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부르크 극장에서 'Ein Sommernachtstraum(한여름 밤의 꿈)', 뮤지컬인 줄 알았다가……

2017. 10. 20. 02:13해외여행/2017 빈∙프라하 혼자여행

한여름 밤의 꿈 / Ein Sommernachtstraum

at 부르크 극장(Burgtheater)




주소_Universitätsring 2, 1010

전화번호_+43 1514444140

웹사이트_https://www.burgtheater.at/de/

발권(티켓팅)_https://www.culturall.com/ (한국어 지원)




빈에 온 이상 오페라나 뮤지컬 하나는 꼭 보고 가리라 마음을 먹었다.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입석을 끊어 들어가려면 몇 시간 전부터 줄을 서야 한다기에, 편하게 볼 수 있는 다른 공연은 없을까 하다 Culturall이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3유로 내외의 저렴한 좌석도 예매를 해놓고 시간 맞춰 가서 편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내용을 어느 정도 아는 공연이 재미있겠지 싶어서 부르크 극장에서 하는 'Ein Sommernachtstraum'을 보기로 했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초등학생 때 책을 읽어서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공연을 보면 기억이 날 거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뮤지컬'이니까 대사 하나 하나 이해 못 하더라도 못 즐기진 않을 거라 생각했고, 영어 자막도 있을 테니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입석을 끊으려다가 그래도 하루 내내 여행하고 가서 보는 건데, 앉아 보는 게 더 좋겠지 싶어 11유로짜리 꼭대기 층의 좌석을 끊었다.






부르크 극장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너무나 화려했다. 특히 천장화에서 눈을 뗄 수 없어, 난간을 붙잡고 천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계단을 올랐다. 아, 이곳 계단에서 관리자 한 분이 서서 티켓 확인을 도와주셨다. 월렛에 저장해둔 표를 꺼내 보여드렸더니 간단하게 확인하고 바로 들여보내주었다. 그나저나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쓸 일 없던 월렛을 유럽 여행 다니면서는 꽤나 많이 쓰게 된다. 플릭스버스 티켓이나 부킹닷컴 호스텔 예약 내역, 그리고 부르크 극장 공연 티켓까지 다 월렛에 저장해서 들고 다녔다.










복도엔 소소하게 구경할만한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무대를 작게 꾸며놓은 듯한 것들.


그나저나 이런 곳에 공연 보러 오면 좀 차려입고 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가진 옷들 중에서는 가장 괜찮은 옷을 꺼내 입고 왔는데, 보니까 모든 사람이 다 정장에 드레스를 입고 오는 건 아니었다. 2층은 아무래도 저렴한 좌석 위주라 그런지 사람들도 캐주얼하게 입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계단에서부터 착석하기까지 곳곳에 있는 관계자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느 자리에 앉아야 하는지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꼭대기 층까지 가야 해서 탔던 엘리베이터는 문이 하도 신기하게 생겨서, 처음엔 엘리베이터인지도 모르다가 안에서 사람이 문을 여는 걸 보고서야 엘리베이턴 줄 알았다. 자리에 도착했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는 1층은 정말 까마득했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이 보이기나 할까 슬 걱정이 되었다.






천장의 샹들리에도 참 예뻤다. 이런 곳에서 공연을 보게 될 줄이야. 하지만 고풍스러운 느낌에 한껏 들떴던 마음에 점점 이상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공연이 시작되고 배우들이 등장해 독일어로 대사를 치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노래가 나오질 않는 거다. 이쯤되면 노래 한 곡은 불러야할 거 같은데 왜지? 그제서야 'Theater'에서 하는 건데 당연히 극이지 무슨 뮤지컬이겠냐는 생각이 스쳤다. 이건 뮤지컬이 아니라 그냥 '연극'이었던 거다. 하필 'Ein Sommernachtstraum'을 검색했을 때 '뮤지컬'이 최상단에 떠서 나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뮤지컬이라고 믿고 온 거다. 줄거리라도 검색해보고 싶었지만 관객석이 너무 어두워서 감히 핸드폰을 켤 수가 없었다. 쉬는 시간에 찾아보자, 하고 기다렸지만 쉬는 시간은 단 1분도 주어지지 않은 채 2시간 남짓의 공연이 끝나버렸다.


자리에 앉으면서 자막이 나올만한 곳이 보이지 않아 조금 당황했다. 커튼이 걷히면 그 뒤쪽에 스크린이 있는 건가……. 하지만 그런 건 여기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같이 하하호호 웃는 동안, 나는 왜 웃는 줄도 모르고 앉아 멍청하게 따라 웃었다. 몸개그를 제외하고선 대화를 이해하고 웃을 수 있던 건, 감독 역인 듯한 할아버지가 뚱뚱한 다른 할아버지에게 '당신은 ~의 엄마 역을 맡아!"하고 말했을 때 뿐. 중간에 한 배우가 갑자기 벌거벗은 엉덩이를 보여주며 무대 뒤로 달려갈 때도, 희극이라고 알고 있었던 연극이 난데없이 비극으로 끝나버렸을 때에도, 나는 도대체 무슨 연유인지 알지 못해 어리둥절하게 앉아있어야 했다.





그나마 맨 앞자리에서 보면 가릴 것 없이 잘 보였을텐데, 내가 고른 자리는 그보다는 조금 뒷편이라 무대가 편히 보이는 자리는 아니었다. 배우가 무대 앞쪽으로 나오면 내 자리에선 아무리 고개를 내밀어도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비싼 돈 주고 가서 2시간 내내 못 알아 듣고 앉아있었을 것보다는 그 와중에 저렴한 자리를 골라 다행이었다. 또 입석이었으면 그것대로 힘들고 지쳐서 짜증 가득이었을 듯하다.


적어도 이번 공연 보며 배운 건, 공연이 외국어로 진행되는 한 줄거리를 자세히 읽고 갈수록 내용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공연 시작 전엔 밝았던 하늘도





보고 나오니 어느새 깜깜해져 있었다.






10시도 안 되었는데 무슨 새벽 2시라도 되는 것처럼 어둡고 조용한 길거리. 의회의사당 앞에서 얼른 트램을 타고 호스텔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