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시래기 연대기

2021. 5. 13. 02:19데일리로그

이번 휴가 때 본가에서 케케묵은 사진 더미를 찾았다.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중학생 때까지의 사진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2007년쯤부터 폰카로 일상 사진을 찍기 시작하고, 그즈음 작은 외삼촌한테 디카도 선물 받았으니, 필름 사진은 그때까지만 찍었던 것 같다.

 

2001. 한려초 병설유치원 운동회

저때도 작았구나 ㅎㅎㅎ 나지만 애기 젖살 너무 귀여웠네... 100m 달리기였을 텐데 유치원생들도 달리게 했다는 게 좀 신기하다. 처음엔 어디 유치원 다닐 때인지 잘 몰라서 더 어렸을 때인 줄 알았는데, 엄마가 보시더니 여기 한려초라고 그러셨다. 뒤에 초등학생들 체육복 보라고. 워우 초등학생 때도 정말 싫어했던 체육복이지만 다시 봐도 경악스럽다. 한려초 상징이 개나리여서 체육복도 개나리색으로 정했을 것 같은데, 초등생 자신감 즈려밟는 패션이야...🥲

 

2004. 09. 20.

뭐지??? 생일 선물 받은 건 줄 알았는데 날짜는 생일이 아니다. 근데 얼굴 탄 거 보면 여름 지나고 가을인 건 맞는 듯. 저 노란색 자는 지금도 기억난다. 누가 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선물 상자 활용하려고 공책 어떻게든 말아서 넣은 게 너무 웃기다 ㅋㅋㅋㅋㅋ 밑에다가 스타핑(이걸 스타핑이라고 하는 것도 지금 알았다. stuffing이라는데 스터핑이라고는 안 부르는 것 같다)까지 까는 정성 보면 언니였을지도...

 

2004. 10. 24. 아산국화박람회

팜플렛의 뭘 보라고 하는지는 몰라도 저렇게 부녀가 빵 터질 일이었을까? 사진만 봐도 너무 좋다. 사진 찍어줄 테니 가서 아빠랑 모여 앉아보라고 한 걸 텐데 사진은 제쳐놓고 셋이서 웃고 있는 것도 좋고, 가족들이 웃을 때 딱 셔터를 눌렀을 엄마도 같이 웃고 있었을 거 같아서 그것도 좋다.

초등학생 땐 아빠 장거리 일 들어오면 학교에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아빠를 따라다녔다. 덕분에 전국 곳곳으로 답사도 다니고 온갖 맛있는 것들도 다양하게 먹어봤다. 미륵사지 석탑에 시멘트가 발라져 있는 걸 보고 충격받은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인가 대학교 자소서에도 이 내용을 썼을 거다. 마이산(馬耳山)은 산이 말의 귀 모양을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아빠가 알려주셨다. 말 마, 귀 이, 뫼 산. 8급 한자 실력으로도 딱 들으면 이해할 수 있는 이름을 곱씹으면서 눈 앞의 마이산이 정말 말의 귀를 닮았구나 생각했다. 대구에서 대구뽈찜에 꽂힌 언니 덕분에 여수로 돌아오는 내내 모든 시내를 한 바퀴씩 돌며 대구뽈찜 식당을 찾아다녔던 적도 있다. 나는 국도를 타고 달리는 동안 지나가는 나무에 새집이 몇 개나 있는지 세는 것도 잘했다. 어린이만의 끈기와 집중력이었다.

 

2004. 겨울

표시된 날짜는 없지만 언니 피셜 2004년이다. 언니가 저 '추리닝'을 언니 4학년 때 입었다고 했다. 내 패션이 훨씬 세련됐는데~ 저 명찰은 왜 안 떼고 다녔을까 ㅋㅋㅋㅋ "정영록 / 3-2"라고 적혀있었던 것 같다. 어렴풋이 기억이 날 동 말 동한다.

아, 언니가 멘 저 가방도 기억났다. 언니가 엄청 애착을 가졌던 가방인데 언젠가 아빠 따라 여행 다녀오는 길에 어디 식당에 두고 왔었다. 그 도시를 벗어나 한참을 달린 다음에야 가방을 두고 온 걸 알게 되었는데 며칠 뒤에 아빠가 그 식당에 다시 들러 가방을 찾아왔다. 그러고보니 위의 박람회 사진에서도 언니가 저 가방 메고 있네 😂

 

2009. 겨울 제주도

세상에, 가족들은 패딩이나 외투를 껴입었는데 아빠는 얇은 조끼 하나만 입고 있네... 그 사이에 채환이가 태어나서 저만큼 컸다. 이건 언니가 찍었다. 왜 빵 터졌을까! 더 옛날에 찍은 사진보다 오히려 화질이 구린 걸 보면 이건 디카로 찍은 다음 인화한 것 같다. 필카로 찍을 땐 사진에 어울리지 않게 주황색으로 날짜가 남는 게 보기 싫었는데, 시간이 엄청 흐르고 다시 보니 날짜가 필요하다. 파일 유실되고 나면 이 사진을 언제 찍었는지 어떻게 알 거야... 이땐 내가 머리가 긴데 안경이 보라색이라 분명히 중2 겨울이다.

 

엄빠 베스트샷 📸

원우회 동식 삼촌이 찍어주신 엄빠 ❣️

사진 모음 중 원우회 모임에서 찍은 사진이 참 많았다. 분기마다 다른 곳에서 1박 2일로 모이던 모임이라, 우리 가족한텐 정기적인 여행의 기회가 됐다. 동식 삼촌은 꼭꼭 카메라를 챙겨 와서 가족, 부부마다 사진을 찍어주고 다음 모임에서 인화한 사진을 선물로 주셨다. 그래서 나도 본가에 갈 때마다 카메라를 챙겨가고 있다.

 

1993. 06. 05.

다시 시간을 거슬러 93년! 언니도 태어나지 않은 과거의 아빠, 그리고 엄마의 엄마다 ㅎㅎㅎ 이제 엄마가 사진 속 할머니 또래가 된 건데, 정말 모전여전이다! 그리구 아니 서른 살 우리 아빠 완전 톨앤핸썸 영앤리치... 😮 엄마가 맨날 아빠 같은 남자, 아빠 같은 남자 하시는데 그래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야 되는 거였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