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박물관] 조선시대의 궁중화·민화 걸작전 - 문자도·책거리

2016. 11. 28. 00:27문화생활/전시

2016. 06. 29.


조선시대의 궁중화·민화 걸작전 - 문자도·책거리

 - 서예박물관 -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조선시대의 궁중화·민화 걸작전 - 문자도·책거리'를 보러 갔다. 일부러 '문화가 있는 날'인 오늘, 마지막주 수요일을 노려서 갔다. 원래의 계획은 낮에 가서 서예박물관 전시도 보고 그 옆에 있는 로이터 사진전도 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어제 밤에 한숨도 자지 못해 오늘 낮에야 겨우 잠에 들어서 느즈막이 일어나느라, 서예박물관도 겨우겨우 다녀올 수 있었다.


"길에서 산 작은 병풍이 내 가구목록에 하나 더 포함되었다 …… 가만히 보니 그 각각의 의미가 표방하는 윤리적 가치를 따지지 않더라도, 단지 예술적인 관점으로 보아 그 병풍은 조선 예술의 근본에 관해 무척 소중한 정보로서 가치가 가득했다 …… 그림의 경우는 그 섬세한 뉘앙스만 빼면 전체적인 선에서 전통적으로 엄격하게 규정된 일종의 양식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특히 꽃이나 상징적 동물 형상에서는 페르시아와 인도 예술에서 유입되었을 기하학적인 요소도 엿보인다. 요컨대 하나의 작은 병풍이지만 그 속에서 발견되는 제반 요소들이 조선인의 국가적 예술 전반에 걸쳐 그 기저를 이루는 자양분이 되고 있는 것이다 …… 나는 촛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운 채, 언젠가 나에게 조선인 같은 야만인들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누군가의 어리석은 생각을 한껏 비웃으며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1899년, 프랑스 인류학자 '샤를르 바리'가
경상도 밀양에서 <문자도> 병풍을 구하고 쓴 평문 중에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책거리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세계적이면서 한국적인 그림이 있다. 책거리다. 책거리란 책을 주제로 그린 그림으로 책 외에 도자기, 청동기, 문방구, 화병 등이 함께 그려진다. 서가에 책을 꽂은 그림은 멀리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스투디올로에서 시작하여 중국의 다보격경을 거쳐 조선의 책가도, 즉 책거리 가운데 서가(책가)에 그린 그림으로 이어진다. 국제적인 면모를 가진 책거리인데, 조선시대에는 정조가 책정치*를 펼치면서 책거리란 장르가 대거 유행한 것이다. 정조 때부터 일제강점기 때까지 이백여년 동안 우리의 사랑을 받았던 그림이 책거리인데, 이러한 현상은 세계 유래없는 일이다. 덕분에 세계에서 책을 가장 아릅답게 표현한 문화를 갖게 된 것이다.

* 정조는 순정한 고문체를 구현하기 위한 '문체반정'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책거리 병풍을 적극적으로 제작한 것은 신하들에게 문체반정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문자와 그림의 절묘한 조합

책거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는 문자도다. 둘 다 학문을 숭상하는 조선시대 문화를 대변하는 그림이다. 문자도는 한자문화권이 동아시아 국가에서 한자를 활용하여 그린 그림인데, 다른 나라와 달리 조선만 독특한 문자도를 발전시켰다. 그것은 효제충신예의염치의 유교 덕목을 그린 유교문자도다. 국가에서 유교이념을 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유교문자도를 유행시켰을 가능성이 있는데, 서울·경기도 문자도, 강원도 문자도, 경상도 문자도, 전라도 문자도, 제주도 문자도 등 지방별 특색이 뚜렷한 문자도로 발전했다.

궁중 화원인 이형록이 그린 백수백복도, 장수를 의미하는 수자를 자수로 새긴 궁중 침장, 유교문자도의 명품으로 손꼽히는 옛 김기창 소장 문자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문자도가 출품된다. 아울러 지방별 대표적인 문자도를 비교하며 감상하는 것도 이번 전시회의 매력 중의 하나다.


▶ 알고 가면 좋을 Point!

1. 책거리의 '거리'는 복수형을 의미하는 우리말이다.

2. 역원근법(逆遠近法) - 관점에 대한 유교적 사색
역원근법은 원근법과는 반대로 앞이 좁고 뒤가 넓어지는 투시법이다. 원근법은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의 관점으로, 대상은 타자화된다. 그러나 책가도는 역원근법으로 그려졌다. 즉 중요한 것은 대상을 보고 있는 화가(나)가 아니라 그려지는 대상이기 때문에 대상의 관점에서 그림을 그린 것이다.

3. 책거리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물은 각각의 상징이 있다. 예를 들어 씨앗이 많은 수박의 윗부분을 잘라 많은 씨가 보이는 것은 말 그대로 다산을 의미하고, 칼이 꽂혀 있는 것은 다산의 의지를 상징한다.

4. 병풍의 크기는 집 크기와 어느 정도 비례한다. 즉 큰 병풍의 주인인 사람은 대단히 부자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5. 문자도에 그려진 각 그림은 중국의 고사와 관련있다. '효'라는 글자에는 잉어와 죽순, 부채(혹은 침구)와 가야금이 들어가는데 이는 '왕상빙리', '맹종설순', '황향선침', '대순탄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거리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뜨거운 학구열과 삶의 행복을 그리다 - 책거리'에서,
문자도의 상징과 관련된 내용은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를 참고하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