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26. 00:17ㆍ 해외여행/2023 베를린∙파리
베를린 여행 기간: 2023. 06. 17 ~ 24.
어렸을 적 집엔 TV가 없었다. 대신 엄마는 언니와 나를 데리고 주말마다 도서관에 갔다. 한 사람 당 책을 일곱 권까지 빌릴 수 있어서, 우리는 아빠의 대출증까지 만들어 총 스물여덟 권의 책을 빌려왔다. 어린이를 위한 책은 그리 두껍지 않아서, 부지런히 읽으면 욕심껏 빌려온 만큼 다 읽고 반납할 수 있었다. 촌음을 아껴 소설을 읽는 학생으로 자라서 도서관 옆만 골라서 살고 있는 어른이 되었다.
책방만 들어갔다 하면 한 시간이 뚝딱인 나라서, 베를린으로 떠나기 전에 가보고 싶은 서점들을 찾아 저장해 두었다. 어딘가 놀러 가면 겸사겸사 근처 서점도 슥 둘러보자고 엄마한테 가볍게(마음은 상당히 본격적이지만) 제안할 계획이었는데, 웬걸 막상 서점 한 곳을 찾아갔더니 엄마가 도무지 나올 생각을 안 하셨다. 책은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차 우리 엄마는 소싯적 몇 년 간 책방지기로 일했던 사람이었다는 걸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은 다 엄마 옆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 제목(서점 이름)을 누르면 구글맵이 열려요!
1. She said
미네코 님의 추천을 보고 찾아간 책방
여성/퀴어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취급하는데, 비서구인, 포스트 이민자, 기후, 퀴어 페미니즘 이론, 비판적 남성성, 노동, 사회 문제, 반인종주의 등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도 함께 있다.
또 일러스트 작가들의 멋진 그림을 엽서로 판매하고 있다!
친구들 선물할 & 우리 집에도 붙이고 싶은 엽서를 여러 장 골랐다.

서점 안팎으로 색이 정말 다채롭고, 원형 탁자나 달팽이집 형태의 책상에 책을 진열해두기도 해서 가구 보는 재미도 있다.
힙하면서도 동시에 편안함이 느껴지는 분위기(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인테리어 디자인을 한 두 명의 건축가, 오브제를 만든 세 명의 예술가, 디자이너 모두 여성이고 스태프 9명도 여성/퀴어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공간 기획, 브랜딩, 운영까지 정말 일관되고 확고한 신념 위에서 쌓아나갔다는 것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Emilia: Ich sage oft, dass wir eine Frauenbuchhandlung 2.0 sind. Wir sehen uns nicht nur als Buchladen, sondern als Treffpunkt, als ein Raum für Austausch und als einen politischen Ort. Im Gegensatz zu den Frauenbuchläden der 70/80er sind bei uns aber alle willkommen und wir führen auch Bücher von schwulen und non-binary Autor*innen.
에밀리아: 저는 종종 저희를 여성 서점 2.0이라고 표현하곤 해요. 저희를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만남의 장소, 교류의 공간, 정치적 장소로 여기고 있어요. 70~80년대의 여성 서점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누구나 환영하고 게이 및 논바이너리 작가의 책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출처: „Wir machen etwas, das nicht allen passt“: „She Said“ | Jane Wayne
정기적으로 작가 초청 행사나 북토크와 같은 행사를 주최하기도 한다.

한쪽 선반에 진열된 책엔 띠지가 둘러져 있고, 각기 다른 손글씨로 글이 적혀 있었다. 이 책을 먼저 읽은 사람들의 추천사였다.
읽었던 책도 있었는데 첫 장을 편 순간부터 마지막 뒷장을 덮을 때까지 이야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쳐서 끊지 못하고 읽었다는 후기가 적혀 있었다.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독일어 원서도 있었다.
바로 어린이 책 코너 😝
▼ 13분 45초부터 She said 내부 전경이 나온다. 구경들 해보슈~
2. do you read me?!
여기도 마찬가지로 미네코 님 추천 리스트에 있었다.
예술, 건축, 패션 위주의 셀렉션
잡지, 도록 등도 다양하다.
책방 로고의 타이포가 아주 멋있는데,
이걸 활용한 가방이나 키링 등을 굿즈로 판다.


3. Ivallan's Second-Hand & Exceptional Books
(Ivallan의 중고책 & 보기 드문 책)
너무나 매력적인 중고서점이다!
해리포터 소설 속 다이애건 앨리에서 발견할 것만 같은 공간이다.










누군가 책장이나 서랍장을 버린다고 내어놓으면 냉큼 주워와서 책을 담아놓기를 몇 년째 하다 보니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 것만 같다.
책 분류가 독특해서 분류 제목만 훑어봐도 흥미롭고, 새로운 책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아, 여기도 많은 책들이 영어다.



꽤나 다양하게 있었던 한국 작가들의 영어 번역본~~
『銀馬는 오지 않는다』를 발견하고 엄마가 진짜 보물을 발견한 듯이 신나 하셨다.
4. Shakespeare & Sons - Fine Bagels
지나가다가 너무 덥고 다리 아파서 잠시 쉴 겸 들른 서점 겸 카페
영어 서적 위주로 판매하고 있다.
가게가 꽤 크고, 앉을자리도 많고, 화장실도 있다!
한국 작가의 영어 번역본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 내부 사진은 요 게시물 참고!
『I Want to Die but I Want to Eat Tteokbokki』 by Baek Sehee
무슨 책인지 바로 알아차려버린 그 제목.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도 있었고,
(이 책은 2024년에 이 서점의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와우... 독일 사람들도 사는 게 팍팍한가)
『Almond』 by Sohn Won-Pyung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도 있었다.
번역본 표지가 아주 멋졌다.
(국내 출판본도 이런 느낌으로 개정판 나오면 좋겠다)
영어로 된 책들이 대부분이라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한다면
여행 초반에 들러 한두 권 사서 들고 다녀도 좋을 것 같다!

5. Zadig französische Buchhandlung (Zandig 프랑스어 서점)
프랑스어 서적 판매
지나가다가 멋져서 스윽 들어가 봄


아주 cozy한 분위기였지만
프랑스어는 조금도 할 줄 몰라서
슉 둘러보고 나왔다!
번외 1. Staatsbibliothek zu Berlin - Preußischer Kulturbesitz(베를린 국립 도서관)

베를린 국립 도서관은 Berliner Dom이나 Alter Nationalgalerie과 멀지 않아서 관광을 하다 좀 피곤해지면 들리기에도 좋다. 아주 크고 조용하고 깨끗하다!
큰 가방은 가지고 입장할 수가 없어서 짐 보관함에 넣어야 하는데, 보관함에 쓸 동전이 없어서 밖에 가서 지폐를 깨 오느라 애를 좀 먹었다 😅
자리에 앉아서 이북리더기로 책을 잠깐 읽다가, 혼자 도서관 투어를 시작했다.


스캐너인데... 되는 거 맞을까...?

내 전공 관련 책들은 뭐가 있을지 궁금해서 '역사' 분류를 찾아왔다.
조금 충격이었던 점. 국립도서관인데 아시아 역사 관련 장서가 이게 전부였다. (책장 한 개인가 두 개인가 그랬다)
한국사 책을 찾아온 건데, 아시아사에서부터 이미 이렇게 빈약하다니;
정말 여기에서 아시아는 비주류구나 하는 사실이 찐으로 와닿았다.

한국사 관련 서적 유일하게 한 종류.
근데 또 그 책이 헐버트의 『한국사』라는 게 참 신기하다.
요즘 책도 아니고 조선시대에 나온 책이??
(혹시 '역사학' 분류는 따로 있고 여긴 '역사', 그러니까 사료급 장서만 있었던 걸까? 그런 거라면 덜 속상할 것임
→ 역시..!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검색해 보니 훨씬 많은 장서가 다른 분류에도 있었다... 하하핳ㅎㅎ 1년 반을 속상해하고 있었잖아?)
헐버트는 한국사를 공부했던 사람들이라면 다 한 번쯤 들어봤을, 고종의 밀사 역할을 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책에서 임진왜란을 The Hideyoshi War라고 부르고 있었다. 지금은 Imjin War 혹은 Japanese Invation of Korea in 1592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게 세계 공식 표기인지 한국에서 쓰고 싶어 하는 표현인지 모르겠다. → Wikipedia에 Imjin War이라는 제목으로 설명이 되어 있는 걸 보면 세계 공식 표기가 맞는 듯.
이 책이 집필되던 당대엔 사람들이 임진왜란을 '풍신수길 전쟁'이라고 불렀던 걸지도 모르겠다.
부록으로 붙어 있는 주요 참고문헌 표도 아주 흥미롭다.

입구가 아주 멋졌다는 점
번외 2. 에어비앤비 Cem의 집
베를린에서 지내는 일주일 동안 두 군데의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처음 간 곳은 커플인 호스트와 함께 거실&테라스를 공유하는 집이었고,
여기는 두 번째로 예약한 곳으로 호스트 없이 엄마랑 나 둘이서 지내는 집이었다.
방의 벽면이 모두 책으로 빽빽하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에 반해서 엄마한테 여기에서 묵자고 했다.
엄마가 정말 정말 마음에 들어하셨다!
비록 서가에 꽂힌 책은 한 권도 꺼내 읽지 않았지만 (쉽게 손이 가긴 어려운 아주 두꺼운 책들이 많았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막 마음의 양식이 쌓이는 기분이었다 ㅋㅋㅋ
김겨울 님 집에 가면 이런 느낌일까...?



💌 여러분에게도 여행지에서 우연히 들렀다 홀딱 반해버린 책방이 있나요? 살짝 귀띔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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