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에곤 쉴레의 삶을 따라 걷는 레오폴드 미술관(Leopold Museum)

2017. 10. 1. 21:52해외여행/2017 빈∙프라하 혼자여행

레오폴드 미술관 / Leopold Museum


주소_Museumsplatz 1, 1070 Wien

전화번호_ +43 1 525700

웹사이트_www.leopoldmuseum.org

개장시간_10:00 ~ 18:00 (목요일 ~ 21:00, 화요일 휴관)

* 6, 7, 8월은 휴관일 없음

입장료_성인 12€ / 학생 8€ (학생증 지참)

오디오가이드_한국어 미지원, 4€

미리 준비할 것_구글 번역 앱 독일어/영어 → 한국어 오프라인

_에곤 쉴레 영화 감상

_에곤 쉴레에 대한 간단한 검색



빈에 도착하니 어느새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출발했는데도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더군다나 오스트리아나 독일은 오후 6시만 되면 웬만한 곳들이 다 문을 닫아 버리기 때문에, 6시가 넘으면 실질적으로 구경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빈에 가는 동안에도 어디를 가는 게 좋을까 고민을 해보았지만, 내려서 점심을 먹고 나면 이미 시간이 늦어버리니 오늘 오후에 마땅히 구경할만한 곳이 떠오르질 않았다.


아침부터 한 끼도 못 먹었던 터라 그래도 내 건강을 위해 뭐라도 먹여줘야지 싶었다. 기차역에서 그냥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려고 돌아보다가 결국은 제일 값이 싼 케밥(Döner/되너)를 골랐다. 빈 물가가 워낙 높기로 소문이 자자해서 밖의 식당 아무곳이나 덜컥 들어가기가 좀 겁난 탓도 있었다. 목도 축이자 하고선, 감자튀김과 콜라까지 있는 세트 메뉴를 골랐다. 먹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저렴한 편인 케밥을 골랐는데도 세트 메뉴로 시키니 5.90€나 나왔다. 지금 환율로 따지면 8000원쯤 쓴 셈이다. 하... 한국에서는 8000원이면 괜찮은 식당에 가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여기서는 오고가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끼니 때우는 정도의 식사 밖에 할 수 없다니.


아무튼 간에 72시간짜리 교통 티켓을 사러 인포에 갔다가 팜플렛을 둘러보는데, '에곤 쉴레'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에곤 쉴레의 작품을 모아 전시한다는 거 같은데, 보니까 마침 딱 오늘, 목요일에는 연장 운영을 해서 9시까지 개장을 한단다. 키야, 타이밍 죽였다.


레오폴드 미술관은 한 층을 통째로 에곤 쉘레에게 내어준 곳이다. 에곤 쉴레의 그림을 모아 볼 수 있는 데다, 그를 잘 모르는 (나와 같은) 사람도 그의 일대기를 따라가다보면 감정 이입을 해서 그림을 바라볼 수 있으니 시간을 넉넉히 잡고 둘러본다면 알찬 관람을 할 수 있다!


비엔나 티켓을 소지하고 있거나 국제학생증, 혹은 유럽 소재의 대학 학생임을 증명할 수 있으면 학생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우리 학교 학생증을 내밀었더니 아무 문제 없이 할인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일단 학생증을 갖고 있다면 내밀어 봐서 좋으면 좋은 거지 나쁠 건 없는 듯! 게다가 나는 우리 학교 학생증만으로도 빈의 모든 곳에서 할인을 받았다. 이미 학생증으로 할인을 받았다는 친구의 후기 + 교환학생 입학허가서 들고가면 증명되니 걱정 말라는 친구의 후기를 참고하여 두 개 모두 준비를 했는데 생각보다 간단하게 해결이 되어 버렸다. : )


레오폴드 미술관은 모든 설명이 독일어 + 영어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독일어를 하지 못한다 해도 시간만 많이 있다면 관람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전시장이 워낙 크다보니 영어로만 보고, 영어 가이드에 계속 집중하는 게 참 지치는 일이었다. 나는 '알디톡(E plus 통신사)'을 로밍하여 사용했는데 건물 안에서는 데이터가 터지지 않아 사전조차 쓸 수 없었다. 그러니 미리 구글 번역 앱을 다운받아 오프라인 번역이 가능하게 준비해서 간다면 더욱 편하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을 것 같다. 더군다나 구글 번역 앱은 촬영 번역도 가능하니까!





Egon Schiele: Tod und Mann, 1911


보자마자 이건 그 어떠한 해설도 필요 없는 그림이라 생각했다. 늙은 남자와 그의 등 뒤에 달라 붙어있는 앙상한 해골의 '죽음'. 남자는 체념한 듯 눈을 감고 있다. 어쩌면 죽음을 예감하고 받아들이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남자의 불그죽죽한 검은 빛깔 옷은 '죽음'의 흰 옷과 대비된다. 죽음과 인간, 어찌 보면 죽음과 삶. 하지만 전혀 별개가 아닌 것.





Egon Schiele: Self Portrait with Chinese Lantern Plant, 1912


세상 돌아가는 게 참 기묘하다. 고흐도, 클림트도, 그리고 이렇게 쉴레까지도 동양의 미술에 감탄하고 영향을 받아 대단한 작품을 남기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는 또 동양의 많은 화가와 아티스트가 그들의 작품과 스타일을 동경하고 영향을 받고 있으니.






Ich finde und weiß, daß das Abzeichnen nach den Natur für mich bedeutungslos ist, weil ich besser Bilder nach Erinnerungen male, als Vision von der Landschaft - Hauptsächlich beobachte ich jetzt die köperliche Bewegung von Bergen, Wasser, Bäumen und Blumen. Überall erinnert man sich an ähnliche Bewegungen im menschlichen Körper, an ähnliche Regungen von Freuden und Leiden in den Pflanzen. Die Malerei allein genügt mir nicht; ich weiß daß man mit Farben Qualitäten schaffen kann. - Innigst und mit dem Wesen und Herz empfindet man einen herbstlichen Baum im Sommer; diese Wehmut möchte ich malen.

Egon Schiele in einem Brief an Franz Hauer im August 1913


자연을 그리는 것은 제게 무의미함을 알았습니다. 그 대신 저는 풍경을 관찰하고, 그 기억을 통해 작품을 창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 주로 산과, 물, 나무, 그리고 꽃들의 물리적인 움직임을 관찰합니다. 그것들은 모두 인간 육체의 움직임, 식물의 기쁨과 고통의 감동 비슷한 것을 연상케합니다. 그림 그 하나로는 제게 충분하지 않습니다. 저는 색으로 특성을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 속 깊이 본성과 가슴으로 여름에 가을 나무를 느끼는 것, 저는 이러한 비애를 그리고자 합니다.

Egon Schiele,1913년 8월 Franz Hauer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가의 그림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드로잉 습작이다. 에곤 쉴레의 드로잉은 이곳에서 처음 만났는데, 복잡한 풍경을 아주 간결하게 선으로 그려낸 걸 보고선 그 능력이 참으로 부러웠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사진 정리를 하면서는 풍경을 보는 눈과 선으로 나타내는 그의 손이 무척이나 탐이 났다. 수없이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정말 나만의 느낌으로 남은 것인지는 회의가 들어서였다. 하지만 누군가의 능력을 탐낸다는 것은 그만큼 동기 부여가 되는 것이니까, 탐만 내지 말고 시도를 해야지.





Egon Schiele: Mother with Two Children 2, 1915


왠지 모르게 피에타 상을 연상시키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죽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어, 어머니에게 시선이 닿는 순간 섬뜩함이 몸을 휘감았다. 안색이라곤 회색 뿐인 어머니와 대조적으로, 가장 어린 아이는 피부가 밝게 빛나는데다 꼭 피에로처럼 옷이 매우 화려하다. 이 그림의 의도가 무엇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와 아이의 대조가 꼭 '새 생명에게 활기를 불어넣음과 동시에 죽어가는 어머니', 그런 스토리텔링으로 읽혀서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이와 비슷한 주제를 에곤 쉴레 말고도 많은 화가들이 반복해서 그렸던데, 지금 시점에서는 주제 의식이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하거니와 거부감도 들게 해서 싫었다. 이 그림이 인상 깊었던 것은 그 거부감 때문이었다.









Postcard from Gustav Klimt in Madrid to Emilie Flöge in Vienna, 27.10.1909, private collectionn


맨 윗층에는 클림트, 코코슈카를 비롯하여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작가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클림트가 쓴 엽서 또한 발견할 수 있었는데, 예상 밖의 글씨에 웃음이 터졌다. 우체국 소인이 찍힌 것을 보면 어쨌거나 배달부가 이 글씨를 읽고 Flöge한테 잘 전달했다는 것일텐데, 진짜 칭찬해줘야한다. 글씨를 알아보지 못할 사람들을 위하여 박물관에서는 친절하게 그 내용을 적어두었다. 항상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는데 일하러 오면 전처럼 바보가 되어버려서 몹시 우울하다는 내용이었다. 클림트같이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당시엔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좌절했다니, 이걸 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한계를 느끼고 좌절하는 내 삶에서의 순간에도, 그래 클림트가 그러했듯 나의 좌절도 후대엔 호평받을 수 있겠지,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다.





Gustav Klimt: Death and Life, 1910-1911, reworked 1915-1916


작품을 완성한 후 한참 지나 다시 클림트가 수정했다는 '죽음과 삶'. 앞에 놓은 책자를 보니 정말 배경 부분이 달랐다. 푸르죽죽한 초록빛을 배경으로 십자가 무늬의 옷을 입은 해골(죽음)이 인간 군상을 바라보고 있다. 보라색과 초록색, 검은색이 뒤엉킨 죽음과는 대조적으로 인간 군상은 밝고 화려한 색으로 가득하다. 제목에 따르면 이 인간 군상이 '삶'일텐데, 죽음의 시선을 받는 와중에도 그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듯 너무나 평화로운 표정을 하고 있다. 삶이 그런 건가. 죽음이 가까이에서 우리네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면서도, 죽음을 모른다는 듯 평화롭게 삶을 영위하는 것? (그건 그렇고 클림트가 패턴 하나는 진짜 기가 막히게 쓰는구나!)





Oskar Kokoschka: Self-Portrait by Easel, 1922


미알못인 내 눈에 들어와서 팍 하고 꽂힌 오스카 코코슈카의 그림. 사실 오스카 코코슈카라는 화가의 이름조차 내게는 완전 생소했다. 미술관 몇 곳을 돌고 나서야 코코슈카가 클림트, 쉴레와 함께 오스트리아 3대 화가의 한 명으로 꼽힘을 알게 되었다. 딱 봐도 색 쓰는 삘이 예사롭지 않은 그! 보는 사람에게 '삘'을 꽂아주는 이런 예술 사조를 '표현주의'라고 한단다.


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고 싶을 때, 출신지나 출신 학교를 부러 말하지 않고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만난 오스카 코코슈카가 그랬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로 이야기되는지 알지 못한 채, 그의 화풍이 어떻고, 그의 사조는 무엇인지 하나도 모른 채 그를 만난 것이다. 그래서인지 클림트나 쉴레보다 더 솔직한 내 태도로 그의 그림을 접하게 되었고, 더 인상 깊었고, 그와 더 친해지고 싶었다.


코코슈카의 작품은 후에 알베르티나 미술관에서 더 많이 만날 수 있었다. : ) 극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하니, 그의 작품도 언젠가 읽어보고 싶다.





Theodor von Hörmann: Tümpel im Buchenwald, 1892


'테오도르 폰 회르만'이라는 이름의 생소한 작가. 그의 그림도 모두 처음 보는 것이었다. 발길을 잡았던 것은, 우둘투둘한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는 그림의 붓터치였다. 모니터나 책으로도 볼 수 있는 그림을 굳이 여기까지 보러 오는 이유는, 직접 마주해야만 느낄 수 있는 질감과 그것이 만드는 그림의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