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31. 01:35ㆍ 해외여행/2023 베를린∙파리
2023. 06. 20.
'OO 하는 멋진 나'를 상상해 보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다. 어려운 책을 척척 읽어내는 나. 수려하고 깊이 있는 글을 쉽게 쓰는 나. 별일 아니라는 듯이 100kg를 번쩍 드는 나. 이렇게 해야 잠이 깬다면서 매일 아침 3km를 가볍게 뛰는 나. 구체적으로 상상해 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 생기면 실제로도 하루빨리 그렇게 되고 싶은 욕심과 의지가 마구마구 샘솟는다. 머지않아 현실이 상상에 가닿으며 나는 자아도취에 빠진다. 역시 난 멋져.
마음속에 품어왔던 멋진 내 모습 중 하나는, 낯선 여행지에 가서도 현지인처럼 여유롭고 칠(chill)-하게 동네 한 바퀴를 뛰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런 모습의 상위 범주에는 현지인스러운 여행자가 있다. 큰돈 내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까워서 종종거리며 최대한 많은 관광지를 훑어보고 가는 여행 대신, 동네 마트에서 장을 봐다가 아침밥을 해 먹고 조용한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서 한두 시간 책도 읽고 잔디밭에 누워서 멍 때리며 광합성을 하는 그런 느린 여행. 현지에 스며드는 여행을 하는 사람.
평소에는 잘 뛰지도 않으면서. 좋은 러닝 코스가 집 앞에 떡하니 있는데도 어제는 미세 먼지가 심했으니까, 오늘은 열대야라고 하니까 하며 매일 뛰지 않을 이유를 찾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 베를린에 있는데! 탄천변은 매일 뛸 기회가 있지만 슈프레강변을 뛰는 건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러닝 하는 베를리너에 빙의해 볼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다. 마침 오늘 구경할 곳을 다 돌아보고 숙소에 돌아왔는데 아직 해가 떨어지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다.
숙소에서 가까운 Treptower Park 입구까지 가볍게 속도를 올리며 워밍업을 했다. 에어팟을 끼고 경쾌한 노래를 재생하고 Nike Run Club 앱을 열어 달리기 시작 버튼을 눌렀다.
강변을 따라 숲길까지 쭉 달려오다보니 어느새 3km. 돌아가는 길은 천천히 걸어서 가려고 반환점 없이 쭉 내달렸다. 숲으로 들어서니 인적이 드물어서 조금 무섭긴 했지만 간간히 나처럼 뛰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반가웠다. 자전거 타는 사람, 강아지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도 자주 마주쳤다. 해 질 녘이라 날도 선선했다.
업다운이 심한 구간은 없었다. 대부분 평지라 편하게 뛰었다!
저녁 9시가 넘어도 여전히 여명이 있어서 근처를 좀 더 둘러보다 돌아왔다
낯선 여행지에서 현지인처럼 러닝하는 나 - 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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