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여유롭게 찾아 다닌 제주 핫플레이스 식당 & 카페 (자매국수, 살롱 드 라방, 꿈꾸는 흰 당나귀)

2017. 1. 4. 23:00국내여행/2016 제주

1. 자매국수



원래도 유명한 집이었지만, 백종원의 삼대천왕에 뜨면서 심각하게 떠버렸다는 제주도 고기국수집, '자매국수'이다. 24시간 운영한다는데, 언제 가더라도 (심지어 새벽조차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란다. 오빠 일 끝나는 시간에 맞춰 8시 조금 넘은 시간에 갔는데, 딱 저녁 물 빠지고 밤 손님 오기는 전이라 그랬는지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빈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우리가 앉자 마자 웨이팅이 생긴 걸 보니 정말 운 좋은 타이밍이었던 것 같다.



나는 고기 국수를, 이모랑 오빠는 비빔 국수를 주문했다. 비빔 국수가 더 맛있었다. 토요일에 그 근처에서 먹었던 다른 고기 국수 집도 비빔 국수가 더 맛있었는데, 거긴 참기름 맛이 다 한 거나 진배없는 맛이었다. 거기를 생각하며 자매국수집 양념 맛을 비교해보니, 확실이 이쪽이 더 낫긴 했다. 애초에 주는 양 자체도 굉장히 많은데, 심지어 리필도 얼마든지 해 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명성 때문에 내 기대가 컸는지, '인생 국수' 말은 안 나왔다. 동네에서 국수는 제일 잘 하는 집, 정도의 만족도!




2. 살롱 드 라방


수요일엔 오설록에 가려고 했는데, 막상 낮에 일어나서 점심 먹고 샤워 하고 나니 그 먼 곳까지 가면 구경도 하기 전에 해가 저물어 버릴 것 같았다. 그 전날 하도 호되게 당한 터라, 갈까 말까 망설이다보니 금세 시간은 더 흘러가버리고, 일단 나가자 하고 마음 먹고 집을 나설 땐 이미 3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서귀포까지 가긴 힘들 것 같으니, 애월 카페라도 가면서 해 지는 것 구경하고, 커피라도 한 잔 하고 와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웃지 못할 일이, 그렇게 잠을 많이 자고 일어나 나온 건데 버스를 타니 곧바로 잠이 들어버린 거였다. 동쪽을 향해 달리는 버스니 차 안에서도 석양을 구경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구름도 짙게 꼈거니와 나도 꾸벅꾸벅 조느라 하늘을 제대로 구경하지도 못했다. 내가 생각해도 우스워 못 살겠다. 아무튼 허겁지겁 차에서 내리니 해는 이미 진 후였다.


<한림리 중간산 → (하가리, 노형동) → 제주시 읍면순환 시외버스 시간표>


살롱 드 애월 앞의 큰 도로를 지나는 버스 시간표!



하가리 표지석을 지나 10분 정도 골목을 따라 걸어 들어가니 깔끔하고 세련된 건물이 등장했다. 향토적인 돌담길과 낡은 집들 사이에서 이런 건물이 나타나니 낯설기도 하고, 제주 이주민 같은 느낌을 주었다. 로망이 있지만 은근히 겉도는 느낌.



마당이 넉넉한 게 여유로워 보여서 그 점은 참 마음에 들었다.



얼그레이 밀크티랑 팬케이크가 유명하다해서 주문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를 갈까도 싶었지만, 이날 유독 밀크티가 마시고 싶어서 부러 이곳을 찾았다. 밀크티는 차를 직접 우려서 만들어주는데…… 마신 지 오래되어서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나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아주 인상 깊은 것도 아니었던듯. 팬케이크도 애초에 좋아하는 메뉴가 아니라서 그런지 잘 시켰다는 생각까진 안 들었다.



그래도 이곳에서 앉아있던 게 좋았던 건, 일단 차와 함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 애초에 세팅부터 너무나 예쁘게 해주셔서, 거기에 머그잔을 내려 놓았다 들었다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무척 흐뭇했다. 팬케이크도 먹는 것보다 칼질하는 게 더 즐거웠다.



크리스마스가 한 달도 안 남은 상황이었는데,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느낌을 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하도 반복적으로 장식이나 캐롤과 함께 보내서,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연상되는 매개만 있어도 크리스마스의 두근거림이 살아난다. 분위기 좋은 이곳에서도 역시나 그랬다.



누군가의 익숙하고 편안한 작업실처럼 꾸며놓은 덕에 이곳에 앉아 있는 낯선 방문자도 익숙한 곳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리는 느낌으로 앉아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공간에 부분 부분 집중적으로 밝혀둔 따뜻한 조명, 내가 좋아하는 카페의 안락함이다. 둘러볼 수록 더 매력적인 카페였다. 아, 다만 자리가 많이 없는데다 8시에 마감하고, 주말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한창 휴가철에는 여기에서 '여유'와 '평안' 혹은 '안식' 따위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거의 자정 즈음까지 영업하는, 심지어는 24시간 카페도 즐비한 서울에서 살다보니 나도 그렇게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영업 방식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8시 마감을 '이르다'고 생각하고, 돈 벌기 좋은 주말에 문을 열지 않는단 말에 살짝 놀랐던 나를 다시금 생각하면, 누군가의 휴식을 담보로 누리는 나의 편안함을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지 않나 싶다.




3. 꿈꾸는 흰 당나귀


말차빙수로 유명한 제주 시내의 카페, '꿈꾸는 흰 당나귀'! 회전초밥 집에서 초밥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후식으로 고른 거였다. 정말 오랜만에 먹는 빙수였다! 자칭 타칭 빙수 덕후였던 난데, 빙수를 먹은 지 거진 이 년 가까이 되다니. 어쨌거나, 말차가루로 만든 빙수지만 달달하고, 떡하고도 굉장히 잘 어울리는 맛있는 빙수였다. 셋이 먹어도 배부를 만큼 충분한 양!


세련되거나 깔끔하거나 독특한 컨셉의 인테리어는 아니었지만, 뭔가 어설프게 꾸민 느낌이라 귀여운 구석이 있는 카페였다. 제주도 사는 언니도 이름만 듣고 아는 걸 보면, 말차빙수로 꽤나 유명한 곳인 것 같았다.





올해 세 번이나 다녀 온 제주였는데, 계절도 느낌도 빡셈도 각기 확연히 달랐다. 이 사진이 주는 느낌 그 자체였던 겨울 제주 여행이었다.


새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항공기 좌석을 부를 때 A, B, C가 아니라 알파, 베타 등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하긴 무전을 칠 때 D랑 E랑 엄청 헷갈릴 것 같긴 하다. 근데 C, D, E, F는 뭐라고 하나? 찾아보니 알파, 브라보, 찰리, 델타, 에코, 폭스, 골프, 호텔... 브라보 대신 베타로 들은 것 같은데, 아마 항공사마다 조금 다르게 부르거나 아니면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알았다!



김포공항에서 문이 딱 열리니 나를 맞이하는 반짝반짝 트리!


나름 그래도 여행기인데, 고작 게시물 두 개로 정리가 다 되다니, 정말 이번 여행은 이모댁에서 푹 쉬고 온 것에서 의의를 찾아야 하나보다. 돌이켜 생각해도 아쉬운 것 없이 만족스러운 걸 보면, 여행에서 욕심 부리는 게 꼭 좋은 여행을 만들지는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