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역서울 284] 허풍선이 남작의 연회장

2016. 11. 27. 23:39문화생활/전시

2016. 06. 24.


허풍선이 남작의 연회장


문화역서울 284 (2016. 06. 24.)


원래 서울역에서 하는 '복숭아 꽃이 피었습니다' 전시를 보러 간 거였는데, 시간이 애매해서 가는 김에 보려 했던 공연만 보고 오게 되었다. 완전 주객전도다. 그런데 보고 나니 차라리 전시를 놓치고 공연을 본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전시를 못 봐서 이렇게 말하는 게 말이 안 되긴 하지만...!)

선착순 입장이었는데, 100명까지는 좌석에 앉아서 볼 수 있고 101번째 관객부터는 스탠딩으로 봐야 한다. 나는 연극 25분 전부터 줄을 섰고, 내 앞에 대략 70명 정도의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운이 좋게도, 막상 들어가서는 무대 거의 정중앙 두 번째 줄에서 보게 되었다. 큰 무대는 아니라서, 아주 끝에 치우쳐 앉는 것만 아니면 사실 어딜 앉더라도 공연을 보는데 큰 지장은 없을 것 같다.


오늘의 공연은 'Studio 나나다시'의 연극,

허풍선이 남작의 연회장
Welcome to the Ballroom of Baron Münchhausen


사진출처_페이스북 페이지 '스튜디오 나나다시


※ 주의_아래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여러분에게 들려드릴 모든 이야기는
오직 사실에 근거하였으며
맹세컨대 거짓말을 조금도 보태지 않은
진실일 뿐입니다.

 'Baron Hieronymus Karl Friedrich Freiherr von Münchhausen'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작이 주인공이다. 그는 한 명이면서 동시에 바론(뮌하우젠 남작의 부인), 히에로니무스(트랜스젠더), 카알(의사), 프리드리히(간호사), 프라이헤어폰(뮌하우젠 남작의 집사), 뮌하우젠 남작이라는 여섯 명의 인격이기도 하다.

'허풍선이 남작의 연회장'이라는 제목처럼, 뮌하우젠 남작은 자신이 겪었던 모험담을 이야기하는데, 각 에피소드의 말머리엔 꼭 모든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말이 붙는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어보면 죄다 엄청난 허풍이다. 사냥을 나갔다가 사자와 악어를 만났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든가, 늑대가 끄는 마차를 탔다든가, 대단한 능력을 가진 다섯 명의 하인(눈이 잘 보이거나, 발이 무척 빠르거나, 귀가 엄청 잘 들리거나, 힘이 장사이거나, 콧바람이 무지막지하게 세거나)을 만났다든가, 그 하인들과 러시아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평화로운 웃음밭으로 만들었다든가 하는 허풍.

그런데 남작의 허풍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엔 마음 한구석이 조금 찜찜하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심리적 병증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니까. 강박이나 증후군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하다못해 "좋았다면 추억, 나빴다면 경험"이라는 말로 지난 과거를 미화하기도 한다. 불안에서 벗어나야 하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이지 살지 못할 것 같으니까.

"다들 그렇게 생각해본 적 있잖아요, 나는 행복하다고 그러니까 조금 버텨볼 만 하다고."
"배가 파도를 두려워하고, 파도는 바람을 두려워하고. 나라도 저 달에 돛을 달아야지."

그래서 뮌하우젠 남작의 이 대사를 듣고, 자신의 망상을 진실이라고 믿는 허언증 환자 남작이나, 아픈 과거가 경험이 될 거라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자기합리화를 하던 내 모습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거짓말이야. 나는 총을 쐈어, 그게 악어든 사자든. 이게 네가 그토록 바라던 팩트인가?"
"이 모든 고통은 당신이 상상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영화감독 우디 앨런의 뉴욕 타임스 인터뷰 중 이런 구절이 있다.
"One has to wonder, given all of life's uncertainty and pain, how do we get through it? Sometimes the illutions work better than the medicine."
"We need some delusions to keep us going."

우리의 삶엔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함)과 고통이 주어졌는데, 그걸 극복하는데 가끔은 약보다는 환상이 더 나을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누군가의 환상을 단순히 "거짓이다.", "망상이다." 하고 치부해버릴 수는 없다. 뮌하우젠 남작에게 신체적인 문제는 없다 할지라도 분명 남작은 심적인 고통을 겪고 있고, 다른 이들이 '거짓말'이라고 하는 남작의 망상과 믿음은 그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남작의 모험담과 믿음은 어찌 보면 종교와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사자를 총으로 쏘고, 러시아의 참혹한 전쟁에 참여했던 기억을 극복하기 위해 남작은 자신의 상상을 발동시켜 아름다운 모험담을 만들어낸다. 그 모험담에서 남작은 실수로 총을 잘못 쏘아 사자를 직접 죽이지 않아도 되었고, 칼에 베여 피로 물드는 대신 머리와 콧잔등에 앉은 깃털을 보며 웃을 수 있었다. 이 상상은 곧 남작의 이상과도 같은 것이다.

종교도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지고, 믿어진다. 종교는 신학적인 의미에서 '미스터리이면서 대단하고 매력적인 것'으로 정의된다. 도덕적인 의미에서는 '신적 명령의 모든 의무에 대한 인식', 철학적으로는 '궁극적 관심', 사회학적으로는 '사람들의 아편' 혹은 '가치의 보존'이라고 정의한다. 즉 세상을 보여주면서, 세상이 무엇에 관심을 갖고, 어떤 것을 지켜야 하는지 말해주는 것이 종교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상컨대 "지금까지 제가 여러분에게 들려드린 모든 이야기는 오직 상상에 근거하였으며 맹세컨대 진실은 조금도 보태지 않은 허풍일 뿐입니다."라고 변주된 마지막 대사는, "현실과는 구분되는 이상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p.s. 넓은 그림으로 보니 이 연극과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사이의 많은 접점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