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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생활/Tagebuch

[독일 교환학생] 요나단 집에서 고기파티 / 로젠 파티 & 썸머타임 해제

2017. 10. 27.



요나단이 집에서 같이 고기를 구워먹자고 제안해서 오늘 저녁 다 같이 또 한 번 모이게 되었다. 7시 반까지 오라고 하길래 7시에 요나단네 집 앞 레베에서 다 같이 장을 봤다. 사람이 많으면 듣는 귀가 많으니까, 직원이 독일어로 말한 걸 제대로 못 알아들어도 누군가는 알아들으니까 겁낼 게 없다. 그래서 친구들하고 같이 있으면 이방인으로 느끼는 두려움과 막막함보다는 이방인이라서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과 당당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눈치볼 필요도 없고, 누군가 말 거는 거 못 알아들을 걱정도 없고, 설령 그렇게 인종차별을 당한다 해도 다 같이 흉보고 욕하면 덜 억울하니까.


엠티 선발대가 되어 장 보는 기분이었다. 상추를 담고, 목살과 삼겹살을 사고. 진짜 완전 엠티 장인데? 목살과 삼겹살을 합쳐 3kg 담아달라고 했는데, 삼겹살이 거의 다 떨어지고 없어서 목살을 훨씬 많이 사게 되었다. 이땐 몰랐다, 목살이 그렇게 부드럽고 육즙 넘칠 줄은. 삼겹살(Bauch) 0.834kg에 5.93유로, 목살(Nacken) 2.156kg에 18.30유로가 나왔다. 그러니까 삼겹살보다 목살이 1키로당 1.40유로 정도 더 비싼 거다. 그래도 여기 삼겹살은 한국 거보다 훨씬 기름져서, 웬만하면 목살이 더 맛있는 거 같다!


어제 사람들 블로그를 찾아보다가 Krombacher 라들러가 그렇게 맛있다는 글을 읽었다.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인데도 맛있게 먹었다고 하길래, 그럼 나도 좋아할 지도 모르겠다 싶어 이걸로 골랐다. 한국에서 맥주는 웬만하면 안 마시고 싶은 쪽이고, 수입생맥주 가게에서 한 잔에 만 원, 만 오천 원 하는 걸 마셔도 내 타입이 아니길래, 나는 독일 가도 딱히 맥주가 좋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여기서도 딱히 맥주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는 않았는데, 오… 오! 라들러! 한 모금 마시니까 맥주 맛도 나지만 유자차 맛이 많이 나서 신기하고 달달하고 정말 맛있었다. 또 소맥도 타먹었는데, 역시 베이스가 고급지면 뭘 해도 맛있다고, 찐한 독일 맥주로 만든 소맥은 역시나 남달랐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늘 집들이의 하이라이트는 요나단이 직접 담근 김치와, 요나단이 끓여준 된장찌개였다. 여기에서 김치를 어떻게 담그었냐고 물으니, 하노버 아시아 마켓에서 새우젓을 사다가 만들었다고 했다. 새 김치통에서 익은 김치를 한 포기 꺼내 서걱서걱 써는 요나단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김장이 보통 일인가 정말. 게다가 여기에서 한국 재료를 사려면 돈도 두 배, 세 배로 드는데. 그 고생을 해서 담근 김치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요나단에게 진짜 고맙고 감사했다. 한국에서는 놓고도 안 먹는 김치인데, 여기서는 김치를 맛 볼 때마다 행복하다. 아마 그 김치가 내 앞에 오기까지는 무척이나 험난할테니 더 그런 거겠지. 지연이가 고생고생해서 택배를 받아 맛 보여준 고들빼기도, 수빈이네 집에서 먹었던 세상 호화로운 고추참치김치찌개도, 요나단 집에서 먹은 요나단 손맛 배추김치도 이 상 위에 그냥 오른 게 아니었으니까.





2017. 10. 28.



전에 한번 친구들이 로젠에 파티룸이 있다면서, 우리도 모여서 술게임 하고 놀면 재미있겠다는 말을 꺼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젠파티가 진짜로 슉슉 추진되었다. 사실 처음에 파티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당연히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그 '언제 한번'이 될 줄 알았다. 그냥 던져보는 말, 근데 막상 추진하기엔 귀찮은 그런 거. 왜 단톡방에서 우리 언제 한번 만나자, 하는 건 만날 의향은 있는데, 의향'만' 있고 당장 만나기엔 귀찮으니 다음에나 보면 보자, 이 정도의 말이 되어버리지않나. 로젠 파티 제의도 그렇게 그냥 지나가는 말일 줄 알았다. 근데 주말이 가까워지니 로젠 아이들이 파티를 추진하며 장소를 대관하고 시간을 정하는 거다. 지나가는 말일 거라 생각했던 게 멋쩍기도 하고, 이렇게 현재적으로 살 수 있는 지금의 시간에 감사하고, 또 그 시간을 알차게 만들어주는 로젠 아이들도 참 예뻤다.






날이 요즘 부쩍 추워지고 감기 걸리는 친구들도 생겨서, 내 비장의 무기인 단호박 크림스프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이 둘씩 짝지어 요리를 만들겠다고 하길래 나는 수빈이한테 같이 만들자고 제안했다. 수빈이도 같이 요리하는 김에 예전부터 염두에 두었던 베이킹을 하고 싶었는지, 있는 재료에 초콜릿만 사다가 브라우니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마침 구독 중인 가비님 채널에 영국에서 만드는 단호박 크림스프 레시피가 올라왔다. 타이밍 기막힌다 진짜. 그렇지 않아도 한국에서 파는 초록색 단호박이 여기선 안 보여서 검색해보니 Butter Kürbis나 홋카이도 Kürbis를 단호박 대신 쓴다기에 괜찮을까 걱정하던 차였다. 가비님 보니까 Butter Kürbis를 쓰시길래 마음 놓고 레시피를 받아 적었다. 그냥 동영상 틀고 하면 가장 좋겠지만, 여기는 독일이고, 수빈이네 집은 와이파이가 애매하니까 제일 믿을 수 있는 건 역시 아날로그였다. 아, 그리고 나는 단호박과 크림으로만 만들어보았는데, 가비님은 몇 가지 야채도 같이 넣길래 그러면 덜 느글거릴 것 같아서 이 레시피면 정말 맛있을 것 같았다.






수빈이랑 3시에 레베에서 만났다. 사실 나도 2시에 일어나 미적거리면서 8시 파티인데 조금 늦게 요리를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그러면 조금 늦게 장을 봐도 괜찮지 않을까, 수빈이한테 늦게 보자 할까 말까, 침대에 누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때 딱 수빈이한테 카톡이 왔다. / 온니, 우리 몇 시에 만나? / 세 시에 만나자며? 아니엇낭..ㅎㅎ / 헤헤 마쟈마쟈~


수빈이도 뭔가 미루고 싶었던 것 같긴 하지만 결국 그렇게 빼도 박도 못하게 세 시로 못이 박혔다. 양파랑 마늘은 집에 있으니 그거 가져다 쓰고, Butter Kürbis 실해보이는 놈으로다가 하나 담고, 이번에 쓸 우유랑 나 혼자 주말에 마실 우유 합쳐 세 통 담고, 생크림도 담고, 허브는 수빈이네 집에 있었으니까 안 담고, 마지막으로 초콜릿 큰 거 두 개 담고! 계산대 앞에 가서야 당근 빼먹은 게 생각이 났다. 후다닥 가서 당근 봉다리도 하나 들고 와 계산대에 얹었다.


우리 집에서 전자레인지로 단호박을 쪄서 간다고 들렸다가 배고파서 루꼴라 카프레제 샐러드 후다닥 만들어 먹고 요리를 시작했다. 단호박도 엄청 커서 두 번에 나누어 찌느라 시간도 엄청 오래 걸렸다. 사실 되게 간단한 요리였는데, 호박이 단단하고 커서 썰고 찌고 껍질 벗기는 것부터가 꽤나 힘들었다. 장소까지 옮기니 요리도 뭔가 더 오래 걸린 느낌이다. 야채도 약불에 안 타게 볶는다고 (예전에 만든 스프는 양파를 태워먹어서 스프에 검은 조각들이 떠다녔다) 진득하니 참을성 있게 볶았다. 믹서기에 옮겨 갈고 다시 또 불에 올려 우유 넣고 엄청난 약불에서 휘휘 저었다. 4시에 시작한 요리가 7시 조금 넘어 끝났으니, 정말 고생과 정성이 가득한 스프다.





손님한테 내보이기 전에 간을 봐아지. 그리고 제대로 맛을 보려면 진짜 내갈 때처럼 데코도 하고 후추도 살짝 뿌려서 맛봐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수프 그릇 한 가득 담아 '간'을 봤다. ㅎㅎㅎㅎㅎㅎ 간 보다가 배불러버려서 로젠까지 걸어가며 배 꺼트려야 할 정도였다. ㅋㅋㅋㅋ






수빈이의 메인 작품 브라우니도 오븐에서 노릇노릇 잘 구워졌다.






유일한 디저트로 엄청 인기 많았던 수빈이표 브라우니! 너무 잘 나와서 배불렀는데도 손 가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다음에 또 만들어 먹자 할 거다.






어떻게 8명 모두 하나같이 그 생각을 못했는지. 아니 네 팀이서 요리를 하니까 각 팀이 2-3인분만 만들어도 충분할텐데, 각 팀 모두 6-8인분을 만들어 왔다. 20인분은 족히 넘는 양인거다. 그냥 상 위에 차려놓을 때까지도 생각 못하다가, 음식이 아직 한참 남았는데도 다들 배불러하니 그제서야 이쯤되면 배부른 게 맞는 거라는 말이 나왔다. 왜 아무도 그 생각을 못했는지, 다들 우리의 실수를 깨닫고 한참을 폭소했다.






모일 때마다 빛을 발하는 수영이의 블루투스 스피커 & 마이크! 우리는 이거 틀어놓으면서도 시끄러울까봐 걱정하고 소리 밖에서 들리나 안들리나 신경을 썼는데, E층 파티룸 빌려 노는 애들 소리가 꼭대기까지 울리는 거 보면서 우리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했다. 여기 애들 기준에서 Ruhe Zeit엔 음악 볼륨에 신경써달라는 건 진짜 대빵만한 스피커 가져다놓고 둥둥둥둥 스피커 터지게 노래를 트니까 나오는 말이었다. 이 작고 사랑스러운 스피커는 해당 없는 이야기였다. 마이크에다 에코까지 되는 게 너무 좋아서 한국 가면 꼭 살 거다!






아 저 약병같은 맥주도 맛있었다.


술게임 하자고 잔뜩 기대를 하며 왔는데, 막상 시작하니까 기억나는 게임도 몇 개 없고 인트로도 다 까먹고, 그 많던 권주가도 어물어물 애매하게만 기억이 났다. 진짜 다들 고학번이라는 게 이렇게 티가 나는 구나. 술게임 해본 게 몇 년 전이야. 구글에서 권주가 찾아가며 노래 불러주고, 기억을 더듬어 아는 게임 모아 모아 놀았다. 학교가 다 다른데도 술자리 문화가 이렇게 공통인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새로운 게임도 배웠다. 레코드 레코드 잉잉잉! 아니 이 학번에 '마시면서 배우는 재밌는 게임' 나오는 것도 웃픈 일이다. 옵션으로 훈민정음, 오른손으로 잔/병 놓기, 진짜/레알/완전 같은 거 걸고 벌주로 예거마이스터랑 말리부를 마셨다. 훈민정음은 늘 어려우니까 당연히 많이 마셨지만, 오른손으로 잔이나 병 안 놓는 게 그렇게 많이 걸릴 줄 몰랐다. 생각하지 않으면 진짜 계속 걸리는 옵션이었다. 으히 새내기 된 기분!






두 시가 넘어가니 이제 슬 지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 썸머타임이 해제되는 날이라고 해서 이거는 꼭 다같이 보자며 세 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59분이 되자 하던 걸 다 멈추고 핸드폰을 바라봤다. 마치 타이머가 끝난 것처럼 2:00로 돌아가버린 시간. 시간을 접어서 숨긴 것 같다. 사실 바뀐 건 인간이 만든 임의적인 기준일 뿐인데, 진짜 시공간적인 그 시간이 왜곡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썸머타임이 끝나면서 해도 4시에 지니까 괜히 하루가 더 짧아진 느낌이고, 한국이랑도 7시간이 아닌 8시간 시차가 나니 더 멀어져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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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독일 | 괴팅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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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렇게 레시피 글로 써 가는거 왜 이렇게 사랑스럽죠..? ㅎㅎ 글이랑 사진 잘 보고 가요- 저는 토론토에서 유학생활 하는 중인데.. 저렇게 같이 요리해 먹고 좋은 시간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타지에서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 것 같아요 ㅋㅋㅋ

    • 맞아요! 혼자서도 잘 산다고 생각했는데, 낯선 곳에 있으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으내이미님도 좋은 사람들과 인연 맺으며 행복한 유학 생활 하시길 바라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