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0. 01:47ㆍ 데일리로그/회고
2024년의 연말 회고를 앞두고, 밀린 숙제처럼 남아 마음에 짐이 되었던 2023년 회고를 해본다.
일기를 쭉 다시 읽어봤다.
번아웃의 증상과 우울이 2023년 4분기쯤부터 시작됐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일기를 다시 보니 2023년 내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불면증과 과수면을 동시에 겪었고, 잔잔한 우울이 깔려 있는 상태에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운동을 할 때 찾아오는 일시적인 행복을 체감하고 있었다. 여름 즈음까지 마구마구 일기를 쓰다가 갑자기 뚝 끊었던 걸 보면 여름과 가을엔 부지런히 서핑을 하고 여행을 다니며 결국 무너진 마음을 구해냈던 것 같다.
일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던 해가 아니었나 싶다.
누구보다 일 욕심을 내고,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는 것에서 굉장한 성취감을 느꼈던 나였다. 회사 밖에서도 회사의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궁리를 하고 시간을 내서 일과 관련된 능력을 계발했다.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욕심을 냈다. 하지만 점점 담당하는 프로젝트의 규모가 커지고 사람은 많아지는데 큰 그림은 전혀 보이지 않고 어디로 가는 건지 뭘 위해 이걸 하는 건지 중간 성과를 확인할 기회는 없는 건지 답답해하다가 프로젝트가 주는 중압감에 짓눌려버렸다. 결국 일이라는 것 자체에 질려버린 것 같다.
올 한 해엔 유난히 일적인 욕심이 없었다.
업무적으로 인정 받는 거? 모르겠고
그냥 매일 빨리 퇴근하고 운동하거나 서핑하거나
친구들 만나거나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몰라 또 이건 지금의 마음이고
사실 연초나 상반기에는 열심히 살았는데
그냥 까맣게 잊어버린 걸지도.
함께 일했던 동료들의 리뷰를 적었다.
일주일 동안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 해에도 어김없이 마지막에 몰아서 쓴다.
막 입사했을 때, 그러고 몇 년은 리뷰 쓰기에 진심이었는데
사람들 다 그냥 연말에 연하장 적듯이 리뷰를 쓴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는
리뷰에 공 들이는 게 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열심히 쓸 마음으로 열었다가도
크게 이 사람이 어필하는 게 없으면,
아 이 사람도 리뷰에 딱히 욕심이 없거나
업무에 치여서 리뷰는 뒷전이었구나 싶어
열심히 쓰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든다.
일이 왜 이렇게 재미없어졌을까
이거 열심히 한다고 어디에 내 이름이 걸리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가.
이제 {project}이 재미없어질 때가 되어서 그런 걸까
팀장 달고 싶으니까 지금 팀에서 달 수 있는 타이틀은 최대한 따 내 보자라는 마음이 있었다가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내가 실무 안 할 것도 아니고 조직장 달 것도 아니고
(이 회사에서 정치해가며 조직장 된다고 그게 내 인생에 어떤 가치가 있나 하는 마음.
결국 회사 사람 아닌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나가서 하지
회사 안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 거 아닌데.
회사도 사람 모인 집단인데
이 이름 안에 내가 함께 한다는 생각이
점점 옅어지는 것 같다.
2023. 11. 27.
회사 밖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과 얻어낼 수 있는 성취를 찾아서, 나에게 일이 갖고 있던 의미를 그것이 대체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여름부터 겨울 초입까지 서핑에 도른자로 지냈다. 여름엔 모든 주말을 웨이브파크에서 보냈고, 발리에서도 신나게 파도를 타다가, 가을의 모든 주말은 또 금진에서 보냈다. 주말마다 디지털 세상을 떠나 파도를 뚫고 파도를 타면서 자연이 나를 압도하게 두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퇴수할 때마다 몸이 너덜너덜해졌지만 주간에 소진되어버린 마음의 어떤 부분은 100%로 충전해서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살면서 언젠간 파워리프팅을 배워보겠노라고 연초에 다짐했는데 3월에 벌써 그 다짐을 실현해버렸다. (역시 발 담그기는 잘하는 나) 4/28 데드 100kg, 5/11 스쿼트 90kg, 9/27 벤치 50kg를 성공했다. 10 단위의 PR을 좀 더 강조하게 되긴 하지만, 1kg, 0.5kg의 증량도 항상 엄청난 아드레날린을 분출케 하고 그 성공은 말도 안 되게 짜릿하다. 매번의 도전에서 성취감을 맛볼 수 있으니, 본업보다 운동에 더 진심이게 되었다. 12월에 첫 대회에 출전하는 것으로 2023년 파워리프팅 운동의 결실을 봄과 동시에 애슬릿으로 데뷔를 했다.
비슷한 온도와 열정으로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다. 그중에서 또 삶에 대한 고민과 지향점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 길 위에서 보내야만 했던 시간은 절대 따분할 수 없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엄마나 아빠와 여행을 하고, 그들의 생각을 듣고, 그들을 연민하고, 놀라고, 즐거워했다. 앞으로의 선택에서 엄마나 아빠의 의견에 대한 짐작으로 주저하는 일은 많지 않겠다는 안도를 했다. 두 분이 보수적일 거라고, 특히 아빠가 좀 더 감정적으로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던 젊은 연인의 동거 문제에 대해서는 아빠가 현실적으로 쿨스루~, 엄마는 웜스루...? 정도의 입장이었다는 것도 의외였던 지점.
아, 차를 샀다. 장거리 연애가 더 이상 장거리가 아니게 되었다! 서핑 보드를 사기 위한 첫 번째 준비물이 갖춰진 것이기도 하다 ㅋㅋㅋㅋ
태어나서 처음으로 클럽엘 가봤다. 클럽 비스무리한 곳도 처음 가봤다. 눈을 감고 춤을 추는 건 꽤나 해방감이 있었지만, 내가 싫어하는 것도 확실하게 확인했다. 모르는 사람과 살이 닿는 것(그날은 클럽에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았는데, 사람이 빽빽한 곳이라면 너무 싫었을 것 같다. 스탠딩 공연도 그래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가 내 춤추는 모습을 평가하는 걸 의식하는 것. 이건 확실히 짚을 필요가 있는데, 춤추는 것도 좋고, 누가 내 춤을 보고 혼자 속으로 어떻다 저렇다 생각할 수 있다는 것도 아는데, 그걸 드러내거나, 티가 나서 내가 그걸 의식하게 되거나,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게 싫은 거다. 그래서 춤추는 건 즐거웠지만 누군가의 시선이 의식되는 순간 춤을 출 수 없겠다고도 생각했다. 만취해서 신나게 춤추며 무대에 오르려다 저지당하는 나를 본 빈이는, 일반적으론 이런 곳에서 섹시하게 신나기 마련인데 저 친구는 정말 그저 순수하게 신났구나 하고 신기하게 여겼다고 한다.
개미에게 최고의 생일 선물을 받았다! 그것은 바로 해리포터 레거시...! 버튼 하나 누르면 바로 어딘가로 이동할 수 있는데 굳이 맵을 돌고 돌아 움직였다. 해리가 호그와트에 입학할 때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리포터 세대의 머글로서, 호그와트 성의 구석구석을 직접 다녀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른다... 매일 퇴근만을 기다리다가 밤새 게임을 하면서 3주만에 졸업을 해버렸다. 이건 뭐 호그와트 야학 다닌 셈.
요 정도 회고면 만족스럽게 2023년을 (드디어) 갈무리하고, 2024년 결산으로 넘어갈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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