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캐스퍼 타고 탄도항 당일치기

2021. 11. 5. 17:19국내여행/2021 서울∙경기

어렸을 땐 장거리 트럭 운전사인 아빠를 따라 전국 팔도를 돌아다녔다. 트럭 운전석 뒤엔 엉덩이 너비 정도 되는 공간이 있다. 키 작은 초딩이 두 다리 뻗고 누워도 충분히 넉넉한 공간이 나왔다. 거기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있으면 엔진의 열기 덕분에 전기장판을 켠 것처럼 등이 뜨끈뜨끈했다. 밤중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럭에서 균일한 엔진 소리를 듣다가 스르륵 잠에 들었다. 온 가족이 아빠를 따라나설 땐 트럭이 아니라 다마스를 타기도 했다. 뒤편에 있는 시트를 접고 이불을 깔면 언니랑 둘이 누워서 데굴데굴 구를 수도 있었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을 참 좋아했다. 차에서 듣는 노래를 좋아하고, 히터를 켜고 있다가 창문을 살짝 열면 훅 들어오는 낯선 온도의 바람을 좋아했다. 밤에 텅 빈 도로를 달릴 때 일정하게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도.

릴리즈를 앞두고 주말에 고독하게 근무를 하고서 얻어낸 귀한 대체 휴무일이다. 심지어 남들 다 일하는 평일에 이틀씩이나 쉬는데 이런 기회는 알차게 써야지. 마침 쏘카 쿠폰이 하나 있었다. 일요일 저녁부터 금요일 저녁 전까지 '주중'에만 쓸 수 있는 쿠폰이라, 차를 빌릴 마땅한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쓰기에 딱 좋았다. 심지어 집 앞까지 차를 부르고, 집 앞에다 주차해서 반납하는데 드는 비용도 따로 없었다. 24시간을 빌릴 수 있으니까 점심에 빌려서 점심에 반납하면 하루가 아니라 이틀 치의 여행도 가능했다.

차를 먼저 예약하고서, 근교에 갈만한 곳을 찾아봤다. 동해를 가고 싶긴 한데 혼자 가기엔 너무 멀고, 그렇담 서해를 가야겠다. 지도를 켜놓고 보니 안산에서 대부도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시화방조제가 길도 쭉 뻗어있고 양 옆으로 바다이니 드라이브하기에 딱 좋아보였다. 오후에 가니까 일몰을 보기에도 딱이겠구먼. 담요랑 배게를 가지고 가서 차박을 하고 올까? 버너랑 냄비를 챙겨가서 바다 보며 라면 끓여 먹어야겠다. 모카포트도 가져가서 커피도 내려먹고. 책이랑 랜턴도 챙겨야지. 알전구도 가져가서 각잡고 차박 무드를 내봐?

 

쏘카로 빌린 캐스퍼

안 그래도 한번 타보고 싶었던 캐스퍼! 흐흐 귀엽긴 정말 귀엽다. 차박 할 생각에 잔뜩 신나서 유튜브에 '캐스퍼 차박'을 검색해봤는데... 흠... 따로 뭘 추가해서 설치하지 않으면 트렁크 쪽에 다리를 두고 앉은 상태에서 눕는 애매한 자세로 잠을 자야 했다. 아무리 봐도 불편할 거 같단 말이지. 어릴 적의 추억과 낭만은 기억 속에 넣어두고, 현실적으로 잠은 집에 와서 자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캐스퍼 도착했단다! 🙌

 

아주 가을가을하다.

 

안산 로컬 진수영 님의 말씀받자와 대부도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칼국수도 먹었다. 한 그릇 주문했는데 대야 크기의 그릇에 칼국수가 가득 담겨 나왔다.

 

탄도항 갈대숲

 

탄도항 습지

 

탄도항을 찾은 사람들

간조 땐 누에섬까지 갈 수 있다는데, 만조라서 길이 물에 잠겨있었다. 역시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고 조용했다.

 

다섯 시 반이 일몰 시간이었는데 날이 흐려서인지 좀 더 일찍 해가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해가 지고 나니 어스름한 하늘과 어렴풋이 보이는 저 먼 곳의 섬과 잔물결이 이는 흐릿한 색의 바다가 그라데이션처럼 이어졌다.

 

낙조에 반짝이는 윤슬

 

일렁일렁

 

어스름의 물결

 

바다에 잠긴 길

 

 

 

인증 ✌️

 

늦은 저녁 안산에서 수영이를 만나고 돌아왔다. 늦은 시간이라 집 주변에 주차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같은 골목을 뱅뱅 돌았다. 차를 대기에 공간이 좀 빡빡해 보여서 두어 번 시도했다가 포기했던 자리에 다시 한번 차를 밀어 넣어보았다. 조금만 앞뒤 차에 가까워져도 경고음이 삐--삐--삐--삐-삐-삐-삐-삐------------ 하고 울려서 정말 찔끔찔끔 앞뒤로 움직이면서 넣었다. 차 안에 있을 땐 주차 자리가 너무 좁아 보이고 내 차는 덩치가 산만하게 느껴졌는데, 막상 차 대고 나와서 보니까 왜 저 앞이 저렇게 광활해? 내 차는 또 한없이 귀여운 크기잖아...

사실 오늘 초보 운전 에피소드가 몇 개 있었다. 여수에서 운전 연습할 땐 집에 주차할 때 사이드 미러를 굳이 접을 필요가 없어서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다녔는데, 오늘 차 받을 때 보니까 사이드 미러가 접혀 있어서 나도 주차할 때마다 접고 다녔다. 근데 다시 차를 타고 출발할 땐 사이드 미러가 접힌 걸 까먹고, 도로에 합류하고 나서야 접혀 있는 사이드 미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운전석 쪽은 전방 주시한 상태에서도 창문을 열고 손으로 밀어서 펼 수 있는데, 조수석 쪽은 그게 안 되니까 정차할 기회를 기다렸다가 얼른 안전벨트를 최대한 풀고 팔을 있는 힘껏 내밀어서 겨우 겨우 폈다. 이 짓을 주차-출발할 때마다 했다. 허허허헣... 사이드 미러를 자동으로 펴고 접을 수 있는 버튼이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수영이에게서 전해 듣지 않았다면 나는 다음 날도 신호 대기에 걸렸을 때 생쇼를 했을 거다.

안산에서 용인으로 돌아올 때에도 차선 바꿀 기회를 놓쳐 엄한 IC에서 밀려나버렸다. ㅋㅋㅋㅋㅋㅋ 내비게이션이 말하길 곧 빠져나갈 거니까 오른쪽 끝 차선을 타라고 해서 그렇게 달리고 있었는데, 내가 빠져나갈 곳보다 앞서서 다른 IC가 먼저 나오는 게 아닌가. 얼른 옆 차선으로 옮겨 타려고 했는데 버스가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속도를 줄여서 버스가 지나가면 끼어들려고 했는데, 그 기회보다 갈림길이 먼저 와버렸다. 동수원 톨게이트에서 나올 예정이었는데 북수원 톨게이트로 강제 경로 변경당해버렸다.

톨게이트에서도... 험난했는데... 톨게이트 앞으로 와보니 하이패스 차선은 저 끝에 있고 내가 있는 곳은 일반 차선이지 뭔가. 여기에서 저 멀리까지 차선을 가로지를 순 없으니 일단 전진을 했다. 직원 분이 보여서 "아 제가 하이패스인데요..."라고 했더니 그럼 카드를 달라 신다.

"카드요? 카드가 어딨어요?"

"거기 거울에 있어요."

백미러를 더듬어보다 뒤편에 카드가 꽂혀 있는 걸 발견했다. 어떻게 빼는 거람? 카드를 눌러도 보고 뽑으려고도 해봤는데 카드는 뽑히지 않았다.

"거기 버튼 누르면 나와요."

직원 분이 차 가까이 오셔서 창문 안으로 팔을 집어넣고 직접 버튼을 눌러 카드를 빼주셨다.

휴; 전에 차에서 내려서 티켓 뽑은 이후로는 하이패스를 쓰는 한 톨게이트에서 민망할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또 이렇게 건수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