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모르는 인턴에서 황망한 신입으로

2020. 1. 1. 15:26데일리로그/일하는 사람의 자아

2019년, 오피셜리 개발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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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른 사람들 다 컴공이다. 그래서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어찌 생각하면 역으로 나만 비전공자이니 마음을 조금은 편히 먹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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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더미가 된 기분은 참 싫다. 조급하고 맘 졸이며 남의 뒤꽁무니 쫓아가는 것도 애써 포장하기 지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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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버그도 곧잘 고친다. 새로운 기능 개발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러니 이번 주말에는 진짜 꼭 코드 전체 리뷰해야지. 지금까지는 PR 하는 의미도 없이 머지에 급급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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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는 학력에 콤플렉스가 있다. 개발에 있어서는 간판빨이 별로 없다고 믿는 나는 코카콜라가 학력에 그리 아쉬워하지 않아도 생각하지만. 코카콜라도 내가 비전공자라서 주눅 들어 있는 걸 알고 있다. 그는 현업에서 일하는 이상 '컴공'이라는 게 유명무실한 것 같다며, 요즘은 어디서든 프로그래밍을 배울 수 있고 또 독학도 가능하니 오히려 비전공자로서 실력을 드러내는 게 개발에 대한 노력과 관심까지 반영해서 더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를 위로하려고 만들어 낸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 설득력이 있었다. 더 든든하게 믿어졌다.

* 코카콜라는 같이 인턴십을 진행한 동료 인턴이다.

Internship Review

  • 코딩 컨벤션을 보면서 오히려 언제 무슨 함수/메서드를 써야 하는지 배웠다. (그 정도였다 내 실력은)
  • 처음에 튜토리얼 상호 피드백, 질문과 답변 ->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다! 의미가 불명확한 부분은 나의 이해도 부족했던 것. 실수도 고칠 수 있었다.
  • 튜토리얼을 써보는 건 개념을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노티만큼은 자신 있게 구현할 수 있다 ㅎㅎ)
  • 내가 공부하는 데는 팀원의 코드가 참고자료였다. 내가 쉽게 이해하지 못하거나 거듭 질문해야 했던 팀원의 코드도, 질답이 오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나고 개선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 달 더 공부하면 지금의 코드를 또 뜯어보고 고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코드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그로부터 9개월 후 역정을 내며 리팩토링을 하게 되고...) 코드를 고치면서 많이 느는 것 같은데.
  • 인턴 넷 가운데 놓인 테이블이 여러모로 큰 역할을 했다. 조식, 간식 테이블로 뿐만 아니라 그 위에서 많은 질의와 도움 또한 오갔다. 뒤돌거나 옆 사람에게 다가가는 거리를 좁혔다.
  • 개발뿐 아니라 UI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 좋은 협업 방법. 문서화. 특히 "이 프로젝트를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라는 말이 크게 각인되었다. 배포까지 한 증권 앱은 이슈와 PR의 공개성이 느껴져서 문서화의 중요성을 곧바로 느낄 수 있었고 금방 습관화할 수 있었다.
  • 내가 한 일이 어떤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두 눈으로 보고 인턴십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건 더없이 소중하고 귀한 경험이었다. 이전의 프로젝트는 개인 작업, 끽해야 지인 정도에 밖에 가닿지 못했다. 내가 만든 게 '서비스'보다는 '작품' 같았다. 그런 점에서 'DIVE IN'은 꽤 감격스러웠다.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고, 실사용자가 있는 서비스를 만든 거니까. 증권 앱은 더욱 책임감이 크게 들었다.
  • 눈에 보이는 게 좋아서 FE 개발이 잘 맞았다. 촉박하지 않고 재촉도 없었기에 공부하며 개발할 수 있었다. 갓 시작한 내게는 최고의 환경이었다. 회사보다 학교 같았다. 하지만 현업(실무)에선 가장 촉박한 단계에서 일하는 게 FE 개발자라니 좀 걱정스럽다. 소화할 수 있을까.
  • 나를 왜 뽑았을까. 내게 무엇을 기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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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과의 개별 면담.
"실력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 저와 JH 님 모두 지켜보았고 잘 알고 있습니다. 영록 님 스스로도 느끼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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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선배가 팀장님의 러브콜이 진심임을 이야기해주셨다. 안 그래도 좋았던 마무리가 더 뿌듯하다.
하지만 나 페메 번들 잘못했잖아... 끝까지 완벽을 기하는 습관을 들이자

5/24

이미 일했던 부서에 다시 지원한 것을 안전한 선택 취급할까 봐, 만약 일하게 되면 경험이 있으면서 반복하는 실수를 이해받지 못할까 봐 걱정한다는 말에, 감귤은 자기 생각은 다르다고 했다. 다른 곳에서 인턴을 하면 이력서에 다양한 경험으로 한 줄을 더 추가할 수 있는데도,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서 기존의 경험을 다시 하며 제대로 배움의 뽕을 뽑겠다는 자세면 오히려 회사에서는 더 반길, 반겨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한 댔다. 나의 걱정을 이점으로 치환해주다니!

* 감귤은 마음의 크기보다 생각이 더 많아 늘 넘치는 내 친구다.

7/29

팀 합류 제안을 받았다.
내가 러닝 커브를 가진 사람이라고 하셨다.

7/30

Q. 현재 느끼는 행복을 1~10으로 표현한다면?
A. 3. 행복할 만한 일이 있는 거랑 행복을 느끼는 건 별개의 문제. 너무 오랫동안 행복지수가 높더라니

9/11

"최종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9/16

새로 일하게 된 팀에 대한 우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팀에서 일하기로 한 이유를 들은 J가 6개월쯤 뒤 내 생각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조금 까다롭고 어려운 사수가 있다면 오히려 실수가 잦고 실수하면서 배우는 신입으로서는 더 빠르게 배우고 꼼꼼히 준비하고 기민하게 대처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얘기를 J에게 했다. 나도 6개월 뒤의 내 생각이 궁금하다

9/23

첫 출근.
"순간순간의 기회로, 타이밍이 좋아서, 얼결에 예상치도 못하게 일을 시작하게 되니 덜컥 겁이 나고 무서워요."
그 얘기를 들은 선배님은 단호하고 확실하게, 내가 잘해서 그런 거라고, 그동안의 사람들 중 내가 가장 잘했기 때문에 여기 있는 거라고 말했다. 앞으로 최소 10년은 나의 능력이나 위치를 질투하며 깎아내리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내가 '운이 좋아서' 일이 잘 풀린 거라고 내 공을 깎아내리거나 무시하면서.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내가 잘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 능력 믿으라고.

9/26

처음 열린 공모전에서 수상했던 사람 중 유일하게 여기까지 왔다. 사람 일 참 신기해. 비동기가 뭔지도 몰라서 콘솔에 1, 2, 3, 4, 5 찍고 왜 순서가 엉망이냐 하던 게 불과 일 년 전이다. 글자랑 하면서, 회사 코드 열어보면서 앞으로 갈 길이 먼 것만 보며 아득했는데. 그래, 돌아보면 정말 성장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빠르긴 했다.

10/22

혼났다. 혼났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혼내신 거라니까 혼난 거겠지 뭐.
일의 스케줄을 스스로 짜야하고 그걸 동료와 제때 공유해야 한다고.

질문하고 싶은 게 정말 많은데 하나하나 다 물어보기에는 또 너무 사소하고 하찮은 것 같다. 공부를 좀 하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알고 뭐가 문제인지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그제야 비로소 질문할 마음의 준비가 된다.
그런데, 선배님이 그거 자존심이란다. 완벽하지 못한 걸 내놓지 못하는 자존심. 내려놓아야 한다고. 회사에서 주는 돈은 얼굴 붉히는 몫이라고 생각해도 된다고. 선배님은 일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뭐라도 하는 게 하나도 완성된 게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댔다.

지난 주 내내 커밋 하나를 못 올렸다. 새로운 사실을 거듭 알게 되고, 그러면 지난 작업에서 잘못된 게 보이니 그걸 고쳐야겠고, 그러다가.
언제쯤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소리가 나올만큼 익숙해질 수 있을까...

11/29

'황망하다'. 요즘 제일 많이 쓰는 말이다. '마음이 몹시 급하여 당황하고 허둥지둥하는 면이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지내?" 하고 누가 물으면 그렇게 답한다. 매일 쓰는 업무일지에 혼자 붙인 이름도 '황망한 신입의 업무일지'다. (황망이 수식하는 건 신입과 업무일지 둘 다다.) 어서 능숙하게 일을 하고 싶은데, 손과 머리가 마음 같지 않으니 예상치보다 열두 배는 더 오래 시간을 쏟아야 겨우 겨우 일 하나를 끝낸다. 그게 속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일을 아직 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애를 쓰고 기를 쓰면서 배워가고 있단 걸 아무도 몰라줄까봐 마음을 졸였나보다. 지금 느끼는 속도가 더딘 것 같아서 그렇지, 곧 진짜 잘할 건데, 진짜 진짜 곧.

"참고로.. 전 영록님이 뭘 잘해보려고 했는지
얼마나 마지막까지 애썼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ㅎㅎ
넘 걱정은 마시고.. "

흐잉... 배포 버튼 누르고 퇴근을 한다. 엉뚱한 작업을 해놓아서 사수 님이 다 손보아 주셨지만, 멋모르고 일정을 잡아 이 사단을 냈지만, 그래도 마음 편한 주말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애썼다!

12/10

룸메가 말하기를,
입사 후 줄곧 내가 쌕쌕 코를 골며 잔단다. 언니가 많이 피곤하구나 한다고. 입사 직후에만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도 그렇더라고.

일에 어느정도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마음이 치이고 채이나보다.

12/27

이번 주 내내 매달렸던 프로젝트의 2년 묵은 이슈들 오늘 왕창 해결하고 PR 날렸다. 3개나!
특히 GA! 엄청 서칭했는데 PR 올렸더니, JH 님이 "영록님 GA 도입 PR 완벽하네요. 구현부터 문서까지. /박수"
헤헤... PR이 거의 TIL 급이라 업무일지에 TIL 쓰려니 시작과 끝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