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6. 00:01ㆍ 문화생활/영화
6월 21일. 2024년의 하지. 해 질 무렵 개미랑 저녁을 같이 먹고 수박도 한 통 사다가 썰어두고 영화 볼 준비를 마쳤다. 감독판이랑 일반판이 있길래 당연히 감독판을 구매했는데, 결제하고 나서야 감독판이 170분으로 일반판보다 30분 가까이 더 길다는 걸 알게 됐다. 거의 3시간짜리라는 건데, 이걸 다 볼 수 있을까 걱정하며 영화를 재생했다.
소감
- 감독이 아리애스터라는데 ISTJ라는 줄 알았음 ㅎ
- 사운드를 너무 잘 썼다. 신경을 몹시 거스르고 어딘가 불편하게 만든다. 시각과 청각이 대조되어 혼란스럽기도. 막판엔 사운드가 다 해먹었다. 음향감독님 최고
- 처음엔 대낮에 청량한 배경에서 잔혹한 장면을 냅다 보여주는 것에 적응이 되지 않다가, 어느덧 밝아서 무섭지 않다고 느끼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 펠레가 소파에 앉아서 대니에게 사진 보여줄 때 묘하게 이 친구 맑눈광 느낌이 있다 싶었는데, 역시 쎄한 건 빅데이터
- 공동체 일원이 느끼는 고통을 공유하(는 듯이 행동하)는 호르가 사람들. 이상하고 낯설게 보이지만서도 나의 고통을 공유해 주는 사람들이었다면 큰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한국의 장례 문화에서도 “아이고, 아이고” 소리 내어 곡소리를 하는 것이 예의인 것처럼 어떤 지점에서는 우리와 문화적으로 맞닿아있지 않은지. 그런 장례 문화를 접해보지 못한 젊은이들은 민망해서 차마 곡소리를 내지 못하는 모습도, 호르가에 섞이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관망하는 대니 일행과 겹쳐 보인다.
- 대니를 외롭고 처량하게 만드는 크리스티안에 대한 분노가 빌드업되어서, 결말에서의 대니의 선택에 조금이라도 후련함이 느껴졌다면 이 영화를 그저 공포 영화라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거 공감이고 내가 느낀 것도 광기야. 이 영화를 치유의 서사라고 이야기한 감독 인터뷰가 이해된다. 애인에게 가졌던 일말의 기대와 희망까지 처참하게 짓밟히고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아 결국 헤어지고, 슬픔을 조금 추스르고 나면 X가 된 그 사람을 증오하고 경멸하고 가족/친구들과 함께 X를 욕하고, 급기야는 그의 앞날을 저주하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술술 풀리는 걸 바라지는 않았다면) 해 본 사람이라면 그게 사실상 대니의 치유와 겹쳐지는 경험 아닌가.
- 함께 보는 사람이 있으니 서로 놓치거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어서 좋았다. 가령 초반부에 나왔던 음모와 생리혈로 ‘사랑의 묘약’을 만드는 방법은 인지했는데, 후반부에서 크리스티안의 음료만 유독 주황빛이 도는 부분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개미가 알려줘서 와 미쳤다 아까 그게 여기서 나오는구나 하고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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