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고 싶었는데 의미와 존재를 갈망해버렸다

2021. 5. 20. 12:58데일리로그

생체 리듬이 또 꼬였다. 새벽 한 시 무렵 침대에 누웠는데 세 시간 동안 눈을 감고 누워있어도 도무지 잠이 들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찾은 수면 유도 영상도, 오디오북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아 지루하다 지루해' 하는 생각 때문에 더 예민해졌다. 최후의 수단으로 강의를 틀어보기로 했다. 지난 20년 간의 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항상 잠을 솔솔 오게 하는 건 강의였기 때문에⋯⋯.

ebsi에서 수능특강 한국사 강의를 틀어봤다가 1분만에 껐다. 선생님 텐션이 너무 높아서 덩달아 긴장이 됐다. 수험생용 강의는 패스하고 대학 강의를 찾아보기로 했다. SNUON에서 적당한 수업을 찾다가 인문학 카테고리에 있는 '종교 상징의 이해'라는 제목에 시선이 꽂혔다. 강의 목록을 보자마자 수강신청을 눌렀다. 종교학과 유요한 교수님이 하시는 수업이었는데, 2017년에 K-MOOC용으로 현장 강의를 촬영한 것이었다.

1주 차 강의를 틀고 핸드폰을 엎어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버렸다! 수업 중반부쯤 되면 살짝 졸릴 줄 알았는데 되려 교수님 입이 풀리면서 수업에 활기가 넘쳤다. 교수님 농담에 현웃이 터졌다. 결국 75분 수업을 다 들어버렸다. 다음 수업은 개념 강의라 좀 지루할 수도 있다고 해서 2주 차 강의를 이어서 틀었지만, 아니야... 지루할 거라면서요 교수님 😭

결국 중간에 멈췄다. 진짜로 계속 듣다가는 영영 못 잘 것 같아서, 고요 속에 잠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알람 소리에 눈을 떠보니 여덟 시였다. 강의를 끄자 마자 잠이 들었는지 다섯 시 반부터 수면 시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수면 유도제가 아니라 각성제를 찾아버린 셈이지만, 한동안 팟캐스트 대신 이 수업을 들을 것 같다! 대학이 그리운 직장인에게 너무나 맞춤인 처방이다.

 

의미와 존재를 갈망하는 인간의 종교적 성향.
내가 살고 있는 의미를 찾고 싶어해요. 무의미를 견디지 못합니다.

 

 

*K-MOOC에서도 들을 수 있다.
🔗 2021-1 종교 상징의 이해 | K-MO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