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환학생] 견물생심 자극하는 하노버 이케아

2017. 10. 31. 09:58독일생활/Tagebuch

2017. 10. 20.

 

 

온 마음에 견물생심 가득한 넷이서 모여 하노버 이케아 여행을 가기로 했다. 간만에 벗어나는 괴팅엔이라 비 오는 날인데도 마음이 막 설렜다. 게다가 Semester Ticket을 처음으로 개시하는 날이기도 하니까! Regional 열차는 표를 끊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타서 앉아 있으면 되는 거였다. 혹시나 기차를 놓치더라도 다음 거 타면 되니 아까울 것도 없었다. ICE랑 IC 못 타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최고의 표다 진짜!

 

지연이랑 수빈이가 집으로 택배를 붙이다가 기차 출발 시간 아슬아슬하게 역에 도착했다. 지연이가 택배 붙이는데 번거로운 일이 생겨 탈-줄 했다가 다시 줄 서는 바람에 결국 시간이 부족해 택배를 부치지 못하고 들고 왔단다. 엄청 거대한 택배일 줄 알고, 전화로는 그냥 부치고 오라고, 다음 열차 타자고 그럴랬는데, 알고보니 가방에 쏙 들어가는 작은 택배였다. 기차를 안 놓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었구만.

 

기차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우리가 전세 낸 느낌으로 하노버까지 갔다. 가는 길에도 큰 도시가 없다보니 허허벌판 목초지랑 농경지였다. 하노버에서 내리자마자 발견한 스타벅스에 막 맘이 설레고, 상경한 애처럼 들떴다. 기차만 탔는데 정오가 다 되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바로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그 집의 메이저 메뉴인 듯한 버거를 주문했는데, 받아보니 자우어크라프트가 한 가득 들어간 버거였다! 씻어서 볶은 김치를 넣은 수제버거 맛. 패티가 무척 두껍고 맛있었고, 자우어크라프트 덕에 느끼하지도 않았다.

 

역 근처가 번화가라서 막 눈이 돌아갔다. 아무데나 찌르고 들어가도 다 쇼핑하기 좋은 곳! 괴팅엔에도 사실 있을 거 다 있고 쇼핑할 곳도 없는 건 아닌데, 괜히 괴팅엔에서 쇼핑하면 뭔가... 내가 돈 쓰는 기분이 안 난다. 사치 부리는 재미는 큰 물에서 부려야 제 맛인데, 코딱지만한 괴팅엔 시내에서 쇼핑하면 사치의 맛 치곤 어정쩡한 거다. 애들이 다 신나가지고 맞다고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케아로 출발하기 전에 스타벅스에 들려 당 충전을 하기로 했다. 사실 입 심심한 것도 있는데, 괴팅엔에는 없는 스타벅스라 하노버에 왔을 때 꼭 들려보고 싶어서 간 거였다. 프랜차이즈를 좋아하지 않는데다 한국에서도 작업이나 공부할 거 아니면 잘 안 가는 스타벅스지만, 이번만큼은 스타벅스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세계 어디를 가도 느낄 수 있는 똑같은 분위기와 정취, 그리고 맛. 독일까지 와서도 굳이 돌아돌아 한국음식 찾아먹고 해먹고 하며 향수를 달래고 있는데, 스타벅스에서 한국을 느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ㅋㅋㅋㅋㅋ 게다가 책 펴놓고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이 들어서자마자 보였다. 누가 봐도 한국인 대학생. 진짜 그 사람들 덕분에 대학가 스타벅스 온 느낌이었다.

 

스타벅스 매뉴얼대로 여기도 어김 없이 우리의 이름을 물었다. (다녀본 나라 중에선 한국만 A-74번 손님~ 하고 부른다. 바쁘니까 그런 거겠지...) 독일 와서는 누가 내 이름을 물어보면 'Rok'이라고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다. 직원이 "RRRRok?"하고 되묻기에 (심지어) 스펠까지 불러줬다. 근데... 근데... Hok 뭔뎈ㅋㅋㅋㅋㅋㅋ 혹이라니 당황스럽다. 도대체 어디까지 이름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미영이는 '영'이라고 말했는데 '용'이 되어버렸다.

 

이케아에 가려면 도심에서도 지하철을 타고 꽤나 멀리까지 나가야했다. 가는 내내 날씨가 정말 구질구질했다. 아 날씨 구린 건 영국 이야긴 줄 알았는데, 독일이 그러는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9월의 독일 날씨는 한여름 밤의 꿈인 줄. 언제 그렇게 날씨가 좋았냐는 듯 청명의 대명사인 가을 날씨가 여기는 구지다 구져. 맨날 비만 와서 우울이라도 안 타면 다행일 날씨다.

 

근데 신기하게도 지하철에서 다시 버스로 환승하고 나니까 버스의 왼편과 오른편 창문 밖 풍경이 극과 극을 달렸다. 왼쪽 하늘은 진짜 이게 가을이지 싶은 새파란 색이었고, 오른쪽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 덮여 어둡고 침침했다. 세상 웃긴 하늘을 다 본다.



 

 

 

살림 시작한 애들이 몰려간 이케아라, 탐나는 물건이 얼마나 많던지 마음 다스리고 내려놓느라 거의 수양하는 격이었다. 제일 쉽게 홀렸던 게 무드등. 수빈이는 결국 별님 달님 무드등에 반해서 힙겹게 마음을 정해 달님 무드등을 모셔왔다. 나중에 보니까 그래놓고 아직 걸지도 않고 있었다. ㅋㅋㅋㅋ 흡사 서점가서 책 사는 거랑 똑같은 전개다. 책 살 때는 진짜 서점에 있는 신간 다 쓸어오고 싶은데 막상 책 사오면 잘 안 들춰보게 되는 것처럼.

 

기숙사에 있는 칼들이 다 무뎌서 나도 칼 하나 살까 고민을 했다. 근데 검색해보니 이케아 칼이 딱히 좋지는 않다고 해서 차라리 사면 독일 좋은 브랜드 많으니까 괴팅엔 시내 나가서 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근데 긱사 돌아와보니까 진짜 없는 게 없는 우리 부엌, 숯돌까지 있었다. 숯돌에다 있는 칼 갈아서 잘 쓰고 있다. 우유 거품기도 엄청 큰 걸 팔길래 혹했지만, 지금 여기서는 마셔봤자 나 혼자 마시는 경우가 많으니까 참기로 했다. 이케아 것은 한국 가서도 살 수 있으니까 쓸데없이 살림 늘리지 말자, 하면서.

 

수빈이는 그래서 이불 커버랑, 무드등이랑, 코르크 달린 큰 물병 하나를 장만했다. 또 코르크 냄비받침 3개 세트를 사서 1:2로 지연이랑 나눴다. 서로 하나씩 밖에 안 필요하니까 너 두 개 가지라고 양보인지 떠넘김인지 모를 실랑이를 하기에 옆에서 보면서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지연이는 또 뭐 샀더라, 아, 지연이가 제일 많이 샀다. 옷 걸 데가 없어서 14유로 짜리 행거도 사고, 다용도함도 사고. 미영이는 파스텔톤 핑크색이랑 회색 그릇을 하나씩 샀다. 다들 두 손 가득 살림 장만하니까 나도 막 뽐뿌가 와서 참느라 혼났다.

 

향초 나오면 다 한 번씩 코 대보고, 매트릭스 나오면 다 같이 풀썩 누워도 보고, 신나서 방방 뛰는 애들 표정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었다. 유리병을 꼭 쥐고선 다른 손으로 꽃무니 이불 커버를 만지작 대는 수빈이 눈이 반달인 사진이 한 장 있는데, 얘가 얼마나 행복한지가 얼굴에 대문짝만하게 쓰여있다. 그러고보니 수빈이 결국 이 커버 샀네! ㅋㅋㅋㅋ

 

내가 애들 사진 찍고선 잘 나왔나 확인하고 있는데, 그 틈을 타 수빈이는 나를 찍었다. ㅎㅎㅎㅎㅎㅎㅎㅎ

 

 

딱 나오니까 저편 하늘이 또 예쁜 분홍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유럽 와서 예쁘다는 곳 여기 저기 다녀보았지만, 자연경관만큼 예쁜 건 정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또 한 번 한다. 그래서 서향인 내 방이 너무 너무 좋다! 괴팅엔이 구름만 좀 덜 껴도 좋으련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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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팅엔 돌아와서 맥주파티 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