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를 기억하는 도시, 고슬라(Goslar)

2017. 11. 14. 09:33해외여행/2017 독일 주말나들이

2017. 10. 07.


Herbst Kurs에서 기획한 두 번째 여행, 고슬라. 니더작센 주에 있는 작은 소도시라 Semester Ticket으로도 갈 수는 있지만, 이런 기회에 가지 않으면 혼자서는 갈 마음이 별로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이쯤되니 Herbst Kurs 수업으로 심신이 지쳐서 주말에 그냥 방콕하고 싶기도 했지만, Herbst Kurs 뽕 뽑아야지! 하며 또 아침 일찍 일어나 부산스레 챙겨 나갔다.



Kaiserpfalz Goslar





An der Gose

'고슬라'의 지명이 바로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 'Gose'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한편 이 강의 물로 만든 지역 맥주 또한 'Gose'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괴팅엔에도 Göttinger 맥주가 있어서 신기했는데, 알고보니 독일 각 지역마다 고유한 방법으로 맥주를 양조하여 지역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고슬라의 Gose나 쾰른의 Kölsch처럼.





Simenshaus, Goslar

저 길 끝에 보이는 붉은 건물이 고슬라 유지 'Siemens(지멘스)' 가문의 집이다. 말하자면 종갓집 건물인 셈이다. 이 지멘스 가문이 바로 독일의 엄청난 엔지니어링 회사인 그 지멘스란다. 집의 규모도 엄청나고 예술적인 가치도 높아서 집이 곧 가문의 재산인데, 집이라는 건 사람 냄새가 나야 오래 유지되는 법이니, 종손이 가문의 대표로 이 집에 거주하며 관리를 담당하고 있단다. 2년에 한 번씩 지멘스 가문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고. 아직도 종갓집을 필두로 거하게 제사를 지내는 한국의 유서 깊은 가문들이 생각나, 고슬라가 꼭 안동같기도 해 웃음이 나왔다.





Large Holy Cross, Goslar

1254년에 지어진 호스피스 병동. 가난하고 병든 자들, 고아, 순례자들이 잠을 청하고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벽 쪽엔 작은 공간이 있어 개인 사물함처럼 사용했다고 한다. 이곳의 사람들이 신께 기도하고, 신의 뜻을 전해받을 수 있도록 호스피스의 한쪽엔 작은 예배당이 마련되어 있었다. 지금은 장인들이 수공예품을 걸어놓고 판매하고 있어, 따스한 느낌이 가득한 공간이라 처음 들어섰을 때는 이 공간이 어떤 공간이었는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Lohmühle, Goslar





애들이 뒷태가 귀여워서 찍지 아니할 수 없었단닿ㅎㅎㅎㅎ





Goslar Museum

고슬라 뮤지엄 문지기! 문지기가 무서워야 하는데 너무 귀엽다.




고슬라 뮤지엄 앞엔 시내의 모습을 보여주는 쇠지도가 있었다. 왼쪽 가이드 선생님이 물을 흘려보내면서 도시에 흐르는 강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또 고슬라의 교회를 모두 이으면 십자가 모양이 된다는 사실도 알려주셨다. 박물관에서 버튼 누르면 불이 반짝이는 그런 미니어쳐 지도만 보아오다가, 이렇게 만질 수 있는 도시 미니어쳐를 보니 색다른 맛이 있었다. 작은 피규어가 있었다면 이 미니 고슬라 곳곳에 우리가 간 곳을 표시해보는 것도 재미있었을 것 같다.





조금이라도 집을 넓게 쓰고 싶은 욕심은 시대를 초월하고 다 똑같나보다. 허가가 난 지상 너비는 정해져있으니 층을 쌓아가면서 조금씩 면적을 넓히는 바람에, 이렇게 양쪽 건물이 닿을 것 같은 골목도 간간히 보였다.





Marktplatz, Goslar

크리스마스 마켓 시즌엔 손에 꼽힐 정도로 아름답다는 고슬라의 마르크트 광장! 일요일이라 광장에서 작은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고기를 구워 팔기도 하고, 당연히 Wurst랑 Bier도 빠질 수 없다. 날이 추워서 광장을 오가며 고기 굽는 가게 앞에서 슬슬 눈치를 보며 불을 쬤다.





Marktplatz, Goslar

우리 엄마 아빠가 타고 1원 내고 탔을 것만 같은 아이들용 놀이기구도 있었다. 신이 잔뜩 나서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아이가 너무 귀엽고 우스워서 절로 엄마미소가 지어졌다.




Der Dukatenkacker, Goslar

기둥의 하단부를 보면 한쪽 팔로 기둥에 매달려 똥을 싸는 남자가 있다. 자세히 보면 그 똥에 '돈'이 섞여있다! 그래서 이 남자의 이름도 'Dukatenkacker' 혹은 'Dukatenscheißer'. 우스운 동상이지만, 사실 고슬라 사람들에겐 마냥 우습기만한 건 아니었다.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하는 사람이 있거든, 이 동상 밑에 바지를 벗겨 온 사람이 보도록 세워두었다고 한다. 그런 벌을 받은 사람은 부끄러워서 더 이상 마을에서 살 수 없었다고.





깃발을 들고 북을 치며 고슬라 시내를 활보하는 이들도 있었다. 뭘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ㅎㅎㅎ





Rammelsberg, Goslar

버스를 타고 이동한 람멜스베르크 광산.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아직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는 광산이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고 한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보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 한국에서는 손에 꼽으니까 세계적으로도 그렇게 많진 않을 줄 알았는데 괴팅엔 주변에만도 이미 몇 개야…….) 이 광산이 고슬라를 먹여살렸다고 한다! 표를 끊고 안전모를 쓰고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입장하기 전, 홀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대기하게 된다. 광부들이 입었던 옷과 신발이 천장에 매달려있는데, 언뜻 보면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것 같아 흠칫 놀랐다. 한쪽엔 코카콜라 자판기가 있었다! 사먹을 수 있는 건가, 하고 보는데 지불할 수 있는 방법이 '유로'가 아니라 '마르크'였다. ㅎㅎㅎ



Rammelsberg, Goslar

광산 내부엔 채광과 물자 수송에 이용하는 아주 거대한 물레방아와 도르레가 있다. 광산이 무려 지하 14층의 깊이였다! 도르래의 한 쪽 끝에선 관리자가 감독하고, 다른 쪽 끝에선 물레방아가 돌아가는데, 우리는 가운데 쯤에서 양쪽을 바라보는데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둡기도 하거니와 너무 까마득히 멀어서… 그 정도로 거대한 시설이었다.



Rammelsberg, Goslar





Rammelsberg, Goslar





Rammelsberg, Goslar

광산 안에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그 깊이도 가늠할 수가 없었다. 계단은 좁고, 지하수 때문에 미끄럽기까지 해서 걸음마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Rammelsberg, Goslar

지금은 전기를 끌어다 조명을 밝히지만, 광부들이 일하던 때엔 등잔에 불을 붙여 들고 다녔단다. 가이드 선생님이 전기불을 끄고 등잔불을 켜서 당시 상황을 재현하셨는데, 등잔불을 켜도 정말 한 치 앞 보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어두웠다. 계단도 많고 바닥도 미끄러운데 이걸 들고 광부들이 이 광산을 돌아다녔다니, 무서워서 다녔겠나 원. 실수로 불이 꺼지면 불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아 옮겨 받아야 했었다고 한다.


그나저나 아무리 조명이 잘 되어 있어도 절대적으로 어두운 광산 안에서, 영어로 진행되는 설명에 하루 종일 집중을 쏟았더니 피곤이 몰려왔다. 막판엔 거의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졸기까지 했다. 서서 졸아본 건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인 것 같다. 고등학생 때만큼이나 피곤했나?


광산에서 나오니 나도 모르는 새 신발과 바지에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지금 지우는 것보다 아예 빠싹 말려서 지우는 게 더 잘 지워진다는 가이드 선생님의 팁을 끝으로, 광산 관람이 마무리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