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스쿠터 사고 후 정줄 놓은 저녁, 김녕 성세기 해변과 제주 순대국밥

2016. 10. 20. 02:22국내여행/2016 제주

아찔했던 스쿠터 사고


 스쿠터 편에서 간략하게 언급했지만, 첫 목적지였던 동복분교에서 다음 장소인 김녕 성세기 해변으로 가는 길에 스쿠터 사고가 났다. 사이드 미러를 조정하려고 잠시 정차했다가 다시 출발하려 했는데, 속도가 붙기 전에 균형을 잃었고 핸들이 제멋대로 꺾였다. 이리 휙, 저리 휙 가다 왼쪽으로 미끄러지듯 쓰러지고 말았다. 넘어진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팔에 힘이 쭉 빠졌다. 저 뒤에서 오는 차가 있었는데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 심장이 벌렁벌렁거렸다. 다행히 운전자가 멀리서부터 넘어진 날 확인하고 비상깜빡이를 키며 속도를 줄였다. 빨리 비켜야했는데 쓰러진 스쿠터는 또 어찌나 무겁던지 일으키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뒤에 오던 운전자는 안쓰럽다는 얼굴로 나를 보며 차선을 바꿔 지나갔다. 손을 덜덜 떨며 겨우 스쿠터를 일으켜 일단 갓길로 끌고 왔다.



 스쿠터 사고가 그렇게 쉽게 나리라곤 생각도 못했던 터라 어안이 벙벙했다. 처음엔 정신이 없어 어디 다친 곳이 있는지도 몰랐다. 스쿠터를 단도리해서 일으키고 여기 저기 만져보는데 갑자기 스쿠터에 피가 묻어나왔다. 그제야 손바닥에 난 상처가 보였고 갑자기 아픔이 몰려왔다. 왼쪽으로 넘어질 때 나도 모르게 바닥을 짚어서 아스팔트에 쓸린 것 같았다. 발끝도 좀 욱신거리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신발을 벗어보니 엄지발톱의 절반이 멍들어 퍼렇게 변해있었다. 처음에 빌려왔던 보호대를 착실히 찬 덕분에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겼다.




정줄 놓고 도착한 김녕 성세기 해변


 스쿠터에 다시 올라타는데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그치만 나는 혼자고, 대신 운전해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행은 계속 해야하니 별 수가 없었다. 또 넘어질까봐 덜덜 떨며 핸들을 쥐었다. 머지않아 김녕 성세기 해변에 도착했지만 내 정줄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었다.



 헬멧을 벗을 힘도, 보호장비를 풀 힘도 없어서 주차한 스쿠터 옆에 주저 앉았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사진을 보니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것 같다.)



 흐린 날씨인데다 아직도 심장은 벌렁거리고 온 몸에 힘이 쭉 빠진 상태로, 제주 바다를 마주했다. 아름다워 보일 리 만무했다. 바다는 칙칙하고 공기는 찝찝했다. 손바닥과 발가락이 욱신거렸고 온 근육이 경직된 것 같았다. 얼른 숙소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도 밥은 든든하게, 제주 전통 순대 국밥




 근처 적당한 식당 아무 곳이나 찾아 들어갔다. 어쩌다 먹게 된 순대국밥. 그런데 순대가 정말 낯설었다. 당면이 들어있는 익숙한 순대가 아니라, 밥알과 함께 고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식감이었다)를 갈아 넣은 듯한 처음 보는 순대였다. 크기도 무진장 컸다. 당면순대의 글쎄, 세네 배?


 오빠와 통화를 하며 순대가 이렇네, 저렇네 이야기를 하는데, 오빠가 이어폰을 끼고 있냐고 물었다. 아니, 귀에 대고 통화중인데, 했더니 이어폰을 끼고 멍한 곳을 쳐다보며 말을 하고 있으면 옆에서 밥 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웃기게 생각하겠냐며 킬킬댔다. 그런데 사실 오빠와 통화했던 대부분의 시간이 집 밖이었고, 주변에 사람들이 한 가득인 상황, 심지어 오빠에게 말을 걸다 종업원이나 타인에게 말을 걸다 한 경우도 태반이라 이미 그런 건 내 신경 밖에 있었다.





덜덜덜 끝까지 험난한 밤



 밥을 먹고 나오니 이미 일곱 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해가 저물어 깜깜했다. 김녕초 근처에서 당일 숙소였던 사차원 게스트하우스까지는 9km 남짓한 거리였는데, 1132번 국도를 벗어나자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이 나타났다. 만장굴 앞을 지나는 길,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였고 길 옆으로는 검은 나무만 줄지어 있었다.


 지나가는 차 한 대가 없었다. 나 혼자 그 어두운 길을 달리는 게 겁나긴 했지만, 마주 오는 차나 뒤따라 오며 답답해 하는 차가 있으면 더 무서웠을 것이다. 빨리 지나가고 싶어 속도를 올리고픈 마음과, 그러다 갑자기 나타나는 돌발상황에 또 사고가 날까 두려워 속도를 낮게 유지하려는 마음이 치고 박고 싸웠다. 그래도 사고보단 어둠에 대한 공포가 덜 했던지, 시속 30km를 유지하며 달렸다. 노래를 불러보려 했지만, 헬멧 안에서 울리는 소리가 너무 컸다. 맞바람도 장난 없었다.


 가까스레 도착한 숙소였는데 마지막에 또 한 번 사고를 치고 말았다. 도착한 후 주차를 하려는데 시승한 상태로 넣기가 겁이 나 일단 내려서 끌어다 주차하려 했다. 그런데 스쿠터를 뒤로 당긴다는 게 손잡이를 당겨버려서 갑자기 스쿠터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앞의 벽을 타고 벌떡 서더니 또 옆으로 넘어져버렸다. 아이고... 끝까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