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공상온도 영화제, 'her(그녀)'

2016. 11. 27. 22:57문화생활/영화

2016. 06. 15.


제2회 공상온도 영화제, 'her(그녀)'


공상온도 인스타그램 @gongsangondo

복합문화공간, 홍대 '공상온도'


별의별 출간행사를 여기에서 했어서,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무료로 영화를 상영한다는 게시물을 페북에서 보고 캘린더에 바로 적어두었다.

요즘 다양한 카페에서 예술인을 지원하고,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여는 경우가 왕왕 보인다. 카페라는 공간이 주는 자유와 소음이 예술의 낯섬과 격식을 한꺼풀 벗겨주는 것 같아서 나는 이런 콜라보를 정말 좋아한다. 혹시나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에서 어렵지 않게 예술을 접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별의별'에서 개최하는 음악/출판/전시 등의 행사나, 현장에서 라인업을 공개하는 가족적인 분위기의 뮤지션 초청 공연 'Sofar Sounds Seoul'을 눈여겨 보길!

각설하고, 공상온도는 입구부터 흠뻑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다. 친구한테도 세 번씩이나 "여기 너무 좋아!"라며 문자를 보냈다.


사실 여긴 화장실인데... 이 마저 맘에 들어 굳이 굳이 핸드폰을 들고 가 사진을 찍었다. 헣헣..

카페 뿐 아니라 독립서점이기도 하다. 온통 예쁘다. 벽에는 항상 프로젝터 화면이 쏴지고 있다. 커피 + 책 + 영화! 완전 취향저격 탕탕! 여기서 정말 맛 좋은 홍차라떼까지 팔았으면 큰일날 뻔 했다. 사장님의 멋짐이 폭발하는 부분은 아티스트에게 항상 30% 할인을 해주신다는 점! 알고 있는 캘리그라퍼들 중 몇몇 분들이 여기에 들렀다던 걸 본 적 있다. 그분들 작품도 카운터 한쪽에 걸려있었다. 공교롭게도 내 옆 자리 사람들도 캘리그라피를 하는 이들이었다.


나는 헤이즐넛 라떼! 밤이라 카페인 마셔도 될까 걱정했는데, 항상 그렇듯 마실 땐 "아몰랑, 마실 거야!"
그래서 지금 이러고 있다. 새벽 네 시가 넘도록...


상영한 영화는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좋아했던 'Her'.


두 번째 보는 영화는 더 좋았다. 신입생 땐 어줍잖게 친했던 동기들과 우르르 몰려가 보았는데, 누구랑 보았는지도 불명확할 정도로 기억이 흐리다. 그냥 영화가 좋았다는 거 정도 밖에... 오히려 영화관보다 여기서 본 것이 몰입도도 훨씬 높았다. 영화 끝난 후 간략한 설명을 듣는 시간이 있어, 영화를 곱씹어 볼 수 있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사만다 역할을 원래 사만다 모튼이라는 다른 배우가 녹음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촬영을 다 끝낸 후, 감독이 흡족하지 않아 스칼렛 요한슨을 다시 캐스팅했다고 한다.

어디서 아이폰 시리에게 "사만다~"하고 말을 걸면 답한다는 소리를 들어 한번 해보았다. 아이고 시리야 ㅋㅋㅋ




소개팅 후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대화
"가끔씩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난 앞으로 내가 느낄 감정을 벌써 다 경험해버린 게 아닐까. 그리고 여기서부터 앞으로는 쭉... 새로운 느낌은 하나도 없게 되는 건 아닐까. 내가 정말로 느꼈던 그 감정에서 좀 축소된 어떤 감정만 남는..."
...
"이 감정이 진짜일까? 아니면 그냥 프로그래밍일까? 그런 생각이 정말 상처가 됐어요. 그러고 나서 내 자신에게 화가 났어요. 고통까지 느꼈어요. 이게 그냥 속임수같은 거면 어쩌지?"
"당신, 내겐 진짜처럼 느껴져요. 사만다."

"앨런과 비음성 방식으로 잠시 얘기 나눠도 괜찮을까요?"
- 인간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기술의 발전으로 이미지와 음성은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냄새도 결국 특정 물질의 조합일테니 언젠간 공유가 가능하겠지. 공유보단 재현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렇다면 타인의 감정과 기분을 공유하고 똑같이 경험할 수 있게 될까? 글쎄... 이건 정말 어렵지 않을까 싶다. 감정이나 기분은 현상에 대한 개인의 반응이다. 반응을 제어한다는 건 의식(나아가 무의식까지도?)의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니 이때는 이미 인간 존재의 범위가 모호해져버렸을 것 같다. 이 문젠 철학과랑 문답해봐야지.

친구의 답변
본질로 들어가는 거지. 청각은 음파가 진동하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기관이 있고, 종합해서 인식을 하는 거잖아. 똑같은 형태로 전달이 되면 되는 부분이고. 후각도 마찬가지지. 냄새를 유발하는 물질, 그걸 받아들이는 기관, 그걸 인식하는 뇌. 이 3단계의 작용이 가능하다면 동일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겠지. 여기까진 됐잖아. 근데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잖아. 1단계의 것을 '원인자'라고 지칭하자면, 마음에 있어서 '원인자'라는 것을 규명할 수 있을까? 원인자가 규명되고, 어떤 기관을 통해 뇌에서 인식을 하게 되는지 알고리즘만 밝혀진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
조금 단순화시켜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나누어 보는 거지. 예를 들어 기쁨, 슬픔, 놀람, 공포 등의 감정이 있다고 해봐. 역으로 뇌의 반응부터 따라가는 거지. 뇌의 반응을 따고, 뇌가 반응하는 부분을 자극하는 물질의 작용을 보는 거야.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기쁨을 느꼈을 때는 엔돌핀이 많이 나와서 뇌에서 기쁘다라고 인식하게 만든다고 하잖아. 이런 식으로 엔돌핀이 원인자가 될 수 있는 거지. 그걸 아주 미세한 단위로 컨트롤 할 수 있고, 측정이 가능하다면 A라는 사건이 다른 사람에게 A와 똑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것까지는 가능하다고 생각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 선에서 가능성을 따져본다면.
그런데 A라고 하는 경험이 다른 사람에게 정확한 A일 수는 없잖아. 그건 지금 우리가 가능하다고 본 시각이라든가 청각, 앞으로 나아가 후각과 같은 감각 기관에 있어서도 동일한 경험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지. 감각 기관에서도 차이가 날 거고, 시각만 예시로 따져 보다면, 바라보는 위치, 시력, 그날의 피로도, 이 모든 것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 감각이니까. 감정을 아무리 똑같이 재현해서 넣어준다고 해도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를 수 있지.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본 것도 흉내내기에 그친, 정확한 감정 공유까지는 있을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해.

Q. 더 질문할 부분!
원인자의 공유가 아니라 반응을 주입하는 것은? 가능할까?

- 사만다가 "이 기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하고 포기하잖아. 이건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의 한계인 거지. 그런데 오히려 언어가 감정 자체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은 못하지만, 유사 경험을 할 수 있는 매개는 되어 주잖아. 소설을 읽고 사람들이 감정을 느끼는데, 한낱 글자에 불과한 그것들이 사람에게 경험을 하게 하고 감정을 유발하는 게 어떻게 보면 되게 대단한 거잖아. 언어가 이것밖에 안 되는 건지,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다는 게 대단한 건지...

친구의 답변
언어가 먼저냐, 현상이 먼저냐 하는 물음이 생각나. 이건 너가 말한 한계의 문제인 것 같아. 두 번째, 언어의 대단함이라고 하는 부분은 언어가 기본적으로 가진 당연한 특성이 아닌가 싶어. 대단하다고 보면 엄청 대단한 건데, 내가 느끼기엔... 내가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면, 글자 그 자체에서 감동을 받는 게 아니라, 글자는 내게 상상을 불러 일으키고 나는 상상을 통해 경험을 하게 되는 거잖아. 언어의 역할은 상상을 불러 일으키는 데 의의가 있는 거지, 언어 자체가 내게 그런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언어라고 하는 것은 당연히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의미에서 경험을 구성하는 것은 나인 거지. 그 경험에서부터 나는 감정을 얻은 것이지, 언어가 이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 놀라워, 이건 아니니까. 그래서 아까 언어의 한계와 언어의 놀라움을 너는 묶었지만, 내가 느끼기에 두 가지는 다른 문제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


관계에서의 소유
"그치만 넌 내 꺼라구."

"난 당신과는 달라요. 그렇다고 내가 당신을 덜 사랑한단 게 아녜요."

"넌 내 꺼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아녜요, 테오도르. 난 당신 것이기도 하고 당신 것이 아니기도 해요."

관계의 성숙도는 소유의 범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소유권이 위협당했을 때 방어기제로 작동하는 것이 질투나 속상함일테고. 꼭 사람 간의 관계에 한정하는 것은 아니다. 키워드만 일단 던져놓고 추후에 생각을 확장시켜 봐야겠다.

'She'가 아니라 'Her'인 이유
이동진 평론가가 자신의 해석을 내놓았다던데, 이것도 다른 이들의 해석을 더 들어보고 싶다.

친구는 그냥 제목이 'Her'인 이유라고 묻는다면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She'가 아니라 'Her'인 이유라고 물으니까 주격-목적격으로 밖에 해석이 안 되는 것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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