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여수, 차분한 여행

2017. 8. 29. 00:28국내여행/2017 여수

2017. 08. 13 - 15.




나고 자란 곳이면서도 가보지 못한 곳이 참 많다. 향일암도 아주 어렸을 적에 딱 한 번 가본 터라 기억이 나지 않고, 장도도 지나가면서 이야기만 들었을 뿐. 동동다리도 무척 예쁘다고 하던데, 가볼 기회가 없었다. 원래 여행지가 그렇지, 오히려 늘 사람이 붐비다는 이유로 혹은 언제고 갈 수 있다는 이유로, 주민들은 잘 가지 못하는 곳들.


모장옻닭은 내가 여수에 사람을 데리고 오면 꼭 가고 싶었던 곳이다. 한동안은 간판도 달지 않은 채 장사를 했는데, 알음알음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로 늘 붐볐다. 내가 운전해서 가본 적이 없고, 지도에서 찾아본 적도 없으니 모장이 어딘지, 여길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는지 하나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름 단골 손님이다!


옻닭집 앞엔 작은 선착장이 있다. 배가 들고 나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늘 조용한 곳. 가족 여럿이 이곳에서 모이기로 하면, 모두가 도착할 때까지 산책 겸 거니는데, 그래도 나름 여행을 왔다고 사진 찍을 기분이 났다.
















모장과 향일암은 가는 방향이 전혀 반대라, 모장을 들렸다가 향일암을 가려면 돌산 저 안쪽까지 내려가 뺑 돌아나와야 한댔다. 번거로운 여정임에도 여행을 시켜주신 우리 엄마 아빠! : ) 한때 돌산 전역을 누비고 다녔던 아빠는 가는 곳곳마다 에피소드를 하나씩 꺼내 이야기해주셨다. 돌산의 끝에서 잠시 쉬었는데, 바다 저편에 섬만 보이다가 끝자락에 오니 탁 트인 수평선이 나왔다.


향일암 입구에는 차가 너무 많아 주차장 근처에서부터 걸어들어갔다. 향일암 가는 길 경사는 또 어찌 그리 급하던지.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향일암에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끊어야 한다고 하고, 우리 둘 다 카드밖에 없고, 입장권은 무조건 현금으로만 살 수 있다고 했다. 다시 그 경사를 내려가 편의점에서 현금을 인출해오란다. 이 힘든 걸음을 다시? 에잇!


허허허, 이번에도 향일암은 못 보고 마는구나, 또 언제 여기까지 들어오려나.






이름도 모르는 섬, 물이 빠져 드러난 돌다리







고동 잡겠다고 바위를 들어내면 작은 게들이 후다닥 도망을 간다. 여기서 잡은 고동이 봉지 한 가득인데, 채 다 먹지도 못했다. 욕심만 많아가지구....






돌산 깊은 곳 어디에서 정말 색이 고운 핑크빛 집을 만나 예쁘다- 하고 생각했는데, 연이 닿은 집이었다!






한쪽 건물은 또 형광빛 도는 하늘색으로 칠한 이 집은,







추억 속에 있던 콜라 아저씨의 집이었다. 자신이 누군지 설명해 줄 수 있는 단 한 가지를 들 수 있다니, 그리고 그게 아주 단호하게 '빨간 뚜껑의 병에 담긴 코카콜라'라니, 아저씨 캐릭터 진짜 매력적이다. 손님 대접도 콜라! 마당에는 대놓고 콜라콜라콜라! 혹시 집 페인트 색도 콜라 뚜껑과 맞춘 건가,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보았다.





나오는 길에 방죽포 해수욕장이 보였고, 발만 담그고 가자던 채환이는 머리 끝까지 물을 적셨다. 당연히 예상했던 바지만, 장난기 발동한 아빠는 앞으로 채환이 머리도 발이라고 부르라며 하루 종일 채환이를 놀렸다. ㅋㅋㅋㅋㅋ 하여튼, 바람도 솔솔 불고 날도 시원하고, 바다에 나온 김에 발도 한 번 적셔 보고.






엑스포 때도 올라보지 못했던 스카이타워. 언니가 한 번은 올라가 볼 만하다면서, 해풍쑥아이스크림도 먹어보라고 추천했다. 입장료는 인당 2000원이었다. 여수 시민은 할인 안 되나 물어봤지만, 그런 거 없다고 했다. : ( 서울은 고층 건물이 많아 잠실타워 정도는 되어야 좀 탁 트인 전경이겠지만, 여기는 스카이타워만 되어도 여수 앞 바다와 시내 쪽을 내려다보기 충분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녀갔는지, 투명해야 할 바닥이 긁힌 자국으로 불투명해져버렸지만, 그대로 아직 멋모르고 지나가던 사람 발걸음을 턱 잡을 수는 있었다.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는 높이. 안 무서운 듯 하면서도 각도를 살짝 틀어 쳐다보면 또 그 높이가 느껴저 소름이 돋았다.






















몰랐는데, '함부로 애틋하게'의 장면 일부를 여수에서 찍은 모양이다. 타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니 묵호등대에서 보았던 고소영과 장동건이 생각났다. 저 드라마 대부분은 통영이 배경이었다고 들었는데.






바다를 따라 오동도 방향으로 쭉 걸어가다보면 동백호를 만날 수 있다. 이만한 배가 해풍 맞으며 오키나와도 갔다 오고 대만도 다녀왔다니, 멀미했을 학생들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내가 탄 배도 아닌데, 괜히 반갑고. 언니한테 사진 보여주려고 '동백'자 나오게 사진도 찍었다. 이쯤 걸으니 새로 산 신발에 살이 다 쓸린 오빠는 신발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걸었다. 비가 오는 날이니 방수밴드를 샀는데, 이게 또 너무 얇고 쫀쫀해서 신발에 쓸리는 걸 막는데는 오히려 별 도움이 안 된 것도 같다. 하필 오늘처럼 많이 걷는 날, 새 신 신고 나와 쩔쩔매는 오빠를 보니 얼마나 안타깝던지.






오동도 갯바위에 내려가면 앞바다를 지나가는 큰 선박들을 볼 수 있다. 꽤나 큰 선박도 여럿 보인다. 수능을 치른 후 록빈이와 여기서 찍은 사진을 방에 붙여뒀는데, 그걸 본 오빠가 참 오고 싶어 했다. 똑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느낌으로 사진도 하나 남겼다. 록빈와 왔을 땐 엄청 추운 겨울이라 흐릿했는데, 이날은 마침 또 비가 와서 느낌이 비슷했다.


비가 떨어지는 바다를 찍어서 보니 꼭 수면에 가시가 돋은 것 같다.










용굴 보는 곳으로 내려오면 한쪽엔 커다란 동굴 입구가 있고, 다른 쪽엔 오동도 등대가 슬쩍 보인다. 마침 딱 비도 그쳐서 야심차게 들고 왔던 색연필을 꺼내 풍경화를 그렸다. 그림으로 풍경을 남기는 내 모습을 오빠는 사진으로 남겼다. 예전엔 취미가 많은 나를 부러워하던 오빠였는데, 어느새 그도 취미가 생겼다. 내 모습을 예쁘게 남기고 싶다며 사진을 배우고 포토샵을 공부하고, 또 선물 받은 더치커피 메이커를 참 잘 쓰고 있고.






사람들 돌 참 잘 쌓아. 간절하면 못 하는 게 없어서 그런가.






어쩌다 내려온 길이 방파제 다리가 연결되는 오동도 입구로 이어졌다. 모양새가 참 예쁘다 생각했는데, 이심전심인지 서로 눈을 맞추자마자 사진기를 꺼내들었다.






나가려는 시간엔 마침 비가 그쳐, 아까 타려다 못 탔던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다. 오동도 안쪽 방파제 다리는 이번에도 결국 못 가보고 말았다.


예전에 록빈이랑 왔을 때에도, 야메 애들이랑 왔을 때에도 U-Bike 자전거를 빌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땐 미성년자라 결제를 할 수 없었고, 야메 애들이랑 왔을 때엔 핸드폰 소액 결제가 막혀있어서 실패했다. 아, 두 번 중 한 번은 대여 기계에 햇빛이 직선으로 내리쬐어서 터치가 오지게 안 먹기도 했다. 이번에도 오빠는 수월하게 빌렸지만, 나는 '통신사 문제'라면서 빌릴 수 없었는데, 이게 알뜰폰 통신사라서인지 아니면 소액결제를 막아둬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엄마 번호를 적고 전화로 인증번호를 받았지만, 엄마도 소액결제를 막아두셨는지 빌릴 수가 없었다. ㅠㅠ 다행히 언니 것으로는 되어서 빌릴 수 있었다!


사실 언니 이름으로 빌리면서도 험난했던 것이, 자전거를 제대로 빼지 못했는데 반납처리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방법을 묻고 다시 언니에게 전화해서 아까 그 인증번호 한 번 더 알려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담당자가 알려주기를, 1일권(24시간)을 대여하면 한 번 빌릴 때 두 시간 안에 반납을 하면 언제고 다시 인증번호를 입력해 무료 재대여가 가능하다고 했다. 일반적인 렌트보다 편리한 방식인게, 이렇게 하면 여행지 안을 둘러볼 때나 밥을 먹을 때는 반납해두면 되니 분실 우려가 없다는 점이 참 좋은 것 같았다. 웹페이지에 가면 대여소가 어디에 있고 자전거가 몇 개 비치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서 유용했다. 여수가 여행하기 참 좋긴 하구나.






이순신 광장에 왔는데 비가 후두두 내리기 시작했다. 딱 버스를 타면 되는 곳에서 비가 내려 진짜 운이 좋다며 기뻐했다.






별 거 아닌 사진같지만, 이순신 동상과 진남관, 여수제일교회 옛 건물까지 한 컷에 잡혔다. 제일교회는 종교적인 이유를 떠나서 건물 자체가 굉장히 오래되어서 벽화거리 가는 김에 슬 지나가봐도 괜찮을 곳이다. 요 앞 이순신 수제버거는 어느새 여수 명물이라며 여행객들이 꼭 들렸다 간다든데, 강릉에서 먹었던 수제버거가 너무 압도적으로 맛있어서 딱히 이곳을 가볼 생각이 안 든다. 제작년에 서킷 모임에서 여수 명물이라며 거북선빵을 들고 온 걸 보고 엄청 웃겼던 기억이 난다. 여수 시민도 모르는 여수의 명물이라니!






육지에서 장도까지 좁은 다리가 하나 있는데 마침 시간대를 잘 타, 드러난 다리를 보았다. 이 다리를 없애고 도로를 놓겠다느니 그건 안 된다느니 말이 많았다는데 결국 다리를 살려놓고 도로는 따로 내는 식으로 결정났다고 들었다.














발옆으로 물결이 넘실대는 게 참 묘하게 아름다웠다. 다리를 건너는 와중에 보니 물이 들어차고 있었는데, 물 차는 거 순식간이라며 오빠가 재촉했다. 얼른 들어가 다리 바로 앞에 있는 가로등에 찍꽁하고 잰걸음치며 나왔다. 정말로 삼십 분도 안 되어 다리가 바다에 먹혔는데, 다리 위로 물이 얇게 깔려서인지 사람들은 계속 지나다녔다. 멀리서 보니 마치 물 위를 걷는 사람들같아, 저기만 잘라놓으면 모르는 사람이 보고 무척 신기해할 것 같았다. 오히려 물이 잠겨서 사람들이 더 드나드는 것도 같다.














생각해보면 우중충한 날씨가 야속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마냥 덥지 않고 시원해서 좋다, 딱 자전거 타기 좋은 시간에만 비가 그쳤다, 기분 좋은 말만 하며 다녔다. 부러 그렇게 생각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함께 있으면 그저 즐거운 사람과 여행하니 모든 일이 좋은 쪽으로만 여겨진 것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