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환학생] 어느덧 일상이 된

2017. 12. 20. 10:34독일생활/Tagebuch

2017. 12. 07.

 

비자 카드를 수령하러 가야했던 11월 30일, 그 많은 알람을 모두 다 놓치고 그만 시청에 가지 못했다. 눈을 뜨자 마자 불안감이 엄습했고, 역시나 시간은 테어민 시간을 훌쩍 지나 있었다. 부랴부랴 담당자인 Ms. Noll의 메일 주소를 찾아 사과와 함께 재방문 일정을 문의했다. 다행히도 Ms. Noll은 일주일 뒤인 7일 목요일로 시간을 조정해주었다.

 

간만에 또 맑은 하늘을 마주했다. 일찍 일어난 덕에 채 내려가지 못한 하이얀 달도 만날 수 있었다. 나갈 채비를 하는 와중에도 파란 하늘을 담아두고 싶어서 얼른 타임랩스를 찍었다.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여유를 두고 시청에 도착했고, Ms. Noll은 환한 얼굴로 맞아주었다. 내 얼굴과 사인이 박힌 비자 증명 카드까지 받고 나니, 공식적인 독일 거주 외국인이 되었다는 게 신나고 뿌듯해서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졌다. 버스커버스커의 노래를 들으며 내적 댄스를 췄다.

 

시청 근처의 공원을 거닐다 가우스의 동상을 발견했다. 문과의 그림형제와 이과의 가우스, 괴팅엔 대학의 간판이다. 가우스가 강의를 했다던 천문관측소에서 수업도 들었다. 이런 대학자와 내가 공유하는 장소가 있다는 게 정말이지 생각할수록 소름이 돋는다.

 

 

 

 

Birds에 핫초코를 마시러 갔다가, 시즌 메뉴 '펌킨 스파이시 라떼'에 눈이 돌아가 또 도전정신을 발휘해보았다. 아침이니까 속 편한 호박 수프를 마시면 기분까지 따뜻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앞에 놓인 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노랗고 살짝 걸쭉한 수프를 기대했는데, 그냥 라떼 한 잔이 나왔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어... 이거 퀴어비스(호박)...?"하고 물었더니 아주 확실하다는 미소로 서빙해주신 분이 펌킨 맞다고 답했다.

 

분명히 '펌킨 스파이시 라떼'라고 했지만 아무리 입 안에서 굴려봐도 '펌킨'인지 모르겠고 '스파이시'도 갸우뚱. 하하하 핫초코 마셔야겠다.

 

내 맘대로 '광장'이라 부르는 젠트럴 캠퍼스 중앙에 지금까지 몰랐던 것이 있었다. 분홍빛 하늘이 예뻐 고개를 들었다가 하늘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을 발견했다. 요엘이 알려준 ZHG 007 그림에 이어 두 번째 히든섬띵이다.

 

 

 

 

2017. 12. 08.

 

 

고든 램지의 볶음 쌀국수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재료도 많이 필요치 않고, 레시피도 무척 간단해서 다음에 해먹으려고 저장해두었다. 소스가 복잡할 줄 알아서 도전할 생각도 못하던 게 볶음 쌀국수였는데, 램지의 레시피에선 간장이 다였다. 평소엔 사지 않는 계란도 특별히 구매했다. 레베의 아시아 음식 코너에 쌀국수를 파는 것도 전에 보아두었다가 가장 두꺼운 면으로 샀다. 램지는 닭가슴살을 얇게 저며 넣었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부드러운 돼지 목살을 샀다. 레베의 목살은 정말 맛있다. 간장이야 이미 갖고 있었으니, 사실 계란과 쌀국수, 브로콜리, 고기만 사면 뚝딱 해먹을 수 있는 아주 쉬운 요리였다.

 

현아와 수영이를 초대하면서 오늘 메뉴는 볶음 쌀국수이니 기대하라고 일러두었다. 음료수 두 병 사들고 신나서 달려온 친구들! 나도 처음 도전하는 요리라 걱정도 되었지만, 램지의 레시피인데다 목살 300그램을 아낌없이 투척했기에 맛이 없을 리가 없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면도 3인분, 목살도 300그램, 브로컬리도 양껏 넣었더니 3인분 이상이 만들어져버렸다. 친구들 배 터지게 먹이고도 1인분이 남아서 잘 담아두었다. 나름 레시피를 변형해, 일반 간장 대신 미리 만들어두었던 데리야끼 소스를 넣었더니 훨씬 더 맛있고 입에 착 감기는 쌀국수가 완성되었다! 호박 수프의 명성에 버금가는 맛! 내가 만들었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정말 맛있었다. 현아랑 수영이가 칭찬을 엄청 많이 해줘서, 또 다른 친구들도 '언니의 목살브로콜리볶음쌀국수'를 먹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날씨가 주구장창 흐려서 뚱해하기보단, 간혹 비추는 구름 사이의 귀한 햇빛에 보물을 찾은 듯 기뻐하고 있다. 여유롭게 집에서 요리를 해먹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설거지가 귀찮지 않은 그런 넉넉한 시간에 만족하고 있다. 문득 찾아드는 외로움에 어서 한국에 돌아가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도 있지만, 또 돌아보면 지금의 기억도 간절한 추억이 되겠지 하며 현재의 시간을 살자 나를 토닥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