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무에타이로 끝내는 하루

2020. 9. 30. 16:53심신단련

2020. 07. 08.

퇴근 후 회사 앞에 있는 복싱장을 찾아가 보았다. 무림의 고수가 한 이십 년은 운영했을 것 같은 묵직한 분위기, 경건하고 조용한 훈련장의 느낌이었다. 월 13만 원에 글러브 4만 원, 붕대 만 원, 입회비는 또 별도로 4만 원이었다. 글러브랑 붕대는 현금만 받는단다. 체육관 내부는 어둡고 답답한 데다 더웠다. 에어컨이 틀어져 있지 않았다. 한여름에 밖에서 운동하면 더워 죽을 것 같으니 실내에서 쾌적하게 운동을 하고 싶었던 건데!

그다음으로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복싱장을 찾아갔다. 거기 관장은 날 보자마자 말을 놓았다. 예의가 없다기보단 (아 물론 예의도 없고) 그게 엄청 유머러스하고 친근한 컨셉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 같았다. (좀 꼴 보기 싫었다) 여기도 가격은 큰 차이가 없는데 대신 카드 결제를 하면 수수료를 따로 내야 했다. (네?) 두 군데 다 현금을 밝히는 게 찜찜했다. 더군다나 후자는 아파트 단지와 학원가 근처라 그런지 작은 체육관 안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이래서 1:1 코칭을 어떻게 받는단 거지? 밀도가 무척 높은데 마스크를 쓰는 것도 아니라서 코로나 걱정도 되었다. 역시 서울은 서울이고 경기도는 경기도인가, 복싱장이 어쩜 이렇게 몇 없을까!

입회비도 말이야, 전에 복싱장 등록할 때 입회비를 내본 적이 있어서 그런 게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납득은 되지 않는다. 나는 복싱을 배우러 체육관에 등록을 하려는 거지 복서들의 모임 같은 곳에 멤버로 영입해달라는 게 아닌데 웬 입회비?

 

2020. 07. 10.

집에서 조금 더 가까운 곳에 킥복싱장이 있어 찾아가 보았다. 들어서자마자 일단 마음에 드는 쾌적함! 시원하게 에어컨이 틀어져 있었고 장소도 널찍했다. 월 13만 원에 글러브 4만 원, 붕대 1만 원이지만 첫 달에 3개월 이상을 등록하면 글러브와 붕대를 무료로 증정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매일 매일 특정 시간대에 근력 운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시간대가 정해진 프로그램이 있으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체육관을 찾아가게 되어서 좋은데! 일단 에어컨 + 장비 무료 + 집에서 가까움, 이 세 가지 만으로도 3개월은 다녀봄 직했다. 무엇보다도 관장님이 눈을 잘 못 맞춘다. 몸을 쓰는 운동 특성상 능글맞은 사람보다 숙맥인 사람에게 운동을 배우는 게 더 불편할 일이 적어서 이 점도 마음에 들었다. 낙점!

킥복싱을 배우러 갔는데 사실은 무에타이를 가르치는 곳이었다. 무에타이가 뭔지 잘 몰라서 특공무술 같은 '무예'류이거나 "아뵤~" 할 것 같은 운동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쉽게 말해서 복싱에 킥이 들어가면 킥복싱, 거기다가 팔꿈치나 무릎으로 가격하는 것까지 들어가면 무에타이였다. 태국의 무술이라고 한다.

 

2020. 07. 16.

드디어 체육관에 등록했다. 지난 월요일에 가려던 것을 월, 화, 수요일까지도 매일 각기 다른 그날의 이유로 다음 날로 미루다가 목요일이 되어서야! 첫날이라 기본 스텝과 자세를 배웠다. 복싱을 할 때엔 잽을 날릴 때 앞으로 나가면서 손을 뻗도록 연습했는데, 여기선 상대를 중심으로 왼쪽으로 돌면서 주먹을 날리라고 했다. 계속 발이 왼쪽이 아니라 앞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리고 주먹도 직선으로 뻗어야 하는데 자꾸 U자 형태를 그리며 나갔다. 내가 자세를 잡으면 너무나 우스운 모양새인데 관장님이 자세를 잡으면 비장해 보인다.

와중에 마음에 들지 않은 것 하나는, 첫 수업에서 관장님이 곧바로 말을 놓았다는 거다. 자세를 가르치다 대뜸 나이를 묻더니 말을 놓아도 되냐고 물었다. 당황해서 "네? 아, 네…”하고 대답을 해서 얼결에 그러라고 한 게 되었는데 두고두고 짜증이 난다. 불편한 기색 내비치며 계속 존대하는 게 편하다고 하고 싶었는데. 이 체육관 관장도 저쪽 복싱장 관장도 왜 다 말을 놓지? 체대에서 선배가 후배 군기를 잡고 서열을 따지는 게 보편적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선상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을 하대하는 게 이쪽 세계에선 흔한 일인가? 그렇다면 젊은이들 대상으로 영업하는 체육관은 좀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 게시물에서 복싱장은 좀 더 그들만의 리그 같은 느낌이 있고 킥복싱장은 영업하는 느낌이 있다고 그랬는데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전에 다닌 킥복싱장은 완전 운동하는 20・30대를 타겟팅해서 프로그램을 짜고 운동을 시켜주는 곳이었다. 배우는 사람을 '회원님'이라고 하고 코치들이 모두 존대를 했다. 테마가 있는 피트니스 클럽 같았달까? 근데 복싱장은 뭐랄까... 절대 권력자인 관장이 있고 문하생을 받는 느낌….

 

발가락이 초상권을 주장해서... 👀️

2020. 08. 18.

잽과 라이트만 배워오다가 드디어 킥을 배웠다. 오른발로 하는 로우킥. 분명 정강이뼈로 차는 거랬는데 왜 정강이는 멀쩡하고 발등만 시뻘게지냔 말이야. 아니다, 정강이에도 멍이 들었다. 어딜 잘못 때렸나 보다.

 

2020. 08. 21. ~ 09. 13.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 실내체육시설 집합 금지 명령으로 인한 체육관 휴관]

 

2020. 09. 17.

무에타이 배우러 가서 로우킥 하다가 엄지발가락 바깥쪽 피부에 구멍이 생겼다. 연습하다가 발가락 구멍 난 데가 아파서 중단하고 돌아왔다(고 하기엔 늘 하던 만큼 하고 왔지만).

 

2020. 09. 18.

발가락에 구멍 났다고 관장님한테 찡찡거렸는데 관장님이 거기 구멍이 나면 안 된다고 했다. 발가락이 아니라 앞꿈치에 구멍이 나야 한다고. 헿 자세가 잘못되었다는 반증인 거였다.

무에타이 로우킥 할 때 주의할 점!

① 축 발 완전히 옆으로 놓고 발 나갈 때 축 발을 훅 돌리기

② 옆구리 쪼여서 상체를 오른발 쪽으로 당겨 옆구리 보호하기

③ 왼팔로 오른 얼굴을 가려서 펀치 방어하기

④ 무릎 굽히면서 돌려서 타점 앞에서 펴서 때리듯 차기

 

2020. 09. 23.

지금까지는 오른발 로우킥만 배웠는데 오늘은 왼발 로우킥을 배웠다. 축 발이 제대로 안 돌아가면 자세가 정말 어정쩡하다. 발을 차는 내 모습을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얼마나 어정쩡할지 알겠다.

 

2020. 09. 29.

이제 오른발 로우킥은 그럴듯하게 되는 것 같다! 타점이 없을 때 돌려차는 것도 나쁘지 않다. 왼발이 문제다. 축 발인 오른발이 거의 뒤를 본다 싶을 정도로 돌려야 하는데 이게 잘 안 된다. 왼발은 타점 앞에서 털듯이 차되 일부러 당겨오지는 않아야 한다. 오른발이 돌면서 자연스럽게 왼발이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양발에 신경 쓰는 걸로도 이미 복잡해서 상체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관장님이 추천한 운동 순서는 줄넘기 3라운드, 거울 보고 3라운드, 쉐도우 3라운드, 마지막으로 샌드백 3라운드였다. 1라운드가 3분, 라운드와 라운드 사이에 30초를 쉰다. 그런데 줄넘기 너무 지루해서 2라운드만 하고, 요즘엔 킥 연습 때문에 거의 바로 샌드백으로 직행하고 있다.

한번 가면 40분에서 50분 정도 운동하고 오는데, 살살한 날은 230kcal, 빡세게 한 날은 300kcal 정도를 소모하고 온다. 야근과 코로나, 그리고 귀찮음 때문에 처음 등록할 때의 기대만큼 많이 가고 있진 못하지만 킥이 익숙해지면서 점점 재미가 붙고 있다. 관장님이 미트 더 오래 잡아주면 좋겠다. 코로나도 얼른 종식되어서 제발 마스크 벗고 운동할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