기를 파는 식당을 말하는 것 같다. prefix론보단 그게 더 말이 되지 않나?

 

영국이 EU 탈퇴를 결정하면서 아일랜드 여권을 신청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이 늘었다는 이야기도 아저씨가 해줬다. 자신은 그래서 여권이 두 개라고! 이때까지만 해도 영국과 잉글랜드, 아일랜드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이해하기가 좀 복잡했다. 나중에 Herbst Kurs에서 동급생 아일랜드 출신 친구들의 발표와 질문 응답을 들으며 영국이란 나라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 건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자신은 아일랜드 출신이니까 브렉시트에 대해 묻지 말라고 단호히 선 긋는 걸 보면서 정말 영국이란 나라도 복잡하구나 생각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김정은이나 북한의 핵 도발 운운하며 의견을 묻는 사람이 정말 많은데, 아일랜드 친구들한테도 브렉시트 질문이 그렇게 느껴지겠거니 생각하면 그들 마음이 심히 공감이 된다.

 

닐과 아라는 원래 다음 날 새벽 Flixbus를 타고 잘츠부르크로 갈 예정이었다. (잘츠부르크는 'Salzburg', 영어식으로 읽으면 '살쯔벍으'라서 이것도 알아듣는데 애를 먹었다.) 그런데 한 시간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아 결국 잘츠부르크로 가는 걸 포기하고 숙소로 되돌아왔다. 우연하게도 그들의 다음 행선지도 프라하! 프라하에 머무르는 기간이 나랑 정확하게 겹쳤다! 그곳에서 다시 만나 함께 여행을 하기로 약속을 했다.

 

 

 

 

새벽의 까를교

자정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프라하로 넘어갔다. 도착하니 새벽 네시 반, 구시가지 광장을 가로질러 호스텔에 짐을 맡기고 까를교에 도착했을 땐 새벽 여섯시 반이었다. 해도 아직 뜨지 않은 시간, 깜깜하고 고요한 까를교에서 혼자 낭만 넘치게 야경을 즐겼다. 

 

 

해가 뜨는 시시각각 하늘의 색이 바뀌었다. 9월 맞나 싶을 정도로 이가 덜덜 떨리게 추운 날씨였지만 한 시간 동안 타임랩스를 찍으며 일출을 지켜보았다. 언제 이렇게 사람 없는 까를교를 보겠나. 나중에 가족들한테 까를교에서 찍은 영상을 보냈더니 엄마가 너무 낯익은 풍경이라 생각해봤더니 바로 전날 본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 나온 곳이었다며 반가움과 부러움이 섞인 감탄을 하셨다. 맞네, 뷰티 인사이드에서 보고 나도 참 아름답다 생각했던 배경인데 거기가 프라하였구나.

 

 

 

 

해가 막 떠오르는 아침, 까를교 건너엔 화가 한 분이 아침의 색감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었다. 많은 사람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게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그림 그리는 일에 너무 몰두해서 그런 시선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

 

 

카메라가 내 손에 있으니, 여행하는 나를 담지 못하는 게 아쉬워 유리에 반사되는 내 모습이 보일 때마다 열심히 찍었다. 프라하 성 올라가는 길, 갤러리 창문.

 

 

언제나 사람 가득하고 북적이는 프라하 성 앞 광장도, 이른 아침에 오니 경찰과 비둘기 뿐이었다.

 

 

프라하 성 최고의 뷰포인트라는 스타벅스. 오픈까지 한 시간이 남아서 주변을 한참 둘러보다 돌아와 오늘의 1등 손님으로 가게에 들어섰다. 문을 열어 준 점원을 따라 내려가는데, 학생이냐고 물으면서 오늘의 첫 번째 손님이니 엑스트라를 무료로 추가해주겠다고 했다. :)

 

 

아침 식사와 라떼 한 잔을 주문해놓고 창가에 앉아 경치를 즐기면서 일기를 썼다. 닐과 아라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프라하가 한국인에게 유명한 관광지라는 걸 새삼 실감케 한 (1)

프라하가 한국인에게 유명한 관광지라는 걸 새삼 실감케 한 (2)

 

첫 번째 설명문이 체코어, 두 번째는 만국 공용어인 영어, 그리고 세상에 세 번째가 '한국어'였다. 스페인어도, 독일어도, 중국어도 아니고 '한국어'라니. 여기 스타벅스에 한국인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서 정말 웃겼다.

 

 

프라하 성 앞에서 닐과 아라를 만나, 다시 점심을 먹으러 강변으로 내려왔다.

 

 

닐은 사진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스타일이었다. 가장 신나서 뛰어다니고, 번거롭다는 생각 일절 하지 않고 언제나 셀카봉을 꺼내 들었다. 또 예쁜 스팟을 발견하면 사람마다 다 돌아가며 사진을 찍어주고, 그 모양 그대로 자신도 찍어주길 바라는 스타일! 혼자 여행하면서 내 사진은 거의 못 찍었는데, 닐 덕분에 프라하에서 사진과 영상을 정말 많이 남겼다.

 

 

 

"영!! 여기 서봐!! 이거 완전 인스타감이야!!"

라고 하면서 닐이 찍어준 사진 ㅋㅋㅋㅋㅋ

 

 

 

 

 

 

 

아라가 데리고 온 식당! 여기다가 우산을 두고 나왔는데, 다음 날 아침 비가 올 때까지도 우산을 잃어버린 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웨이터가 잘 챙겨두어서 아침에 찾으러 갔더니 바로 웃으며 건네주었다. : )

 

아라는 겨울에 프라하에 한번 온 적이 있단다. 그때 얼마나 추웠는지, 사람들이 길을 걸어가는데 와인을 한 잔씩 들고 다녔다고 한다. 계속 몸을 덥히려고! 눈이 마주치면 같이 Cheers~하기도 했단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 시간 맞춰 와서 작은 이벤트도 보았다. 천문시계 앞은 사람이 워낙 붐벼서 소매치기가 많으니 주의하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닐과 아라도 내게 가방 잘 챙기라며 두번 세번 주의를 주었다. 언제나 가방 지퍼를 잠근 채 손에 쥐고 있지만 이때는 더 꼭 쥐고선 잔뜩 긴장한 채로 시계를 구경했다. 

 

 

대리석이 깔린 프라하의 도보는 밤이 되면 노란 가로등 불빛이 반사되면서 금빛으로 빛난다고 했다. 닐, 아라와 헤어지고선 잠시 숙소에 들려 쉬다가 밤 거리를 거닐러 다시 나왔다. 비가 촉촉히 내리기 시작하면서 도보가 정말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존 레논의 벽.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는 비틀즈의 곡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그래피티. 한 버스커가 존 레논의 'Imagine'을 부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와중에도 노래 가사가 하나 하나 들려서 혼자 또 차분해진 마음으로 한참을 서서 노래를 들었다.

 

 

 

 

닐이 이거 봐야 한다며 데리고 간 카프카 상! 닐은 저 얼굴이 딱 맞춰지는 순간 셀피를 찍어야 한다며 만전을 기했다. 영광의 사진은 그의 스토리로! ㅎㅎㅎㅎㅎ

 

 

닐이 여행 내내 이걸 찾고 싶어서 서점을 기웃거렸다. 알고 있는 정보라곤 이게 책 탑이라는 것과, 어떤 서점에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검색을 하다 얼핏 비슷한 걸 본 것도 같았는데 다시 찾으려니 도저히 모르겠어서, 이걸 찾는 건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닐이 무척 아쉬워했다. 시청 뒷편에 숨겨진 신기한 엘리베이터를 타보고선 나오는 길에 얼결에 사람들에게 묻다보니 찾아냈다! 도서관 홀에 떡하니 서 있는 책탑이었다!

 

 

하나 쓱 뽑으면 우수수 무너져 버릴 것 같았지만, 얼마나 위에서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지 웬만한 힘으로는 절대 안 빠질 정도로 단단히 쌓여있었다!

 

 

닐이 프라하 최고의 뷰라며 데리고 갔던 곳! 전망대 입장료 내고 들어가는 것보다 음료 한 잔 사먹고 전망대에서 뷰까지 즐기는 게 훨씬 더 이득이었다! 날이 추워 아라랑 나는 핫초코 한 잔씩 마시고, 닐은 맥주를 주문했다. 하루 내내 흐렸던 프라하인데, 떠나기 전 제대로 선물 주려는 듯 하늘 구름 다 걷고 능선 뒤로 넘어가는 해를 보여줬다. 여행 중 보았던 그 어떤 풍경보다도 아름다웠던 장면이었다.

 

원래 밤엔 호스텔에서 만난 사람들과 유명하다는 프라하 클럽에 놀러가볼까 했는데, 닐과 아라에게 그 이야길 했더니 심각한 얼굴로 날 만류했다. 그 사람들이 날 책임져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최악의 경우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정 가고 싶으면 자기들이 같이 가주겠다고. 헝ㅠㅠ 언니 오빠 마음...

 

 

닐, 아라와 작별인사를 나누어야 했던 날. 닐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처음 만난 사람들 함부로 따라가서 클럽 가거나 술 마시거나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날 아줌마라 부르며 계속 장난을 치던 닐은 여행이 끝나고도 가끔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 : ) 이 친구들을 만나러 언젠가 꼭 두바이에 갈 수 있기를!

 

 

프라하에 머무를 시간이 조금 더 길었던 나는 강 건너에 있는 레트나 공원의 비어 가든에 놀러갔다. 전날 밤의 뷰만큼은 아니었지만, 올드 타운이 내려다 보이는 예쁜 경치였다. 코젤 다크 맥주 한 잔 주문해 앉아서 공원에 놀러오는 사람 구경도 하고 여유롭게 일기도 썼다.

 

 

 

떠나기 전, 숙소 근처에 있던 젤라또 맛집에 찾아가 남은 돈을 탈탈 털어 한 컵 사먹었다! : ) 그러고도 남은 잔돈은 떠나는 차 타기 직전에 역에 있던 햄버거 가게에서 제일 작은 감자튀김과 제일 작은 콜라를 주문했더니 동전 두 개 남기고 다 쓸 수 있었다. 날씨가 꾸리꾸리해지고 점점 외로움을 타기 시작하려던 차에, 너무나 좋은 동행을 만나 행복한 기억을 가득 채울 수 있었던 프라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