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역서울 284] 복숭아 꽃이 피었습니다 / 허풍선이 남작의 연회장 / 연남동 앤티크 카페 라헨느

2016. 11. 28. 00:12문화생활/전시

2016. 06. 26.


복숭아 꽃이 피었습니다


저번에 본 연극을 가족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한 번 더 서울역을 갔다. 겸사겸사 저번에 보지 못했던 전시도 보았다.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에겐 예술이란 것 자체가 많이 낯설고 생소해서, 작품을 보고 어떤 감동을 받거나 공감하기엔 조금 어려운 전시였다.


떨어지는 물방울을 스크린으로 보여주고 있다.

신성환, 명(明) / 사람의 형상이 시시각각 다른 모습의 빛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작품에선 43개국의 언어로 '어머니'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김승영, Picnic on the Ocean

'Picnic on the Ocean'은 뉴욕에서 만난 두 작가 무라이 히로노리와 김승영이 기획한 프로젝트이다. … 그들은 각각 거제도와 쓰시마섬에서 출발하여 약속한 두 나라의 중간지점인 대한해협공해에서 '바다에서의 소풍'을 성공적으로 가진다. 두 사람은 각자의 쪽배를 타고 약속지점에 도착하여 일상적인 대화로 인사를 나누며 유리컵을 맞부딪히고 건배를 외쳤다. … 이들은 수년간 이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개인과 개인, 혹은 국가와 국가간의 소통에서 오는 여러 다른 차이와 도전을 받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만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김승영, Harlem Papaer Airplane Project

양아치, 성진은 복숭아꽃 한 가지를 꺾어 팔 선녀에게 던지는데

WiFi-SM / 키워드를 입력하고 SAVE를 누르면 전자팔찌로 '찌릿'하는 충격이 전달된다.

양아치 작가의 작품을 보기 직전 복도의 벽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었다.

《프로젝트 284: 복숭아 꽃이 피었습니다》는
낙원과도 같은 거대한 놀이터를 꿈꾸었습니다. 신화에 등장하는 무릉도원처럼 깊은 숲속에 숨겨진 낙원을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의 마음을 빌어 상상해보았습니다.

무릉도원은 현실이기도 이상이기도 합니다. 현실의 끝자락과 맞닿아 있으면서 동시에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이상적입니다.


이리 저리 탐색하고, 두드리고, 귀 기울이고, 만져보고, 큰소리로 말하고, 맛보면서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여러분과 함께 낙원의 문에 한발 더 가까이 가고 싶습니다.

'이상의 삶'이라는 키워드를 기억하면서 설명과 함께 보니  김승영 작가의 프로젝트나 WiFi-SM같은 작품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술 전시는 여전히 어렵지만, 설명이라도 함께 들으며 주제나 생각이 어떤 식으로 표현되었는지를 보면 굉장히 흥미롭기도 하다.

전시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사람이 무척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딱 점심시간 시작될 즈음 들어가 기다리지 않아도 됐는데, 우리 가족이 나와서 보니 앞에 줄이 무척 길게 늘어져있었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나오니 뙤약볕 밑에까지 사람들이 서있었다.

들어가서 한 가지 웃겼던 것은, 그 복잡난해한 작품들이 사진 촬영 핫스팟으로 전락해버렸다는 점이다. 조명도 있겠다, 예쁘고 화려하겠다… 그래서 덥고 땀나는 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 사진 찍을 목적으로 전시를 온 사람들은 들어가면 많이 실망하겠다 싶었다. 사람들이 우글우글하니 찍을 때마다 사람이 지나갈테고, 프레임 안으로 방해꾼들이 자꾸 들어올텐데! ㅋㅋㅋ



허풍선이 남작의 연회장


'eat2go'에서 햄버거를 나눠먹고 여유롭게 연극을 보러 이동했다. 30분 일찍 갔는데 줄이 길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번에는 무대의 가장 오른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보게 되었다. 저번엔 앞줄에 앉아 봐서 연극에 완전 몰입할 수 있었고, 깃털이 날리는 장면도 극적으로 보였는데, 이번엔 가족들에게 내가 느꼈던 감동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대신 다리가 저리거나 좁거나 하진 않았다. 또 나는 두 번째 보는 거라 관객의 시선이 집중되는 배우가 아닌 그 뒤의 배우들 표정까지 볼 수 있어서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히에로니무스 役, 김효인

뮌하우젠 役, 원태희

바론 役, 유은호

저번 연극과 조금 달라진 점이 있었는데, (파도 혹은 바다를 의미하는 듯한) 천을 저번엔 배우들이 직접 들고 관객들 사이를 지나갔는데, 이번엔 관객들이 파도타기로 직접 옮기도록 했다. 저번에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천에도 향을 뿌려 지나간 자리에 은은한 향이 남았다. 관객들의 호응도 더 좋아보였다.

두 번째 관람에서 특히나 인상깊었던 것은 트렌스젠더 '히에로니무스'였다. 저번 연극의 말미에서야 그 사람이 트렌스젠더라는 것을 알았는데, 이번엔 알고 보니 대사 하나 하나가 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나는 남자입니다."라는 말 한 마디를 뱉는 것도 히에로니무스에게는 깊은 상처가 되는 일이었다는 걸 저번엔 알지 못했다.

또 하나 발견한 것은, 팩트만을 외치던 집사가 마지막에 바다의 구멍을 막아야 한다며 뮌하우젠 남작을 불러내는 장면 직전의 행동이다. 전엔 남작만을 보고 있느라 눈치채지 못했는데, 그렇게 밖으로 달려가기 직전 집사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지금부터 제가 들려드릴 모든 이야기는…'의 손동작을 하고 있었다. 나나다시 극단의 인터뷰에서 집사 역을 맡은 최정환씨가 "굉장히 현실적이지만 이상을 꿈꾸기도 하고 그 중간에서 헤메는. 그래서 현실에 타협해가고 있는 캐릭터예요. 이상을 꿈꾸는 것에 냉소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래서 뭔가 변화해보려고 하는 캐릭터랄까요. 그래서 뭔가가 벌어져요."라고 이야기하는데, 방금 그 장면이 아마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가 변화하는 극적인 순간이 아닐까 싶다.

한 번 볼 때와 두 번 볼 때의 느낌이 달라서 참 좋다. (근데 배우들은 어째 회가 거듭할 수록 덜 떠는 게 아니라 더 떠는 모양이다. 익숙해졌는지 대사가 조금 달라지거나 애드립이 많아지긴 했는데, 조금 긴장하는 모습이 보여서 살짝 놀랐다.)



연남동 앤티크 카페 라헨느


마지막 코스는 연남동! 밥은 신촌에서 먹고, 조용한 곳으로 가려고 연남동까지 걸어갔다. 골목을 돌아다니다 들어간 곳은 '라헨느'라는 앤티크 카페였다. '귀족놀이'를 할 수 있다는데, 전시되어 있는 많은 앤티크 찻잔들은 사장님과 사장님의 어머니가 프랑스에서 직접 사모은 것이라고 한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예쁜 건 사실이니까...! 예쁨 ㅎㅎㅎ


나는 밀크티를 주문했다. 스무디보다도 비싼 7천원이었지만, 찻잎을 직접 우려낸 거라 애초에 재료값이 많이 드는 모양이다. 역시나 다 마신 후에 주전자를 보니 찻잎이 아낌없이 한 움큼 들어가 있었다. 한 번도 마셔보지 않은 차였는데, 향이 무척 좋았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ㅠㅠ 홀짝홀짝 마시니 행복♥ ㅎㅎㅎ

담엔 연남동에 혼자 와서 책방도 여기 저기 들어가보고 한적한 카페에 들어가 책을 필사해도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