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자는 뭘 해먹고 사나

2020. 12. 3. 03:09데일리로그

2월 말, 이사와 동시에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면서 매 끼니를 스스로 잘 챙겨야 했다. 처음 한동안은 드디어 내 부엌이 생겼다는 사실에 들떠서 원없이 요리를 했다. 그런데 1인 가구가 다양한 식자재를 구비해놓고 매일 다른 메뉴로 밥을 해먹는다는 게 여간 비용이 많이 드는 게 아니라, 해먹던 것 또 해먹고 또 해먹다가 결국 한동안은 요리에 시들해졌다.

전환근무를 하면서는 더욱 집에서의 끼니를 대충 넘겼는데, 요즘 다시 풀재택을 하면서 그래 내 건강 나 아니면 누가 챙겨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쿠팡 장바구니에 채소를 담고 있다.

 

연말을 맞이해서 이른바 2020 집밥 회고를 해본다! 🧑🏻‍🍳

 


봄/ 일단 채소를 볶아본다

 

파마산 치즈를 뿌린 버섯 부추 볶음

4월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재택근무를 하는데 왜 4월에는 그렇게 살이 빠졌지, 하고 보니까 일단 먹는 게 이랬다. (물론 운동도!) 뭔 채소만 이렇게 들입다 볶아먹었담?

 

 

가지구이, 닭가슴살 채소볶음, 생 파프리카 스틱

밥 하는 게 귀찮아서 닭가슴살과 채소만 볶았다. 이사온 날 사두었던 쌀 4kg를 먹는데 몇 달이 걸렸다.

 

 

가지구이, 부추볶음, 닭가슴살 채소볶음

아니 부추 양이 무슨 ㅋㅋㅋㅋㅋㅋ
채소볶음에 처음 넣었던 부추가 숨이 죽으니까 티도 안나는 양이 되어버리길래 한 주먹 가득 쥐어담아 볶았던 거 같다.
이 정도면 퉁쳐서 채소볶음이라 하면 안 되고, 부추볶음과 채소볶음 구분해서 불러줘야 할 듯...

 

 

두유새우브로콜리 오트밀 리조또

먹다가 중간에 평을 남겨놓았다.
"두유새우리조또. 아 느끼하다. 페페론치노를 하나 넣었어도 좋았겠다. 다 먹어갈 쯤 레몬수를 들고와서 엄청나게 마셔대고 있다."
야심차게 만든 메뉴인데 기대에 못 미치는 맛이었다.

 

 

가지구이와 파프리카 양파 볶음, 닭가슴살 스테이크

오, 양파가 카라멜라이즈 될 때까지 잘 볶았군!
사진을 흘긋 보고 채소만 저렇게 많이 볶았나 했는데 안에 닭가슴살 스테이크가 숨어있었다.

 

 

두유 새우 파스타

온갖 채소랑 새우를 볶고 두유랑 페페론치노를 넣은 다음 파스타를 투하하면 끝나는 간단한 파스타! 근데 앞서 만든 리조또도 이 파스타도 어딘가 맛이 빈 느낌이라 두유 베이스의 요리는 딱히 더 시도해보지 않았다. 결국은 MSG의 힘이 필요했던 것일까...

 

 

오버나이트 오트밀

제일 좋아하는 아침 메뉴! 기숙사에 살 때에도 곧잘 만들어먹었던 오버나이트 오트밀을 봄 내내 주구장창 먹었다.

 

여름/ 임시동거인이 생겼다. 먹고 싶은 거 다 말해

록빈이가 5월 하순부터 8월 중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우리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에어비앤비처럼 편하게 지내라고 아예 방 하나를 비워주고, 하숙집 주인장처럼 자주 저녁밥을 해서 록빈이랑 같이 먹었다. 혼자 밥을 해먹을 때 한식은 거의 안 해먹는데, '밥'을 먹어야 진짜 식사를 한 것 같다는 록빈이와 함께 지내면서 고추장 된장 뚜껑도 열고 쌀통도 비웠다.

 

 

연어 덮밥

연어만 있으면 90% 완성이나 다름없는 연어 덮밥! 스시집에서 연어 덮밥을 먹을까 하다가 그냥 스시를 고르고, 다음날 점심에 집에서 연어 덮밥을 해먹었다. 무순은 없으니까 파를 대신 토핑했다. 밖에서는 연어의 양이 성에 안 차니까 집에서 해먹을 때는 욕심만큼 연어를 올렸는데... 연어가 느끼하고 짜다는 걸 간과했다. 생각보다 비려서 두 번 정도 먹고 그 뒤로는 해먹을 생각을 안 했는데, 방금 찾아보니 연어를 조리할 때 비린내를 제거하는 단계가 있단다. 아하...

 

 

오버나이트 오트밀

저녁에 간단히 먹은 오나오. 방울토마토가 있어서 얹어봤는데, 별로 안 어울렸다. 오나오에 바나나랑 계피 조합은 최고다.

 

 

된장국과 계란말이

엄마가 김치랑 반찬 두어 개를 보내주셨다! 덕분에 한식으로 한상 차려서 먹었다. 이제야 진짜 집밥같네.

 

 

단호박 크림 수프

단호박 크림 수프는 스윗밸런스에서 처음 먹어보고 완전 마음에 들어서, 레시피를 구해 왕왕 해먹어 온 메뉴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정말 오래 걸린다. 단호박 찌고 씨 빼고 껍질 자르고 갈아야지, 양파 카라멜라이징 해야지, 잘 갈린 단호박 넣고 또 한참을 휘저어야지... 그래도 가끔 생각나면 이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직접 해먹는다.

 

 

바게트에 생크림, 시금치 페스토, 단호박 크림 수프 한 숟갈

꽤 많이 남은 시금치가 냉장고에서 시들어버리기 전에 후다닥 페스토를 만들었다. 엄청 되직하고 쓴맛이 강한데 달달한 생크림이랑 수프랑 같이 먹으니까 궁합이 좋았다! 단호박 크림 수프도 혼자 한 그릇 먹다보면 약간 느끼한 감이 있는데, 빵을 찍어서 먹으니까 순식간에 다 동나버렸다. 이 날 록빈이랑 둘이서 바게트를 끝도 없이 꺼내서 먹었다.

 

▼ 레시피는 이 글에 🎃

 

[독일 교환학생] 요나단 집에서 고기파티 / 로젠 파티 & 썸머타임 해제

2017. 10. 27. 요나단이 집에서 같이 고기를 구워먹자고 제안해서 오늘 저녁 다 같이 또 한 번 모이게 되었다. 7시 반까지 오라고 하길래 7시에 요나단네 집 앞 레베에서 다 같이 장을 봤다. 사람이

eternal-records.tistory.com

 

 

생크림 바나나 토스트, 버터와플 과자, 아메리카노와 라떼

간단하게 먹는 저녁. 밤이니까 한 샷을 반반 나눠서 록빈이는 아메리카노, 나는 라떼를 만들어 마셨다. 토스트를 록빈이가 만들었는지 내가 만들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무튼 버터와플은 회사에서 하나 가져왔던 것 ㅎㅎㅎ

 

 

온갖 국수 모음전

파스타가 양이 애매하게 남아서 소면을 더 사다가 해먹었던가? 소면만 먹으면 물릴 거 같아서 파스타를 했던가? 아니 반년 전 일도 기억이 안 나는데 록빈이는 어떻게 일 년 전 일기를 쓰지? 아무튼 소면으로 간장 비빔국수, 고추장 비빔국수, 카레 비빔국수로 세 종류나 만들었다. 파스타랑 카레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날의 저녁은 냉장고 털이었다는 것을...

 

 

로제 파스타

시판 소스를 쓴다면 파스타야 뭐 라면급

 

 

토마토 파스타와 마늘빵

무슨 그릇이 누구 건지 채소 양만 봐도 알겠네 😂
아 물론 마늘빵은 집 근처 베이커리에서 공수했다. 최애 마늘빵!

 

 

차슈덮밥

록빈이가 칭찬에 칭찬을 거듭했던 차슈덮밥!! 진짜 배가 많이 고프기도 했고, 오래간만에 돼지고기로 한 요리기도 했다. 나는 덮밥류를 무척 좋아하고 록빈이는 고기를 좋아해서 우리 둘 다 아주 만족했던 식사였다. 근데 돼지고기 너무 비쌈... 독일에 있을 때 돼지며 소며 한국보다 훨씬 저렴해서 고기 요리를 부담없이 해먹었는데, 여기서는 가격대가 좀 있어서인지 잘 안 사게 된다. 굳이 사먹을만큼 고기를 아주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서!

 

 

두부 유부초밥, 고구마, 방울토마토, 계란후라이, 키위

색조합 최고! 건강에도 최고!
두부 유부초밥은 인스타그램에서 다이어트 식단이라고 본 거였는데, 만들기가 아주 간단하고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아서 점심 메뉴로 자주 해먹는다. 이름을 유부초두부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록빈이랑 낄낄댔다.

 

 

쿠바 라이스

마늘과 밥을 버터에 잘 볶은 다음 마늘 팡팡 토마토 소스를 따뜻한 밥 위에 끼얹고 계란후라이와 소시지를 곁들이면 완성인 아주 간단한 쿠바 라이스! 한국인답게 마늘을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많이 넣었다. 버터를 조금 많이 넣은 것만 빼면 아주 만족했던 메뉴! 본 김에 이거 한 번 더 해먹어야겠다.

 

가을/ 미션, 요테기 극복!

 

아보카도 덮밥

이것도 만드는데 5분이 채 안 걸리는 나의 시그니처 메뉴다. 아보카도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한 숟갈에 아보카도 한 조각을 올리는 풍요도 집밥이면 사치가 아니다.

 

 

폰타나 수프와 바게트

"하늘 길이 막힌 지금 유럽 정통의 맛 폰타나로 맛으로 떠나는 유럽 여행을 즐겨보세요!"
카피 왜케 웃기지 ㅋㅋㅋㅋㅋㅋㅋ
이 흉흉한 시국을 언급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발랄할 수 있냐구. 심지어 인스턴트 수프를 여행 대신으로 치라는 말을 이렇게 당차게 한다구?
아무튼 런칭 기념으로 프로모션 행사를 한다고 선배가 알려줘서 구매해보았다. 두 시간이면 배가 꺼지는 점심이었다 🙍🏻‍♀️
이건 요리 아니고 조리...

 

 

호로록 싼 김밥

볶아야 하는 당근은 패스
부쳐야 하는 지단도 패스
무쳐야 하는 시금치도 패스

냉장고에서 꺼낸 재료로 5분만에 만들 수 있는 초간단 김밥 한 줄을 점심으로 해먹었다. 김밥엔 오이보다 시금치가 더 맛있다는 걸 이번에 만들면서 알았다. 당근이 없으니까 색깔이 심심하고 짭조름한 재료가 없어서 맛도 조금 심심했다.

 

 

두부 스프레드와 바게트

은비 언니의 레시피로 만들어 본 두부 스프레드! 데친 두부를 식힌 다음 갈고 간해서 원하는 가루를 더해 농도를 맞추면 되는 간단한 레시피다. 두부를 냉장고에서 식힐 때 키친타올을 깔아 물기를 싹 뺐더니 상당히 되직했다. 바질과 콩가루를 넣었더니 향도 좋고 고소한 스프레드가 되었다. 바게트 다 먹고도 남은 스프레드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ㅎㅎㅎ 언니는 두부 한 모로 만드니까 6~7번 먹을 양이 나온댔는데... 아닌데 나는 한 번 먹으니까 끝나던데...

 

 

닭가슴살과 채소볶음

앗 수미상관!? 뭐... 채소를 워낙 좋아하니까. 며칠 전에 하림 닭가슴살 블렉페퍼를 사먹어봤는데 전혀 퍽퍽하지 않고 꼭 소시지 같았다! 11월에 2+1 행사를 하길래 몇 번 사다 먹었는데 간편하고 맛있고... 너무 탄수화물을 많이 먹나 싶을 때 종종 이렇게 해먹을 것 같다.

 

번외/ 손님을 맞은 식탁

 

밀푀유나베

입이 많은데 손은 적어서 국물류 메뉴를 고르다가 밀푀유나베를 준비했다. 사람이 다섯이나 되니까 1차로 나베를 먹고 2차로 죽을 해먹은 다음 3차로 감바스, 4차로 나초와 케이크를 먹었다. 진짜 푸짐하게도 먹었다.

 


 

 

감바스

진선이랑 다희가 온 날에도 감바스! 메인이 릴레 블랑이어서 식사와 안주를 겸할 메뉴를 고르다가 집에 새우도 있고 해서 감바스로 정했다. 감바스의 올리브유가 너무 맛있어서 바게트를 막 찍어 먹다가 혓바닥이 온통 데었다.

 

 

릴레 블랑과 오렌지

릴레 블랑은 디에디트에서 소개글을 보고 언젠간 꼭 마셔야지 하고 점찍어두었는데 진선이가 취뽀 기념으로 샀다! 살구가 든 치즈랑 블랑에 오렌지 조합 😘

 


 

 

챠슈 덮밥

윤주랑 영진이가 온 날엔 차슈 덮밥을! 육수도 미리 만들어두고 정육점에서 고기도 사왔다가, 친구들이랑 같이 복작복작 수다 떨면서 만들었다. 내가 엄지 손을 다친 상태라서 윤주한테 온갖 것을 다 썰어달라고 부탁했다. 😭 한 그릇 요리라서 식탁에 그릇 세 개 놓으면 땡이니 휑할 것 같아서, 아예 냄비째로 식탁에 놓고 DIY로 자기 덮밥은 자기가 만들게 했다. ㅎㅎㅎ 친구들 그래도 손님인데 너무 부려먹었나...

 

 

차슈 덮밥

이다. 밑에 밥 있다. 왜이렇게 심심하게 생겼지 싶었는데 나중에서야 청경채를 빼먹은 걸 깨달았다! 어쩐지 이렇게만 먹으면 금방 물릴 것 같더라니. 그래서 김치를 사 왔는데 없었으면 정말 아쉬웠을 뻔했다. 역시 고기만 있으면 안 된다. 고기의 묵직함을 덜어주고 다양한 식감을 더해줄 채소! 채소가 들어가야 된다!

 


 

전 세경고 영양사 김민지 씨가 아침에 낫또 라떼를 만들어 먹으면 좋다고 하길래 낫또 6개 세트를 주문했는데, 와우 어떡하지.. 고구마가 맛없는 거라 그런지 너무 되직해서 그런지, 절대 맛있지는 않았다. 일단 내일 맛있는 고구마로 다시 한번 해먹어 보고, 아니다 싶음... 아니다 싶음 남은 낫또는 어떡하지? 아까 낫또를 한 젓가락 먹어봤는데 그 미끄덩거리면서 동시에 끈적한 이상한 식감... 생으로는 도저히 못 먹겠는데 어떡하지!

(덧) 바나나 + 요거트 + 낫토 조합으로 갈아서 먹으니까 아주 괜찮았다!

 

이따 뭐 먹지, 내일 뭐 먹지 하는 고민으로 점철된 재택근무 기간이었다이었고 이며 일 것이다. 점심시간 한 시간을 알뜰살뜰 쓸 수 있도록 간단하지만 건강하고 보기에도 좋은 레시피를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회사에서 먹다가 집에서 해먹으려니 엥겔 지수가 확 뛰었는데, 그래도 이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내가 나한테 밥을 해 먹여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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