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현장, 쾰른 카니발(Könler Karneval)

2017. 11. 15. 17:19해외여행/2017 독일 주말나들이


2017. 11. 11. 11:11


11월 11일 11시 11분에 쾰른에서 성대한 카니발 축제가 시작한다는 소식을 독유네에서 읽었다. 그런 거라면 또 아니 갈 수 없지! 근데 쾰른 카니발에 가려한다는 말을 들은 독일 애들 반응이 영 시원찮다. 요엘은 "솔직히 말해서, 그거 좀 이상할 수도 있어. 술취한 사람도 많을 거고."라고 하며 찜찜한 반응이었고, 파울은 "음… 큰 축제긴 한데, 내 타입은 아니야…;"라고 그랬다. 걱정이 되어 검색도 열심히 했는데, 애들이 말한대로였다. 술 취한 사람 엄청 많고, 캣콜링이며 인종차별이 난무한데다, 거리는 토밭이라고. 그래도 안 가보고선 그거 별로래, 하는 것보단 가보고 별로더라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카니발이 난장판이라면, 우리도 난동 부려 보지 뭐!


쾰른 팟을 꾸렸다. 금요일 새벽에 출발해서 토요일 밤에 돌아오는 1박 2일 원정대였다. 최종적으로 같이 가게 된 건 미영이랑 현아! 미영이도 꽤나 오랜 시간 갈 지 말 지 심사숙고 하는 것 같았는데, 그새 많이 알아보고 결정한 것 같았다. 블로그 찾아보니 왜 혼자 가지 말라는지 알겠다며, "광란의 월요일이라는 이름에 맞게 평상시 완벽한 치안과 질서를 자랑하는 쾰른은 이날만큼은 무질서와 난장으로 가득찹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재밌어보임과 함께 위험해보임도 느꼈단다. ㅋㅋㅋㅋㅋ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게 된 건 다 미영이의 이 말 덕분이다. "니하오" 정도는 웃어 넘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며 쾰른 카니발에 발을 들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도 실망할 각오를 해서인지, 생각보다 훨씬 즐겁게 즐기고 왔다! 니하오를 염두에 두었는데 예상치도 못한 곤니찌와가 나와서 당황했지만. 근처 뒤셀도르프에 엄청 큰 일본인 타운이 있어서 그런지, 이쪽은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니하오보다 곤니찌와가 먼저 나오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전에 인종차별을 당했을 때는 혼자 있어서 보복이 두려워 못 들은 척하거나 무시하며 지나가야 했는데, 이번에는 "닥쳐!"하고 뒷통수에 소리를 지르거나 "봉쥬르~^^?"하고 맞대응을 했다. 바보같이 당하고만 있지 않았던 게 은근히 뿌듯도 하다.


물론 캣콜링도 없진 않았다. 집요한 시선이 느껴질 때 끝까지 피해야 하는데, 실수로 눈이 마주치면 어김없이 시시껄렁한 놈들이 추파를 던지며 말을 걸어왔다. 그래도 말 거는 이들 크게 신경 안 쓰고 우리끼리 대화하며 다녀서, 걱정했던 것만큼의 캣콜링을 당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쾰른이 아니라 하노버에서 메일로 연락하자는 이상한 아저씨랑, 웃음을 흘리며 신상과 남자친구 여부를 캐묻는 변태같은 차장을 만났다. 그 차장, 돌아서서 가려는데 내 어깨에 손을 대고 토닥거리고, 우리가 내릴 때도 끼부리며 인사를 했다. 아 진짜 소름.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진상은 정말 어딜 가나 있다.


어쨌거나 비장한 각오로 간 것 치곤 꽤나 즐기고 온 카니발이었다! 2월의 로젠몬탁은 훨씬 더 재밌다고 하니, 그때도 기회가 되면 큰 바구니 들고 가볼까 한다.



카니발이니만큼 소소하게나마 분장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수요일 Theater 수업에 Ossi가 축제에 쓰고갈 법한 모자를 하나 들고 왔다. 옥토버페스트에 놀러갈 때 썼던 모자라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Ossi한테, 혹시 주말동안 모자를 빌려줄 수 있느냐 물었다. Ossi가 흔쾌히 내어준 모자를 소중히 안고 쾰른에 도착했다.


원래 카니발 전날 DM에 들려 얼굴에 붙일 파츠를 사려했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파츠가 보이지 않아 아쉽게 숙소에 들어왔다. 카니발 당일 아침에 살짝 늦잠까지 자서, 화려한 축제 화장은 무슨, 평소에 하던 데일리 메이크업만 하고 나가게 되었다. 아쉬운대로 아이라인을 길고 진하게 그렸다!


모자 쓰고 다닐 생각에 잔뜩 신나서 나갔는데, 웬일이야, 외곽지역인 숙소 근처 트램 정류장에서부터 이미 축제 흥을 느낄 수 있었다. 트램을 타려 삼삼오오 몰려드는 사람들의 코스튬이 예사롭지 않았다. 처음에 나타난 이들은 귀엽고 섹시한 바니걸 정도였는데, 그 뒤로 해리포터, 윌리, 운동선수 코스튬을 입은 이들이 정류장에 등장했다. 시내로 향하는 정류장마다 각종 분장을 한 사람들이 타기 시작해서, 막판엔 거의 출근시간 지하철 2호선 급으로 트램이 가득 찼다. 그리고 백주대낮조차 안 된 이른 아침부터 다들 맥주나 샷병(?)을 손에 쥐고 취해가는 중이었다.


분장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나왔던 현아랑 미영이도 화려한 코스튬의 인파 속을 다니다보니 심심하고 아쉬웠는지, DM에 다시 가서 페이스 크레용이라도 사다가 얼굴에 그림을 그리자고 했다. 전날 보였던 크레용은 그 자리에 없었지만, 크리스마스 장식 코너에서 반짝이는 별이 한가득 달린 철사를 발견했다! 둥글게 말려 작은 철사로 고정되어있어서, 머리에 쓰면 딱 천사의 광배 느낌일 것 같았다. 얘들아 이거 써봐!!! 이거 이거!! 겁나 이뻐!


헿ㅎㅎㅎ 그렇게 완성된 천사 커플! 볼 때마다 너무 너무 귀여워서 엄마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는데, 현아가 계속 왜 웃냐고 물어서 몰래 웃느라 혼났다.



그리고 볼에다가 블러셔를 끼얹었다! 볼만 빨개진 건데 그만큼 술마신 것 같은 기분으로 막 업되고 신이 났다. 볼터치 해놓고 셀카를 막 찍는데 그걸 또 미영이가 놓치질 않았다. 히히히힣ㅎㅎㅎㅎ


오전엔 카니발 즐기고 오후엔 시내를 빠져나와 쇼핑 거리를 구경했다. 카니발 광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취한 사람이 많아지고 바닥도 술과 병으로 엉망이 되어서, 우리가 딱 적절한 시간에 치고 빠진 게 되었다. : ) 





카니발에서 진짜 많이 본 코스튬 중 하나가 ↑ 저렇게 생긴 애들! 80년대 에어로빅 패션으로 형광 쫄쫄이에 핑크색 에어로빅 복장 입은 애들을 정말 정말 많이 봤다. 레고샵에서까지도 발견!





3시 반쯤 되니 슬 지치고 다리도 아픈데다 당도 떨어져서 카페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쇼핑 거리에 있는 카페들은 너무 비싸거나 사람이 너무 많아 손님을 받지 않았다. 게다가 대규모 인파가 몰려서인지 데이터도 전혀 터지질 않아, 결국 한 번 더 스타벅스로 오게 되었다. 스타벅스는 언제 어딜 가도 적절한 온도와 빵빵한 와이파이가 보장되어 있으니까! 이번에도 Viele Drizzle, 하고 요청했는데, 오 이번엔 진짜 흘러 넘칠만큼 드리즐을 듬뿍 뿌려주었다!


스타벅스 바로 앞 작은 광장도 발 디딜 곳 없을 정도로 사람이 들어찼다. 그래서 덩달아 스타벅스 화장실도 줄이 엄청 길어졌는데, 보니까 1유로씩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긴 줄을 섰다가 내 차례가 되어 들어가려했는데, 문을 지키던 청소부가 1유로를 요구해서 뭔 말이야 이게, 하고 당황스러웠다. Warum?하고 물으니 화장실이니까!라고 답해서 또 한번 더 머릿 속에 물음표가 떴다. 그게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 하는 표정을 지으니 청소부가, 손님이면 그냥 들어가도 된다고 덧붙였다. 내가 모자를 쓰고 있어서 밖 광장에서 놀다가 화장실 찾아 온 사람인 줄 알았나보다. 화장실 관리 차원에서 사람이 드나들 때마다 청결 상태를 점검했다. 나갈 때 보니 입구에도 화장실은 1유로를 받는다고 적혀있었다. 역사가 긴 축제라, 스타벅스도 요령이 다 생겼구나.





오질리먼시!!!!!!!!




돌아오는 기차는 두 번이나 환승을 해야했는데, 하필 첫 기차가 40분 가량 연착되어버리는 바람에 환승해야 할 뒤의 기차들도 줄줄이 사탕으로 모두 놓쳐버렸다. 독일에 와서 기차 연착 안 겪고 살 수 없다더니, 하필 오늘 걸려버렸네. 그래도 스타벅스에서 쉬고 있을 때 연착 소식을 들어 정말 다행이었다! 번잡스러운 역에서 바람 맞으며 기차 기다리다가 연착 공지 봤으면 얼마나 화가 났을까.


기차에서 현아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면서 뭐라 쓸 지 고민하고 있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더니 몰랑몰랑한 하루였다." 어떠냐고 멘트를 제안했다! 현아가 마음에 들어하며 그렇게 사진을 업로드했다. 근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영이가 그 글을 읽자마자, "이거 너가 쓴 거 아니지?"하고 알아챘다. 세상에나 ㅋㅋㅋㅋㅋㅋㅋ 현아를 너무나 잘 아는 친구다. 둘이 무슨 콩트를 찍어!


기차 연착은 진짜 애매하게 2시간에서 딱 3분 부족하게 되어, 50%가 아닌 25% 밖에 환불을 못 받게 되었다. :-(






그래도 도착한 밤 딱 30분간, 또 언제 볼 지 모르는 맑은 별밤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