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어미를 고민한다

2021. 5. 15. 05:26데일리로그/일하는 사람의 자아

테스트 도중 메모리 부족으로 확장앱 프로세스가 강제 종료되는 경우가 드물게 발견되고 있습니다. 😭
원인을 파악 중이오니... ㅠ 빠르게 조치를 취해서 업데이트하고 공유하겠습니다!
(혹시 수정된 버전을 간단히 테스트해보시고 추가적으로 주실 의견이 있다면 같이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중이오니'라니...
입사 5개월차가 회사 깃헙 이슈에 코멘트를 남기는데 이런 말투로 글을 썼다.
한참을 고민하며 고쳐 쓴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누가? 내가.

 

안녕하십니까?
아래에 보인 대로, '-오-'는 공손함을 더하여 주는 어미인데, 상대방에게 '-오-'로써 공손함을 표할 것인가는 표현하는 사람의 선택에 달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명하신 "공손의 의미로"와 같이, 내가 상대방에게 예스러운 느낌으로 공손함을 표하고자 한다면, '-오-'를 쓸 수 있습니다. 다만, 공문서는 공적 문서이므로 '-시-'를 쓰고 '바랍니다'의 '-ㅂ니다'를 씀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고, 한편으로는 그것에 더하여 공손함의 '-오-'까지 쓰면 문서로 소통되는 상황이 더욱 부드러워질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을 수 있으니, 이러한 점들을 두루 고려하여 표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
「어미」
((받침 없는 용언의 어간, ‘ㄹ’ 받침인 용언의 어간 또는 어미 ‘-으시-’ 뒤에 붙어))((‘ㄴ, ㄹ, ㅁ’이나 모음으로 시작하는 다른 어미 앞에 붙어))
(예스러운 표현으로) 서술이나 의문에 공손함을 더하여 주는 어미.
¶ 가오니/가오리다/가오면.

출처: '하니'와 '하오니' 관련 | 국립국어원

 

이미 격식을 차릴대로 차린 하십시오체를 쓰고 있으면서 거기다가 공손함을 더 끼얹는 '-오'까지 가져다 썼다. 1년 정도 일해보고 나서야 이 말투가 정말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직장 선배는 '얘는 왜 고객센터 직원 같은 말투를 쓰나'싶었다고 했다.

다른 팀 사람과 일할 때는 특히 더 전문적이고 싶어 보여서 말투에 엄청 신경 쓰게 된다는 내 말을 나중에 듣고서야, '아, 그런 고민 끝에 고른 말투가 저거였구나'하고 속으로 생각했다고.

 

"나는 말할 때 어미를 한참 고민해."
"헐 맞아 나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맞아 나도 그래"

직장인 친구들 대공감 파티~

 


 

네~! 캔버스 기본 너비 값에 착오가 있었네요!
기본 창 크기보다 작게 설정해두겠습니다.

 

바야흐로 입사 2년 차, 심각한 문제가 아닌 이상 어미도 좀 가벼운 것으로 고른다. 진중하게 말하면 문제도 중해 보이니까.

하십시오체랑 해요체를 적당히 섞어서 '나는 당신을 존중합니다. 그렇다고 어려워하는 건 아니에요'라는 느낌을 담는다. 활기와 성의를 담은 느낌표도 꼭 쓴다. 학교 다닐 땐 절대 안 썼던 물결(~)도 이제 없으면 안 된다. 물결만 쓰면 너무 가벼워 보이니까 '~!' 조합으로 해서 적당한 무게감 + 활기 + 성의를 모두 표현한다.

다른 직군 분들 멘션해서 코멘트 남길 때는 거의 항상 "확인 부탁드립니다", "검토 부탁드립니다"로 마무리한다. '이러이러하니 알아두십시오' 정도의 이야기는 "참고해주세요~!"라고 말한다.

이제는 이런 말들이 제스처에 가깝다는 걸 알고, 나도 습관적으로 쓰는 편이다. 사실 이 모든 게 다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불필요한 비용이라고 느껴질 때도 많다. LGTM이 왜 나왔는지 십분 이해가 간다.

 

 

번외

회사 메신저로 쓰는 라인이랑 개인적으로 쓰는 카톡에서 주로 사용하는 이모티콘도 이렇게나 다르다.
라인에선 '오', '앗', '넵', '감사합니다' 같이 리액션을 대신해줄 스티커를 쓴다. 반말로 된 스티커는 안 산다.
카톡에선 일단 긁적거리고 보는 듯...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