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벨베데레 궁전의 하이라이트, 클림트 '키스'

2017. 10. 5. 20:28해외여행/2017 빈∙프라하 혼자여행

벨베데레 궁전 / Schloss Belvedere

 

 

주소_Prinz Eugen-Straße 27, 1030 Wien

전화번호_+43 1 795570

웹사이트_belvedere.at

개장시간_09:00~18:00 (금요일 ~ 21:00, 휴무일 없음, 하궁은 10시부터 개장)

입장료_상·하궁 성인 20€, 학생 17€

오디오가이드_한국어 지원 4€ (상/하궁 별도)

 

 

미리 준비할 것_유튜브 한국어 오디오가이드 미리 듣고 더 알차게 감상하기(클릭)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는 좀 부실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영어 버전을 빌려서 들었다. 설명이 알차긴 했는데 벨베레데 상궁이 워낙 커서 스킵한 것도 적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어 가이드를 빌릴 걸 그랬나(T_T) 그건 그렇고, 유튜브에서 주요 작품을 한국어로 설명한 가이드가 있길래 미리 듣고 가려 했는데, 재생만 하면 5분도 채 듣지 못하고 잠드는 바람에 결국 듣지 못하고 구경을 했다. 그래도 빈과 프라하에서 매일 밤 이걸 자장가로 삼아 꿀잠을 잤으니 덕을 톡톡히 보았고, 그러면서 끝까지 다 들었으니 스스로가 참 기특도 하다. 그래도 전시를 꼼꼼히 보아서, 후에 들어도 상상이 어렵지 않았다.

 

* 2017년 10월 8일까지는 제체시온의 베토벤 프리즈팔라스 아테나가 벨베데레 하궁에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클림트의 작품을 보고 싶어 벨베데레에 가는 사람이라면 하궁의 클림트 특별전을 놓치지 말자.

 

 

 

우리는 'Belvedere'라는 이름 그대로, 혹은 독일어 읽듯이 '벨베데레'라고 읽는데, 영어로는 '벨베디어[|belvədɪr]'라고 읽는다. 이외에도 다수의 지명을 한국어와 다르게 불러서, 호스텔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조금 애를 먹었다. 프라하는 '프라그', 잘츠부르크는 '살쯔버그', 바르샤바는 '월사아'(충격!)라고 한다. 하아? 아니 도대체 한국어로 다른 나라 이름이나 지명을 명명하는 건 왜 규칙이 없는 것 같지? 미국, 독일처럼 애초에 중국에서 부르던 이름을 수용한 건 그렇다쳐도, 에스토니아는 영어 그대로 에스토니아라고 부르면서 프라하는 체코어로 부르고, 괴팅엔은 또 독일어 발음대로 읽지 않고 표기 그대로 괴팅겐이라고 읽는다. 벨기에도 맨날 벨기에라고 부르는데, 영어로는 뭐라 부르는지 몰라서 무척 당황했다. 벨지움이란다.

 

 

 

 

 

각설하고 벨베레데 궁전 가는 날은 날씨가 진짜 청명했다. 이 좋은 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40분까지 그 황금 시간대를 건물 안에 있었다. 프라하에서의 날씨를 생각하면 경로를 반대로 짤 걸 싶어 아쉽기는 하다. 어쨌거나 총 4시간 40분을 상궁 하나 돌아보는데 써야 했으니, 그 정도로 진짜 크고 볼 것도 많은 Museum이었다. 상궁만 보는데도 지쳐버렸는데, 다행히 상·하궁 티켓을 동시에 끊어도 한 달 안에만 쓰면 된다기에 하궁은 며칠 뒤에 다시 가서 관람했다.

 

 

 

 

 

벨베데레 궁전의 정원에는 스핑크스 조각상이 놓여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스핑크스 가슴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어서 가슴이 까무잡잡하단다. 가슴을 만지고 갔는데 퍽이나 이뤄주겠다.

 

 

 

 

 

정원이 예쁜 건 정원에 있을 때는 잘 모르겠는데, 궁전 높은 곳으로 올라보면 오, 하고 꾸며놓은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정원에 대한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어서 나는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잘 나온 사진을 인스타에서 보고 간 호스텔 룸메들은 정원 보러 벨베데레 갔다가 엄청나게 실망하고 돌아왔단다.

 

 

 

 

 

 

 

 

Gustav Klimt: Kiss, 1907-1908

 

입구에서부터 이미 '아 이거 오래 걸리겠군'하고 각이 나와, 아예 클림트의 그림이 있는 층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다만 처음부터 하이라이트를 봐버리면 나머지 그림들에 흥미를 잃을 것 같아서, 클림트의 방을 그 층 맨 마지막에 보기로 했다. 글에선 하이라이트부터 빵! 클림트의 그림이 한데 전시된 방은 들어서기도 전에 키스 그림이 있겠구나, 알 수 있었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그림 앞에 우글우글 모여있는 모습이 방에 들어서기도 전에 보였기 때문이다. 가슴이 막 두근거렸다. 드디어 '키스'를 본다니!

 

하지만 너무 기대가 컸나보다. '키스'는 생각보다, 뭐랄까, 초라했다. 엄청난 크기일 줄 알았고, 엄청난 황금빛일 줄 알았고, 정말이지 오금이 저려 옴짝달싹 못할 줄 알았는데……. 이 그림을 보았던 수많은 이들이 그림 앞에서 두 시간을 서있었다느니, 너무 황홀해서 압도되었다느니 그런 경험담을 풀던데… 그림 앞에 서서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는 말이 옳다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물론 그래, '키스'는 인쇄해서는 볼 수 없는 실물만의 황금빛을 가졌다. 하지만 그 황금빛은 해질녘 태양이 만들어내는 찬란함에 비견할 바가 되지 못했다. 아름다운 그림이었지만 그 황홀경이라는 것을 나는 느끼기 어려웠다. 아마도 내가 키스 그림을 듣도 보도 못했다면, 오스카 코코슈카의 자화상을 만났을 때처럼 그렇게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Egon Schiele, Death and the Maiden, 1915

 

클림트의 '키스'와 비교하며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는 에곤 쉴레의 '죽음과 소녀'. 레오폴드에서도 이 그림에 대해 짧게 들었다. 클림트의 '키스'가 하모니와 안락함을 담았다면 이 그림은 love, suffering and death라고. 고통을 피하려는 듯 부둥켜 안은 두 사람의 모습이 처절해보였다. 병 들어 죽어가는듯한 남자, 두려움 가득한 그의 표정…… 제목을 생각하면 그가 '죽음'인걸까도 싶지만, 개인적으로는 죽음이 깃든 남자와 그를 붙잡은 여자로 읽혔다.

 

에곤 쉴레의 그림에서는 주인공들이 시선을 맞추는 경우가 없다는 설명이 흘러나왔다. 참 아프다.

 

 

 

 

 

다시 키스 그림으로 돌아와서. 사람들이 참 사랑하는 그림이다 정말. 모나리자를 보려고, 찍으려고 아둥바둥하는 사람들을 뒤편에서 멀찍이 찍은 사진이 생각나, 비슷하게 찍어보았다. 이 그림 하나 보려고 여기까지 왔다. 당대에는 그렇게 지탄받던 화가가 이제는 도시와 나라를 먹여살린다. 클림트가 하늘에서 보고 있다면 정말 우스워하겠다.

 

 

 

 

 

사실 '키스'는 절대 절대 절대 사진 촬영이 불가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촬영이 허가되고 있어서 의아했다. 사람마다 말이 다른데, 혹자는 3개월 전부터 플래쉬 없는 사진 촬영을 허가했다 하고, 또 다른 혹자는 사진 촬영을 허하는 날이 있는데 운이 좋게 걸린거라 한다. 무슨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엄중히 금하던 촬영을 이렇게 허락하는 걸 보면 혹시나 가품을 걸어놓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옆 방으로 나가니 기념촬영용 '키스'가 따로 있었는데, 진짜 키스 앞에서 찍으나 가짜 키스 앞에서 찍으나 여기 온 것은 똑같은 것을, 굳이 눈총 받아가며 안에서 찍을 필요 있나 싶다. 이렇게 혼자서 키스 그림을 독차지할 수 있는데! 헿ㅎㅎㅎ

 

 

 

 

 

놀람과 답답함을 동시에 가져다 준 것은, 키스 그림 옆에 놓인 '시각장애인을 위한 <키스>'였다. 이것도 긴 설명을 줄줄줄 달아놓은 것을 보면 이 시도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듯 하지만, 나는 좀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 황홀한 황금빛이 굳이 여기까지 와서 '키스'를 보는 이유인데, 이것으로 시각장애인분들이 여기까지 오는 수고를 감수할 수 있을까? 이 촉각이 그 황금빛과 황홀을 말해줄 수 있을까? 이 활동에 의미부여를 하고 싶었다면, '키스' 하나만 만들어서는 안 되었던 것 아닌가?

 

'글쓰기의 기초'를 수강했을 때, 한 팀이 이것을 주제로 삼았다. 시각장애인들의 미술관 경험. 하지만 주제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결국 다른 주제로 변경하고 말았다. 정보가 너무 없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기가 무척 어려운 탓이었겠지. 가끔씩 나도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지만, 여전히 생각이 제자리 걸음이다. 웹 프로그래밍 개론 수업을 들을 때,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 내가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세상에서 지워버린 사람들이 있었구나-. 언젠가 그림에 온도를 더하는 아이디어를 본 적이 있다. 정보문화학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로는 저 아이디어에서 더 나가볼 수 있지 않을까 자주 고민한다.

 

 

 

 

Gustiv Klimt: Portrait of a Woman, 1894

 

 

 

 

Gustiv Klimt: Amelie Zuckerkandl, 1917-1918

 

오히려 재미있었던 것은 '키스'의 오른쪽 벽에 걸려있었던 이 초상화다. 얼마나 클림트의 인기가 대단하면, 그리다 만 그림마저 이런 곳에 전시를 해놓을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Bride'에 대한 설명을 듣고 미완의 그림이 여기에 걸릴 수 있었던 이유를 듣게 되었다. 클림트가 워낙 대단하기 때문이 맞긴 한데 정확히는 미완성 그림에서 그의 페인팅 방식이나 순서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말을 듣고 그림을 보니, 클림트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쓰려고 하는 색을 살짝 칠해보면서 색조합을 고민하는 모습, 그림에 색을 칠하다 마음에 바뀌어서 도중에 스케치와 다르게 칠해버리는 모습……. 화가들의 드로잉 만큼이나 그들의, 작업실, 그들이 민낯을 볼 수 있어 흥미로운 게 미완성 그림이구나.

 

 

 

 

Gustiv Klimt: Bride, 1917-1918

 

클림트가 정사각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시도를 한 게 당시 상당히 혁신적이고 충격적이었단다. 인스타그램이 초기 앱의 아이덴티티로 정사각 형태를 내세워 화제가 되었던 것이 떠올랐다. 인스타는 모바일 환경에서 사진의 대상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고, 정사각의 형태가 그 기능을 수행했다는데, 클림트의 정사각 틀은 무슨 의미였을까? 탈(脫) 외의 어떤 의도나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진다.

 

 

 

 

Gustiv Klimt: Judith Ⅰ, 1901

 

'유디트'는 원래 하궁에 있었는데 상궁으로 옮겨져서, 이제 키스와 유디트 모두를 상궁에서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나야 어차피 하궁도 볼 작정이었으니 크게 상관은 없지만, 시간이 급해 상궁만 보는 사람들에게는 기쁜 소식이다. 클림트의 유디트를 볼 때는 흔히 말하는 그 '에로틱'이 뭔지 느끼지 못했는데, 나중에 다양한 시대의 유디트를 보고 나니 왜 클림트의 유디트가 그렇게 문제적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눈을 맞추고 눈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 정말 야하긴 하구나 싶다.

 

 

 

 

Anselm Feuerbach: Orpheus and Eurydike, 1869

 

이 시대의 그림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차용한 것이 많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렸을 적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만화 그리스로마신화가 일평생 두고 두고 도움이 된다. 특히나 벨베데레와 미술사 박물관에서 읽은 보람을 톡톡히 누렸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지상으로 다시 데리고 오기 위해 지하 세계까지 수많은 이들을 하프 연주로 감동시켜 설득했던 오르페우스. 지상으로 완전히 나갈 때까지 절대 에우리디케를 뒤돌아봐서는 안된다는 조건으로 그녀를 되살릴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지상에 발을 딛으며 오르페우스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고, 미처 다 나오지 못했던 에우리디케는 다시 지하세계로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그림의 왼쪽 상단을 보면 희미한 빛이 보인다. 에우리디케를 지상으로 거의 다 데리고 나온 이 희망 가득했던 순간…….

 

 

 

 

 

이 큰 방의 한 벽을 가득 메운 그림도 있었다.

 

 

 

Giovanni Segantini: The Evil Mothers, 1894

 

 

 

 

 

액자가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던 이 그림은, 무려 트로이 전쟁의 시발점이었던 이야기를 담았다. 바로 파리스 왕자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께'라고 적힌 황금사과를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 중 누구에게 줄 지 고민하는 장면이다. 파리스에게 사과를 받은 아프로디테는 그 보답으로 파리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나와 맺어줄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헬레나는 이미 유부녀였고…… 파리스는 스파르타의 왕비였던 헬레나를 납치해서 트로이로 돌아와버렸다. 둘의 불륜으로 인해 어마무시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이때 사과를 받지 못해 자존심이 상한 헤라와 아테나는 당연히 스파르타를 지원하고, 아프로디테는 트로이 편에 선다.

 

근데 보면 볼수록 드는 생각은, 이 시대의 사람들, 그냥 신화 차용해서 명목만 그럴싸하게 만들어 놓고선 사실 눈요기 할 그림을 원했던 것 아닐까 싶은 거다. 화가의 철학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그림을 요청해서 벽에 걸어두고 싶었을 주문자들은.

 

 

 

 

Rudolf von Alt: St Stephen's Cathedral in Vienna, 1832

 

빈의 그 유명한 성당, 성 슈테판 성당을 그린 그림이다. 아직 성당을 보기 전이었어서, 여전히 이런 모습일까 궁금했었다.

 

 

 

 

August Schaeffer von Wienwald: Sankt Gilgen, 1900

 

오묘한 색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던 아우구스트 섀퍼의 그림.

 

 

 

 

Honoré Daumier: Sancho Pansa, Resting under a Tree, c. 1860/1870

 

낭만주의를 지나 반작용으로 등장했다는 리얼리즘의 시대. 'Sancho Pansa, Resting under a Tree'를 보며 잘 몰라서 눈길 주지 않고 지나간 재미있는 그림이 얼마나 많을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 그림은 돈키호테와 산쵸 판자라는 인물을 통해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대조한 그림이라 한다. 돈키호테가 이상주의의 대표적인 캐릭터로 그려지는 건 알았지만, 소설은 읽은 바 없어 산쵸 판자라는 인물은 알지 못했고, 그 탓에 이런 재미있는 그림을 놓칠 뻔 했다. 가만 보면 산쵸 판자의 표정이나 자세, 색이 저 뒤의 실루엣만 보이는 돈키호테와 완전 대조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Claude Monet: Path In Monet's Garden in Giverny, 1902

 

록빈이가 지베르니에 다녀오면서 내 생각고 모네 그림 엽서를 여러 장 챙겨 선물로 주었다. 지베르니의 정원이라 하면 연못과 다리 생각이 가장 먼저 드는데, 정원으로 가는 길마저 이렇게 예쁘다면 정말 그림을 안 그리고선 배길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림만 봐도 감탄이 나오는데, 직접 그 정원을 보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예쁜 걸 보면 카메라를 꺼내 드는 지금의 우리처럼, 모네는 이젤을 세워놓고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을 거라 생각하면 괜한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동질감 느껴도 되는 레벨인가...)

 

 

 

 

Vincent van Gogh: Wheatfields near Auvers-sur-Oise, 1890

 

모네의 그림 옆엔 고흐의 그림 한 점도 전시되어 있었다. 미알못인 나조차도 딱 보는 순간, 어 고흐인가? 하고 알 수 있었던 그의 화풍! 고흐의 눈엔 밀밭이 이렇게 울렁울렁 펼쳐져 있었던 걸까. 기차에서 창 밖으로 너른 평원이 보일 때 고흐의 이 그림이 문득 생각났다.

 

 

 

 

 

다시 일층(E)으로 돌아와 구경했던 중세의 작품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이쪽은 대부분 성경의 주요한 장면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옮긴 것이 많았다. 예수, 마리아, 막달레나,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만 찾을 줄 알아도 꽤나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어느 그림이든 예수를 표현한다면 절대 빼먹지 않는 것이 손바닥의 못자국, 발의 못자국, 오른쪽 갈비뼈 아래의 상처, 그리고 가시관이었다. 단일한 책 한 권, '성경'으로부터 시공간을 뛰어 넘어 이다지도 많은 작품들이 그려지고 조각되었다는 게 생각할 수록 엄청나게 느껴졌다.. 그 모든 그림이 정말 약속한 듯 ('듯'이 아니지. 약속했지.) 같은 주제를 변주하면서 같은 상징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종교의 영향력이 실로 이정도인가, 감탄을 넘어 소름 돋을 정도였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가 다 되도록 구경했는데도 상궁 하나 채 다 보지 못한 벨베데레. 후아! 다음에 또 가도 못 본 그림 수두룩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