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4. 23:20ㆍ 로그/1인 가구의 삶
작업실에 하나둘씩 임시로 뒀던 짐들이 이내 지박령이 되고
분명 작업실이라고 일컫던 방을 어느 날부턴가 짐방이라고 부른다는 걸 깨달았다.
거실 아트월을 책 선반으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책이 늘어날 때마다 선반에 진열해 둔 책의 간격이 좁아지는 게 싫었다.
책장으로 쓸 선반이 없어서 종이책을 못 사고 있는 거 아닌가?
나는 전자책보다 종이책이 더 좋은데...
책장으로도 쓰고 짐도 정리해서 넣을 수 있는 선반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인터넷을 뒤지다 결국 무인양품 SUS 선반에 꽂혀버렸다.
양 옆과 뒤가 트여 있어 개방감을 주는 디자인,
선반으로도 책장으로도 행거로도 공간 분리용 가구로도 쓸 수 있는 넓은 활용도,
모듈형이라 원하는대로 추가 확장해서 선반을 더 연결할 수 있다는 점까지.
가격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디자인과 확장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지불할 의사가 있었다.
이케아 오마르는 구멍이 숭숭 나서 얇은 책은 구멍으로 빠지기 십상일 것 같았고
휠리스는 오브제 따위를 올려놓는 게 아닌 한 투박해 보였다.
무인양품 SUS 선반의 디자인을 도용한 짭도 여럿 보였는데, 그건 정말 사고 싶지 않았다.
무슨 선반을 봐도 무인양품의 SUS 선반보다 못나보였다.
SUS 선반이 나오는 오늘의집 스타일링샷과 블로그 글들과 유튜브 영상은 죄다 찾아봤다.
11월 무지위크 때 대부분의 재고가 나갔는지,
오프라인 매장엔 재고가 전무하고 온라인에도 아주 한정적인 모델만 남아 있었다.
구할 수 없어서 더 애가 탔다.
SUS 선반을 향한 짝사랑이나 다름없었다.
선반 둘 자리를 비우기 위해 몇 달간 두었던 짐을 베란다나 침실의 곳곳에 정리해서 넣어두고
무인양품 10% 할인 쿠폰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사이트 가입을 완료하고 필요한 요건을 충족해 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떡갈나무 선반을 사게 되는데...
그렇다
올려둔 책도 많지 않고 수납한 짐은 하나도 없다.
구매 전
이 선반으로 인테리어를 한 예시를 찾아보면서
오픈형 선반은 물건을 최소한으로만 올려두는 게 가장 아름답다는 걸 느꼈다.
미감을 위해선, 선반이 필요한 이유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선반을 사용해야 한다는 건데.
거실에 진열해 둔 아홉 권의 책과 작은 선반에 꽂아둔 7권의 해리포터 시리즈는 이미 제자리를 찾았으니
종이책은 빌려보고, 소장할 것은 전자책으로만 산다고 하면 사실 책장도 필요 없긴 하다.
박스에 넣어둔 책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꺼내봤더니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아무 문제 없이 짐방에 있던 짐의 제자리를 찾아주면서 결국 모든 명분을 잃어버린 나는
김규림 씨의 랜선 집들이 영상을 찾아보며 꼭 필요에 의해서만 물건을 사야 하냐고 우기기 시작했다.
'사람이 생필품만 쓰며 살아야 하느냐, 쓸모없지만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물건을 진열해 두고 매일 구경하는 것이 낙이다' 하는 것이 김규림 씨의 지론이다.
나도 선반을 독립서점의 진열대처럼 쓰면 되지 않겠냐고
아껴둔 타이포그래피 책을 펴고 조명 빛도 쏴주고
곧 읽을 책은 표지가 보이게 세워서 얼른 읽고 싶게 진열해 두었다.
와이어 거치대를 몇 개 더 사서 통일감 있고 깔끔하게 책을 올려두었다!
허헣 역시 기분은 참 좋다.
서점 매대를 구경하는 것 같다.
아름답다
견물생심 물욕으로 산 선반이지만
충동구매는 아니었던 것이
12월 초에 적당한 선반을 하나 구매했다가 취소하고
두 달 넘게 SUS 선반을 찾아보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스텐 선반이 예뻐 보이나 싶다가도 멋진 오브제가 없을 땐 너무 식당 것 같아 보이고
원목 가구들 사이 스텐 선반이 잘 어울릴지
스텐 선반에 원목이나 라탄 소재의 물건을 두어서 차가운 느낌을 중화시켜 보는 건 어떤지
2024년 쇠테리어가 유행해서 지금 스테인리스 선반을 쓰고 싶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칸 사이 높이를 어떻게 짤지
스텐 말고 원목으로 한다면 호두나무와 떡갈나무 중에 뭘 고르는 게 나을지
그런 고민에 답이 되는 레퍼런스를 찾아 모아뒀다!
하지만 결국 실물을 봐야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아
죽전 스타필드마켓에 있는 무인양품을 찾아갔다.
진열된 건 이게 다인데
이 앞에서 한 시간 동안 하염없이 선반을 쳐다보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평소의 취향은 아묻따 호두나무지만,
막상 집을 둘러보니
나무 종류를 고르기에 앞서 그냥 '원목'인 걸 골랐다가 들이게 된 밝은 색의 가구도 집에 많았고
결정적으로 선반을 둘 작업실이 밝은 분위기라,
이번엔 떡갈나무를 고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한 가지 걱정은 진열된 것만 봐도 떡갈나무는 선반마다 그 색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거였는데,
약간의 톤 차이도 아니고 거의 뭐 누런 페인트를 칠하다시피 한 느낌의 선반도 있어서
떡갈나무로 받아봤다가 뽑기 운이 나쁠까봐 불안했다.
리뷰에서도, 실제로 봤을 때에도 호두나무는 편차가 덜한 것 같으니 고려하면 좋겠고,
다음번에 또 떡갈나무 SUS 선반을 산다면 (모듈형이라 확장 가능하니까!) 오프라인 쿠폰이 있을 때 무인양품 매장에서 직접 골라 사 오는 게 안심이 될 것 같다!
흐흐 이제 종이책 맘껏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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