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고향 아이제나흐(Eisenach), 루터의 은신처 '바르트부르크 성'

2017. 11. 14. 05:33해외여행/2017 독일 주말나들이

2017. 09. 30.

아이제나흐(Eisenach) 


독일로 교환을 온 올해는 공교롭게도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에서 할로윈은 그다지 큰 행사가 아니지만, 그래도 10월 31일은 '할로윈'이라고 머릿 속에 박혀있었다. 적어도 올해만큼은 루터의 종교개혁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 덕분에 올해 빨간 날이 하루 더 생긴 셈이라서. ㅎㅎㅎ


독일에서 마틴 루터의 발자취를 좇고 싶다면 가볼 수 있는 세 도시가 있다. 95개조 반박문을 성당문에 붙였던 비텐베르크(Wittenwerg),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던 보엄스(Worms), 그리고 바르트부르크 성에 은신하여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던 아이제나흐(Eisenach).


Herbst Kurs에서 기확한 근교 두 군데가 있었다. 아이제나흐와 고슬라. 고슬라 여행엔 산행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아이제나흐를 골랐다. 어차피 2주에 걸쳐 두 곳 모두 가볼 거니까 조삼모사이긴 했지만, 당장의 고단함은 피하고 싶은 걸. 매일 9시 반에 간신히 일어나 10시까지 수업을 가고 있는 요즘인데, 아이제나흐로 가는 버스는 8시 반에 출발한단다. 미적거리다 시간이 촉박하게 집에서 나와, 버스 타는 곳까지 정말 죽어라 뛰었다.







예보에선 비가 살짝 흩뿌리는 날씨일 거라 했는데, 가는 길 창문 밖으로 펼쳐진 경광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오히려 촉촉하게 가라앉은 차분함이 마음을 평화롭게 했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옥수수밭 덕에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바흐하우스(Bachhaus) 



실은 버스를 탈 때까지도 아이제나흐가 어떤 도시인지, 우리가 이곳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여행 일정표를 받아 읽으면서, 오 우리가 바흐하우스랑 바르트부르크 성에 가는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바흐하우스는 이름을 보고 당연히 바흐와 관련된 곳이겠거니 생각했다. 바흐하우스를 둘러보면서 바흐가 아이제나흐와 아주 연이 깊다는 걸 알았다. 여기가 바흐의 고향이었구나.



Neu-auffgelegtes Dreßdnisches Gesang-Buch, Dresden/Leipzig: Mieth, 1707From 1707 onward, this "Dresden Hymnal" was used in Leipzig's churches. With its 451 tunes, it is the one that is closest in time to Bach's years as the cantor of St.Thomas' Church in Leipzig from 1723. Only four copies of the 1707 edition are known - the only one in which the tunes are printed.

바로크니 로코코니 하는 예술 사조,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같은 예술인들을 책이나 교과서로 접해서인지, 나도 모르게 꽤나 옛날 것, 옛날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피카소가 마릴린먼로보다 더 늦게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그래서 오히려 역사를 공부하며 숱하게 접한 루터는 머릿 속 연대표에서 위치가 정확하게 찍혀있다. 그에 비해 바흐는 그저 아득한 옛날 저 옛날 '클래식(고전)'한 시대에 살았던 것 같을 뿐이다. 예술의 세계에 대한 시대 감각이 없다. 바흐박물관에 왔는데 계속해서 루터와 그를 엮어 설명하는 걸 읽으면서야 바흐와 루터가 그토록 깊은 관련이 있는 줄 알게 되었고, 더욱이 바흐가 루터보다 후대의 사람이며 루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까지 새롭게 알았다.





Martin Luther(1485-1546), Geystliche Lieder, Nuremberg: Valentin Neuber, 1563The "Babst Hymnal" which was published in Leipzig in 1545, is the last hymnal to be printed in Luther's lifetime. The Nuremberg reprint of 1563 is regarded as the most magnificent Lutherran hymnal of the 16th century because of its ornamentation and many woodcuts.





Hans Bach, Lithography, 17. Jh., Original: Berlin State LibraryThe violinist is said to be Hans Bach (approx. 1550-1626), who was Bach's great-grandfather and the first famous professional musician in the Bach family.





또 하나의 놀랐던 사실, 바흐는 자녀가 13명이나 된단다!





소박하고 조용한 아이제나흐





바르트부르크 성(Wartburg) 


[유네스코와 유산] 바르트부르크 성


영어 오디오가이드를 챙겼는데, 운이 좋게도 한국어로 설정을 바꿀 수 있었다. 덕분에 넋을 반쯤 놓고도 마음 편하게 설명을 들으며 돌아다닐 수 있었다.




괴팅엔에서 매일 우중충한 날씨에 건물만 보다가 이곳에 나와 너른 지평선을 보니 마음이 탁 트였다. 더욱이 단풍이 막 시작되는 산맥이 첩첩이 들어선 것이, 한국의 산에 오른 것 같아서 마음이 더 울렁거렸다.





사람들이 이곳을 성지로 여기며 찾아오게 하는 사람은 루터 뿐이 아니었다. 성 엘리자베스, 이곳 성주의 아내였는데 남편의 사후 자선 사업에 헌신하며 살다가 젊은 나이에 성을 마감하였다. 성주 백작의 가문에서는 엘리자베스의 자선 사업에 반대하여 그녀를 내쫓아버렸다는데, 그런 그녀가 성자로 추대되어 이 성을 빛내는 위인이 되었으니 그 백작 가문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갈 것을……. 괜히 며느리 쫓아내서 길이 길이 욕만 먹는다.





망루는 이제 전망대로 전락하여 계단 입구에서 돈을 내야 올라갈 수 있었다. 어차피 높은 곳에 올라왔으니 보이는 건 별반 다를 바 없을 것 같은데 굳이 이걸 돈까지 받고 올라가게 하는 게 좀 괘씸하고 얄미웠다.


날씨 탓인지 많이 걸어서인지 집 밖으로 멀리 나와서인지, 1분에 한 번씩 하품이 나왔다. 나뿐만이 아니라 소연이도 그랬다. 둘이서 방에 마련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가이드를 듣는데, 중간에 계속 조는 바람에 같은 부분을 세 번이나 돌려들었다. 결국 무슨 내용인지 다 듣지도 못하고 다음 방으로 넘어갔다. 밖에서 봤을 때는 그리 크다는 생각 않고 들어갔는데, 막상 성 안에 들어가니 방마다 들을 이야기가 가득해서 끝에선 시간이 부족해 허둥지둥 뛰어나왔다. 그 와중에 좁고 어두운 루터의 방에 눈도장 꼭 찍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