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2016. 12. 21. 01:40문화생활/전시

2016. 11. 17.



전부터 계속 가야지 가야지 했던 국립한글박물관!

보고 싶은 전시 세 개가 동시에 열리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날 마감이길래, 마침 근처에서 과외도 끝났겠다 국박 DAY를 보내기로 했다.


오늘 본 전시는 무려 5개! 한글박물관의 상설전시 1개와 특별전시 3개,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시 1개까지 보고 왔다.



<국립한글박물관>


원도, 두 글씨장이 이야기

1837 가을 어느 혼례날 _ 덕온공주 한글 자료

광고 언어의 힘


<국립중앙박물관>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



(나 올해 이 전시들도 봤다, 기억하기 위한 기록물이니 이건 간단하게만 적을 거다. 더군다나 본 지도 오래돼서 기억도 잘 안 난다.)


1. 원도, 두 글씨장이 이야기


두 글씨장이는 최정호와 최정순을 가리킨다. 최정호라는 이름은 한글 타이포에 관심이 생기면서 몇 번 들어본 이름이었다. 한글의 활자꼴 원도를 개발한 사람 중 하나였다. 원도를 개발했다는 건 쉽게 이해하면 인쇄용 서체 디자인을 했다는 뜻이다. 컴퓨터로 글자꼴을 다듬는 지금도 사람이 직접 달라붙어 최소 2350자는 만들어야 제목용 서체 한 벌이 만들어지는데, 그걸 손으로 그리고 색칠하고 하얀 물감으로 수정해가며 만들어야 했을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고된 노동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척박한 환경에서 몇 안 되는 원도 개발자와 서체 디자이너들이 한글의 서체 시장을 짊어지고 가다시피 했으니, 가히 대단한 사람들이다.


광복 이후 오늘날까지, 한글꼴의 변천 과정을 크게 3단계로 구분한다. 6·25 전쟁 이후 약 10년 동안은 원도에 의한 주조 활자 시대, 이후 약 20년 동안은 원도에 의한 사진 식자 시대, 그리고 오늘날은 디지털 폰트 시대이다.


1954년 국정 교과서 인쇄에 처음으로 밴턴(Benton) 자모 조각기가 국내에 도입되며 당시의 주조 방식이 활자 원도에 의한 현대식 주조 활자로 교체되기 시작했다. 이 제작 방식은 기계를 조작해 원도를 확대하며 활자 크기를 마음대로 조각해 주조할 수 있었다. 당시 한글의 활자꼴 원도를 개발한 사람들은 최정호, 장봉선, 박정래 등이었다.

원유홍, 서승연, 송명민, 『타이포그래피 천일야화』, 안그라픽스, 2012, 59쪽.



2. 1837 가을 어느 혼례날 _ 덕온공주 한글 자료


순조의 셋째 딸인 덕온공주의 혼례와 관련된 한글 자료 특별 기획 전시였다. 조선의 마지막 공주였던 사람인데 요절하는 바람에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단다. 그래서 전시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덕온공주의 것보다도 그녀의 어머니인 순원왕후의 편지들이다. 사위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 속에 딸에 대한 그리움과 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묻어 나와서, 자식을 가슴에 묻는 부모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가슴 먹먹해하며 전시장을 나왔다.

따뜻한 조명과 은은한 음악, 하이얀 한지를 중심으로 꾸민 전시라서 그 분위기가 포근하고 평화로웠다. 전시 컨셉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3. 광고 언어의 힘


광고의 발전과 광고계에 한 획을 그은 광고 카피들, 그리고 김진평의 레터링과 폰트/레터링 디자이너들의 작품 및 인터뷰 전시로 구성되어 있었다.


김진평의 유명한 레터링, '디자인'이다. 잡지 로고로 쓰였다.


많은 폰트 디자이너들이 폰트 공부를 할 때 참고할 좋은 책으로 『한글의 글자표현』을 꼽았다고 했는데 그 책의 저자가 바로 김진평이다. 레터링, 폰트 디자인계의 대부인 사람인 것이다.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가 몹시 힘들다던 이 책을 사보려고 알아보는데, 누가 정말 상태 안 좋은 중고를 턱없이 비싼 가격에 올려둔 걸 봤다. (정가가 18000원인 것을 거의 50000원 가까이 판매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팔 수 있을 정도로 귀한 책이구나, 하며 구하는 걸 단념해야 하나 하던 와중... 적당한 가격에 중고로 나온 것을 보고 얼른 구매해 둔 적이 있다.


김진평은 선 하나도 허투루 긋지 않았다고 한다. 모든 곡선을 철저하게 계산된 각도로 그었고,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작품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과 저서가 아직까지도 명작으로 꼽히는 것이겠지.



"글자 수가 많지 않은 레터링과 달리 한 벌의 글꼴은 최소 2,350자의 글자들이 서로 잘 어울려야 하기 때문에, 저만의 개성을 가진 글자들의 과격하고 다양한 표정들을 절제하고, 포기하고, 다듬고, 매만지는 과정 자체가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 윤민구

이 작가 분이 말씀하시는 그 매력과 같은 이유로 나는 완성하고 싶었던 '영원한 기록' 다섯 글자 중에서 세 글자를 결국 버려야만 했다. 6주간의 고민과 노력으로 돌고 돌아 결국 없애는 것으로 결정할 때 얼마나 허망했는데!


김진평, 최정호 등 1세대 한글 디자이너들의 묵직함이 느껴지는 레터링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 장수영

이 전시를 보던 때엔 폰트 디자인 수업이 막바지에 이른 때였다. 선생님의 인터뷰도 전시되어 있길래 반가워서 냉큼 찍었다! 선생님은 묵직함이 좋아서 격동고딕같은 묵직한 글자를 만드신 건가...



4. 국립한글박물관 상설 전시


한글 창제의 목적과 기본 원리 등에 대한 소개로 이루어진 전시였다.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이라 슥슥 지나가며 관람했다.

와중에 호기심을 콕 자극하는 질문이 있었다.

"왜 'ㄱ, ㄷ, ㅅ'의 이름은 '기윽, 디읃, 시읏'이 아닐까?"

맞아, 나도 발음할 때마다 은근 궁금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또 검색을 해 볼만한 상황도 아니었어서 매번 모른 채로 넘어갔던 질문이었다. '윽', '읃', '읏'의 발음으로 나는 한자가 없어서였구만!


이런 것도 있었다! 외국인들에게 한글의 합자 원리를 알려주기 위해 조성된 특별 공간이었는데, 사지의 움직임을 다 파악하고 손의 움직임에 따라 화면을 조종할 수 있었다. CSI에서나 보던 게 내 눈 앞에 구현되어 있으니 정말 신기했다!



5.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


18세기 이후 크게 변모한 도시의 모습에 따라 미술의 경향과 향유층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오늘 너무 많은 전시를 봐서 이 전시를 볼 쯤엔 다리와 허리가 몹시 아팠다. 심지어 4부짜리의 아주 크고 긴 전시였다. 4부를 볼 땐 얼른 끝나라 언제 끝나냐 하며 관람했다.


1부는 도시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을 모아두었고 2부는 도시 문화를 그린 풍속화와 여항 문화를 다루고 있었는데 그 간극이 꽤나 커서 1부와 2부의 연결이 쌩뚱맞게 느껴졌다. 4부도 마무리 차원에서 구색을 갖추려고 마련한 것마냥, 1, 2, 3부에 비해 허술하고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2부와 3부의 구성은 알차고 대중의 흥미를 끌고 가기에도 충분했다. 특히 2부를 여는 큼지막한 미디어 아트를 통해 대중에게 그림의 세세한 부분까지 재미있게 보여준 점이 돋보였다.




아침도 대충 먹고, 점심도 먹지 못하고 몇 시간 동안 전시를 관람했지만, 마음의 양식을 얻어서인지 배가 그다지 고프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사먹을 거라며 근처 갈 일이 생기기만을 기다렸던 교토마블에 드디어 방문할 수 있었다! 빵은 정말 정말 정말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쫄깃함과 고소함으로 가득했다. 식빵 계의 별 5점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