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환학생] 탄뎀 이브닝(Tandem Evening) / 이런 식의 휴강 공지는 도의가 아니죠

2017. 11. 2. 12:34독일생활/Tagebuch

2017. 10. 23.



DaF Sprechen 수업은 Waldweg 26 건물에서 열렸다. 처음 와보는 건물이었는데, 알고보니 괴팅엔에서 몇 없는 나름의 고층빌딩 중 하나였다. 콜로세움 모양의 신기한 기숙사를 전에 숲 갔다가 돌아오면서 본 적이 있는데, 알고보니 집에서 되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 수업 열리는 건물 바로 뒷편이었다. 그리고 지금 보니까 여기에 도서관도 있네! 나중에 SUB 가기 귀찮은데 집에서 공부 안 되면 여기 가도 괜찮겠다. ㅎㅎ 가까우니깐! 말만 들었던 Mensa Italia도 이 건물에 붙어있었다. Paul이 여기 별로라고, 그리고 이름 저렇게 지어놓으니까 피자나 파스타 팔 것 같지만 사실 아니라고 그랬다.


아무튼 그래서 DaF Sprechen 수업을 들으러 이곳까지 와서, 엘리베이터 찾느라 전전긍긍하다 겨우 겨우 타고 9층으로 올라갔다. 그래도 독일 건물들이 좋은 게, 잘 보이는 어딘가에 건물 도면을 꼭 걸어둬서 강의실 찾기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거다. 엘리베이터는 신기하게도 길쭉하게 생겼는데, 문 닫는 버튼이 없어서 참을성있게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인가 진짜 오래된 엘리베이터도 심심찮게 발견한다.


근데... 하, 문 앞에 붙은 휴강 공지에 뒤통수를 맞아버렸다. 이번이 벌써 두 번째다. 아니, 이 학교는 휴강을 때릴 거면 적어도 하루 전에 공지를 올려줘야지, 이렇게 문 앞에다가 종이만 붙여놓으면 멀리까지 등교한 애들은 억울해서 어쩌라는 거지! E campus 시스템이 잘 안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휴대폰 문자로 공지 보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있는 사이트에다가 문장 하나만 써놓으면 되는 걸.


그래도 이 소박한 도시에서 9층 올라오니 비 오는 날 운치 있는 뷰가 펼쳐져서 억울함을 덜어주었다.






오늘 늦잠자서 오전 수업 자체 휴강했는데

이렇게 의도치 않은 공강날이 생기는구나……!

(화장실마저 뷰가 좋아…)





어제 만난 새 친구 주현이가 호스트도 수업에 떠나 보내고, 점심 먹고 같이 놀던 지수마저 장 본 후에 로젠으로 보내야 해서 혼자라기에 냉큼 우리 집에 와서 밀크티 마시자고 꼬셨다. 안그래도 수업도 사라지고,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수업 자료도 얄미워서 농땡이를 피우고 싶던 차였다. 레베 구경하고 온다는 주현이가 가방을 빵빵하게 챙겨서 왔는데, 하필 이번 주에 부엌 청소한다고 냉장고를 싹 비워야 해서 대접할 게 진짜 하나도 없었다. 초대한 건 난데 주현이가 거한 대접을 해줬다. 이게 바로 주객전도. ㅋㅋㅋㅋㅋ



소연이랑 해먹었는데 엄청 간단해서 금방 만들 수 있다며 뚝딱 만들어낸 토마토 모짜렐라 샐러드! 진짜 간단한데 예쁘고 쉬워서 좋은 레시피였다. (나중에 혼자서도 루꼴라까지 사다가 여러 번 해먹었다.) 밀크티도 주전자 한 가득 끓여서 컵에다 조금씩 담아 따뜻하게 나누어 마셨다. 주현이랑은 진짜 서로 아예 하나도 모르는 사이인데도, 둘이 이렇게 앉아 몇 시간 수다를 떨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친구였나보다. 여섯 시부터 탄뎀 행사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주현이를 또 혼자 시내로 보냈다. 책을 좋아한다고 하길래 괴팅엔에서 제일 큰 Thalia를 알려줬다. 책도 많지만 각종 굿즈랑 관광 상품도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던 곳이니까! 주현이가 떠나면서 과일모듬도 선물로 주고, 미니하리보도 네 봉지나 꺼내줬다. 몸과 마음을 동시에 살찌우는 고마운 친구로구나 허허허.


한국어 탄뎀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는 예고와 아시아 여자들만 찾아서 연락처를 따내는 터키 남자(이름 세 글자였는데 기억이 안 난다)를 조심하라는 경고를 들었지만, 진짜 그렇게 한국어 탄뎀이 없을 줄은 몰랐다. 그나마 다행히도 경고가 현실이 되진 않았다. 한국어와 독일어 교환을 원하는 사람 한 명, 한국에서 박사를 할 예정인 한국어와 영어 교환 한 명, 그리고 중국어를 엄청 유창하게 하면서 일본어와 한국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 한 명을 만났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긴 했는데, 아무래도 시끄러운 자리에서 곧바로 친해지기도 어렵고 대화 주제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코드 맞는 사람을 찾기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연락처를 교환하긴 했지만, 진짜 탄뎀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의외의 인연은 따로 있었다. 사실 괴팅엔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캠퍼스에서 내 새내기대학 후디랑 똑같은 옷을 입고 지나가는 남학생 한 명을 마주친 적이 있다. 학교 슬로건까지 박힌 회색 후디……! 심지어 14거라니 너무 너무 반갑고 놀라워서 순간 인사할 뻔 했다. 그 남자애가 일행 없이 걸어가고 있었다면 진짜 말 걸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너무 신나서 교환 카톡방에서 난리치고, 만나는 애들마다 그 얘기 해줬는데… 여기 탄뎀 만남의 장에 와서 친구 도와주러 나온 독일 남자애랑 잠깐 이야기하다가 그 애가 우리 학교로(!) 바로 직전 학기에(!) 교환을 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말 들었을 때는 오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회색 후디 남자애가 생각나서 걔한테 물어봤다. "너 혹시 우리학교 회색 후디 하나 있지 않아?"


오오오오오오오오 찾았다. 세상에나. 이렇게 만날 줄은 진짜 예상도 못했다. 이름이 요엘이랬다. 덕분에 이 친구랑 대화가 트여서 저녁 식사에도 초대 받고, 둘이서 신나게 학교 캠퍼스 얘기를 나눴다. 요엘은 셔틀버스가 학교 캠퍼스 '안'을 돈다는 사실에 엄청 깜짝 놀랐단다. 괴팅엔 Zentralcampus에 있다가 우리 학교 갔으니 그럴 만도 하다. 다른 학교 애들도 시내버스가 캠퍼스 안을 도는 거 보면 놀라니까… 한국 카페에서 사람들이 지갑이랑 노트북 테이블 위에다 올려놓고 주문하러 사라지고 화장실 다녀오고 그러는 것도 놀랍고 좋았다고 했다. 입실렌티도 다녀왔단다. 세상에 나도 못 가본 입실렌티인데! 그거 고대에 아는 사람 있어야 갈 수 있잖아? 했더니, 가고 싶으면 자기한테 말하란다, 친구랑 연결해주겠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학식! 겨우 그 가격 내고 먹는데 리필까지 되어서 세상 행복했다고, 괴팅엔 멘자 음식 보라고, 자기가 거기 가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고 그 말 듣고 백 번 공감되서 너무 웃겼다. 나도 여기 오니까 우리 학교 학식이 좋아졌는걸…


요엘이 한국어 엄청 잘하는 친구라며 소개해 준 요나단도 우리 학교 연구소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인신 머그 홍차라떼가 자기 최애였다고, 하도 그것만 먹으니까 직원 분이 자기 오면 메뉴 묻지도 않고 홍차라떼 타줬다고 그랬다. 그래서 가끔은 "아뇨, 오늘은 녹차라떼 먹을 건데요 ㅎㅎㅎ" 그랬다고. 맞아 머그 홍차라떼 달달하고 맛있다…ㅠㅠ 괴팅엔에서 우리 캠퍼스의 추억과 행복한 기억을 이렇게 공유할 줄이야. 여기서 학교 이야기 하는 게 너무 너무 행복해서 이야기 나누는 저녁 내내 기분이 정말 좋았다! 날씨가 우중충해서 살짝 다운되어 있었던 하루였는데.


진짜 세상 좁다고, 세계 어느 사람이든 다섯 명만 건너면 만날 수 있다는 말이 진짜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요나단이 알고보니 소연이 버디였고, 심지어 독일어 캠프 우리 반 선생님이었던 베네딕트가 요나단 친구였던 거다! 세상에… 어쩌다 베네딕트 이야기가 나왔는지도 모르겠지만, 또 웃겼던 건 베네딕트 유명하다고 했더니, 요나단이 곧바로 묻는 말이, "잘생겨서? ㅋㅋㅋ"였다. 근데 또 그게 사실이라… ㅋㅋㅋㅋ (나중에 Paul한테 이 이야길 하다 '징검다리'라고 하는 건 한국어 표현인 거 같아서 그냥 이 문장 말하길 포기했는데, Paul이 "Es gibt doch auch diese Theorie, dass sich jeder Mensch auf der Erde über 3 oder 4 Ecken kennt."라고 바로 말했다. "Mit Ecken meine ich Personen."이라는 설명과 덧붙여서. 헤헤 내가 하려던 말인데. 너희는 Ecken이라고 하는구나, 우리는 Schrittstein이라고 하는데, 했더니 Paul이 둘 다 비슷하게 말이 된다면서 웃었다.)


소연이와 주현이, 수빈이도 시내에 있대서 같이 모여 술 한 잔을 더 했다. 주문할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야 알게 된 귀한 술을 마셨다. 이 시즌에만, 딱 이쯤 1~2주만 맛볼 수 있는 발효와인이랬는데, 달달은 한데 살짝 위액 향이 나서 조금 부담스러웠다.


요엘은 자기가 한국 갔을 때 버디들한테 너무 너무 너무 고마운 도움을 많이 받아서, 여기서 우리도 도움 필요한 게 있거든 부디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다. 그게 자기에게 큰 기쁨일 거라고. 오늘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나 정말로 마음이 통통하게 살찐 것 같다. 





27일, 또 한 번 9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