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로그] 코로나 시대의 달리기 - 매일 3km, 누적 200km

2020. 4. 27. 22:11심신단련

달릴 마음은, 달리고 싶게 생긴 트랙과 지금 나가야만 하는 마감 시간에서 나온다

100km를 채운 후 누적 200km를 달리기까지는 9월부터 4월까지의 시간이 흘렀다. 7월엔 인턴십으로 지쳐서 달릴 생각을 안 했다면, 겨울엔 "추워서 +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서 + 퇴근하고 오니 지쳐서"의 3단 콤보로 달릴 마음이 잘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2월 말, 이사를 했는데 정말 달리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집 바로 앞이 공원이고, 그 뒤엔 성복천이 흘러서 강변으로 트랙이 깔려 있다. 한강에서 조깅하는 게 상경의 로망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런 로망을 일상에서 실현할 수 있는 주거 환경이라니. 뛰고 싶어지는 환경 + 운동을 열심히 하는 친구를 보며 받은 자극 + 봄의 도래로 3월 중순쯤부터는 다시 달리기에 재미가 붙었다! 코로나로 인해 두 달간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뛰러 나가는 게 더 쉬워지기도 했다. 대신 사람이 거의 없는 자정 가까운 시간에 뛰었다. 날짜가 바뀌기 전에 얼른 뛰고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마감의 압박'도 부족한 의지를 채워줘서 꽤 효과적이었다.

입소문을 내면 무를 수가 없다

늘 달리기를 마친 순간이면 완주한 지점의 경관, 흠뻑 땀에 젖은 나 자신, 혹은 오늘도 수고한 두 다리를 사진으로 찍었다. 짧은 소감이나 한 줄 평과 함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러닝 기록을 올리고 얼른 샤워를 하러 갔다. 하이라이트로 모아두는 러닝 기록이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상단 바늘땀이 점점 더 촘촘해졌다. 60장이 넘는 사진이 쌓였는데, 항상 똑같은 NRC 템플릿으로 올리다 보니 빠르게 터치를 반복하면 1분짜리 1초 비디오를 보는 것 같다. 혼자 자주 정주행한다.

달리기가 뜸해진 시기는 있었어도 러닝 스토리의 맥이 끊기진 않다 보니 친구들은 나를 '꾸준하게 달리는 영록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나를 만나거나 연락을 하면 러닝 이야기를 꺼낸다. 내가 뛰는 걸 보고 자기도 달리기 시작했다며 뿌듯하게 근황을 전해주는 이들도 왕왕 있다. "나는 오늘도 뛴다"고 소문내는 만큼 응원과 박수를 받는다. 그럼 또 다음날 뛰러 갈 흥과 힘이 난다.

 


 

Day 33

2019. 09. 23.

지난 러닝 때보다 기온이 5도나 떨어졌다. 이제 날씨가 춥다. 긴 팔 긴 바지 입어야 해. 어우 추워. 얼른 들어가서 뜨거운 물 끼얹어야지.

 

Day 34

2019. 09. 30.

새벽에 잠이 깨버렸는데 다시 잠들지 못하고 두 시간을 뒤척였다. 그러다 결국 해가 떠버려서 뛰러 나왔다. 여섯시 반. 올해 처음으로 아침에 뛴다. 1학년 때 서킷트레이닝 하던 시절 이후로 아침 운동은 처음인가? (나는 14학번이다. 무려 5년 전 이야기다.)

오늘의 팟캐스트는 듣똑라 퀸덤. 패널이 많아서 왁자지껄한 느낌도 있고, 주제도 가볍고 흥미로운 데다가 퀸덤 프로그램을 보진 않아도 화제가 된 AOA 무대를 유튜브에서 본 터라 달리는 내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Day 35

2019. 10. 07.

의외로 월요일 저녁이 가장 의지가 충만하다. 달리기 전에 달리기.

 

Day 36

2019. 10. 15.

오전 7시 러닝. 러닝 강도는 '4: 대화를 가볍게 나눌 수 있는 수준'. 달리다가 하늘 사진을 몇 장 찍었다.

 

Day 37

2019. 10. 19.

은행지뢰밭.... 가로수가 온통 은행나무라 달리는 모든 곳에 떨어진 은행이 즐비했다. 신발 밑창 틈에 끼어 냄새 풍기는 것이 싫어서 은행을 밟지 않으려 피하면서 달렸다.

 

Day 38

2019. 10. 20.

뛰다가 나타나는 틈새 골목들 들어갔다 나오면서 모은 자투리 거리가 나중에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제 막 그렇게 힘들진 않다. 오늘도 3km 무사히 끝!

 

Day 39

2019. 10. 27.

- 점심에 뛰려다 배고파서 현기증 난다고 미룸

- 밥 먹고선 뛰면 배 아프니까 미룸

  (그리고 의사선생님이 밥 먹고 운동하지 말랬다 절대)*

+ 근데 더 미루면 추울 것 같고

+ 저녁 먹으면 또 못 뛰고

+ 밤에 뛰면 잠이 안 옴

뛰러 나가는 거 하나에 거 이유가 되게 많이 필요한 타입

꾸준하기 위한 최소한의 러닝...이었다...

다음 번엔 회차 앞 자리 바꾼다!

*나는 역류성 식도염을 달고 산다. 그래서 역류를 유발하는 습관을 멀리하는데 신경을 많이 쓴다. 위장에 음식물이 차있을 때 운동을 하면 복압이 높아져서 위장을 압박한다. 외부에서 주머니를 누르니 당연히 내용물이 넘치기 십상인 것. 그래서 음식을 먹은 후엔 적당히 소화가 될 때까지 운동을 지양하는 것이 좋다.

 

Day 40

2019. 11. 09.

추워서 기모 후디 입고 뛰었다 숨 막혀 죽을 뻔... 기온은 15도였다.

 

Day 41

2019. 11. 10.

전후 스트레칭을 잘하자! 간만에 뛴데다 어제 뛰고 나서 스트레칭 안 하고, 오늘 뛰기 전에 스트레칭 대충 해서 그런지 왼 발목이 너무 아팠다.

오늘의 오디오 가이드는 'Run With Narae'.  아이린 코치가 "러닝은 연애다!"하니까 박나래가 "그럼 전 권태기인가 봐여" ㅋㅋㅋㅋㅋㅋ 듣는 재미는 있는데 사실 현장감은 별로 없었다. 이 사람들, 뛰면서 녹음한 게 아니라 아주 정적인 스튜디오에서 스크립트를 놓고 녹음했을 거란 생각에... 그래서 예전엔 아이린 코치의 오디오 가이드를 많이 들었는데 요즘엔 거의 듣지 않는다. 대신 팟캐스트나 노래를 트는 편이다. 이번에 나이키가 박나래랑 손잡고 이런저런 이벤트를 열더니 오디오 가이드도 만들었길래 웃음이 빵빵 터지는 러닝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다음 러닝부터는 다시 팟캐스트로 돌아갈 듯하다.

 

Day 42

2019. 11. 23.

아 백그라운드에서 앱 두 번이나 꺼졌다. 화면을 끄고 달리면 백그라운드에서 기록 측정이 멈추고 화면 켜고 달리면 배터리 광탈...ㅎ 핸드폰을 100%로 충전해서 들고 나갔는데 3%로 돌아왔다. 이건 애플워치를 사라는 폰의 처절한 몸부림이 아닐까 🤔

 

Day 43

2019. 11. 30.

11월 다 가기 전에 카운트 +1. 추울까봐 모자를 썼다. 잘한 것 같다.

 

Day 44

2019. 12. 20.

-4도. 으악 너무 추워

 

Day 45

2020. 02. 10.

달리러 나가는 길에 케이스 없는 쌩폰이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원래도 안의 유리 상단부엔 금이 가있었고 밖의 (이기적이라 쓸모를 깎아먹은) 강화유리가 그걸 잡아주고 있었는데, 이젠 아주 파삭파삭 잘게 다 깨졌다. 다행히도 기존 금 아래 부분으론 여전히 멀쩡하다. 하지만 문제는 후면 카메라와 플래시가 아예 고장이 나버린 것. 연결된 선이 아주 끊어졌거나 접촉 불량이 되어버린 것 같다. 앱을 실행해도 카메라가 동작하지 않는다. 차라리 전면 카메라가 깨졌으면 나았을텐데... 아무튼 이로써 오랜 시간 함께한 아이폰 6S와의 이별이 정말 정말 가까워져버렸다. 그래도 오늘 러닝 측정은 아주 잘 해줬다. BGM도 틀어줬다. 중간에 금은 갔어도 여전히 목숨 부지한 전면 카메라가 인증샷도 무사히 찍어줬다.

2020년 새해의 첫 러닝이었다. 며칠 전 친구들과 거한 술팟이 있었는데, 한 친구가 술약 오기 전에 웨이트를 먼저 하고 왔댔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술약이 있는데, 이 술을 맛있게 마시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은 근육을 만들러 간다고 했다. 워.... 자극을 좀 받았다. 이 몸뚱아리* 겨울잠을 깨울 때가 됐다 싶은거지.

*왓....?! 몸뚱아리가 사투리였다고?! 정말 충격이다.

 

Day 46

2020. 03. 15.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왔다. 장비왕이야! 11 Pro Max라는 묵직하고 거대한 서마터폰을 구매했지만 러닝 할 땐 가벼운 애플워치가 있으니깐 😎 다만 나는 VIBE를 쓰는데, VIBE 워치 앱은 없어서... 그렇다고 멜론이나 벅스나 FLO는 되느냐, 것도 아니다. 셀룰러로 들으려면 애플뮤직 밖에 답이 없단다. 옛날부터 이고지고 다니던 mp3 음원들 중 러닝 할 때 들을만한 걸 넣어두긴 했는데, 아니 플레이리스트에서 가장 최신곡이 5년 전 것이다...ㅎㅎ 팟캐스트도 셀룰러 데이터로 뚝딱 재생되는 게 아니라 미리 보관함에 넣어서 동기화를 해 둬야 한다. 내가 애플워치를 차고 뛰는 건지 아이팟을 들고 뛰는 건지 모르겠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치를 차고 달리면 괜히 기분이 좋다. 그뿐만 아니라 심박수도 측정을 해준다. 페이스가 느려도 심박수가 높다면 최선을 대해서 뛰었다는 소리다.

다 뛰고 집에 돌아와서야 카메라를 켤 수 있었다. 딱 목표치를 채우자마자, 혹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인증샷을 찍는 게 더 생생할 텐데 그건 좀 아쉽다.

지난겨울, 서울국제마라톤 공지가 뜨자마자 신청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코로나 창궐로 신청 취소를 받아주던 주최 측에서 결국 행사 취소를 선언했다. 행사가 열린다고 해도 나가지 못할 상황이었지만, 첫 마라톤 참가를 고대하고 있었는데 결국 취소라니 아쉽다. 올해 안에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면 다시 행사를 개최한다 하니 기다려봐야지.

 

Day 47

2020. 03. 16.

오늘은 이스라디오와 함께 달리기. 평소에는 자기 전 듣는 프로그램인데, 새로 올라온 에피소드가 궁금해서 러닝 하는 동안 틀었다. 듣고 있는 말의 호흡이 차분해서인지 달리는 속도도 함께 느려진 것 같다.

하루 내내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봤더니 눈앞이 흐릿흐릿한 게 좀 걱정스러워서, 돌아오는 길에 멀리 있는 아파트 층수도 열심히 세어봤다. 디자인 검수 작업을 하면 1px 단위로 엘리먼트가 왔다 갔다 해서 눈을 너무 혹사한다. 로직을 짤 땐 어두운 테마의 에디터를 주로 보고 있으니 그나마 나은데, 디자인 검수 작업은 거의 대부분 하얀 바탕의 UI를 봐야 한다.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은 큰 모니터 없이 15인치짜리 노트북 화면으로만 작업을 해야 해서 더 고되다. 일을 끝내도 잠들기 직전까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스크린을 계속 보고 있으니 눈이 정말 쉴 틈이 없다. 달리는 동안은 좀 낫다고 해도, 시선은 고작 전방 몇 미터 언저리에 가있을 뿐이라... 하루 중 멀리 있는 것을 볼 일이 손에 꼽힐 정도로 없다. 워치가 1시간마다 일어나라고 할 때 몸은 안 일으켜도 시선만큼은 모니터에서 옮겨 창밖을 좀 쳐다보고 있다.

 

Day 48

2020. 03. 18.

정평천을 따라 1.5km를 뛰어갔다가 전환점을 돌아왔다. 11시가 다 된 시간이라 인적이 드물었다. 고요한 밤 고요한 달리기.

 

Day 49

2020. 03. 21.

이사와 함께 재택근무도 시작, 사회적 거리두기도 시작, 쿠팡 로켓배송 구독도 시작했다. 첫 달은 무료라 알차게 주문하고 있다. 아주 건강하게 점심과 저녁 요리를 해먹고, 밤잠 자기 전에 건강하게 뛴다. 최고의 환경이야! 우리 집 너무 좋다!

 

Day 50

2020. 03. 23.

근래에 뛰면서 보니까 공원에 고양이가 아주 많다. 아직 어린 애들같다. 짐작건대 노랑 가족이 터줏대감인 듯하다. 까망 가족도 간간히 보이는데 이 친구들은 히피히피한 것 같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인 걸로 아는데, 이 작은 공원에 이렇게 많은 고양이가 같이 살기도 하나? 매 바퀴 고양이 찾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동네 사람들이 고양이를 무척 아낀다. 낮이고 밤이고 고양이 밥 챙기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

 

Day 51

2020. 03. 26.

비가 오고 있었다. 뛰고 싶은데... 옛날처럼 학교였다면 경사 때문에 좀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선 괜찮을 것 같아 옷을 챙겨 입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것도 아니니까 뭐- 하며 후드를 뒤집어 쓰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신기하다! 비가 오는데도 뛰고 싶었다니! 비를 맞으며 뛰었다는 사실이 이렇게 가슴 벅차고 자랑스럽다니!

 

Day 52

2020. 03. 28.

오늘 하루의 98%는 침대에서 보냈다. 아주 편하게 아주 진하게 쉬었다. 2%는 공원에서! 별이 보이는 하늘이었다. 아 좋다.

 

Day 53

2020. 03. 30.

러닝에 다시 맛이 들면서 인스타나 유튜브에서 러너들의 컨텐츠를 자주 찾아보고 있다. 인스타에서 #NRC나 #나이키런클럽으로 검색해서 나오는 게시물들을 보면 페이스가 5분대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느린 편인건가 내심 조바심이 생겼다. 기록을 단축시켜보고 싶었다. 나도 더 애를 써서 달려야 하나? 너무 편하게 설렁설렁 뛰나? 달리기 시작하며 욕심을 조금 부렸다. 하지만 야심찬 분노의 질주는 1km 기점으로 꺾이고 힘이 쭉 빠졌다. 얼마 못 가 곧바로 내 페이스로 복귀했다. 1km씩 나누어서 보면 각각 페이스가 6'10", 7'05", 6'42"이다. 처음에 무리한 탓에 중간에 힘이 빠졌다가 마지막에 적당히 페이스를 찾은 거다.

러닝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페이스로 유지하는 게 좋다고 했다. 또, 좋은 컨디션으로 끝을 내야 이다음 번에 달릴 때에도 계속해서 좋은 컨디션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무리하게 욕심을 내다간 부상을 당하기 쉽고 무릎 연골이 쉽게 망가진다고 한다. 속도를 높이려면 그만큼 더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 다리에 근력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혹사'가 되는 거다.

꾸준하게 오래오래 달리려면 매일의 달리기가 부담 없이 감당할 수 있는 난이도여야 한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달리는 사람에게 더 잘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왜 이상하겠나. 그렇지만 나는 잘 달리는 사람과 꾸준히 달리는 사람 중에 하나만 될 수 있다면 후자이고 싶다. 조바심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진 않겠지만, 욕심과 의욕 사이를 잘 저울질해서 꾸준함을 건져가는 게 나를 잘 다루는 것일 테다.

 

Day 54

2020. 03. 31.

꽃구경도 못 가는 2020년 봄이지만 달리면서라도 꽃놀이를 한다.

 

Day 55

2020. 04. 02.

아주 오랜만에 노래를 들으며 뛰어봤다. 하이라이트는 'Muse - Time is Running Out'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트 때문인지 중간 지점이 생각보다 빨리 와서 깜짝 놀랐다. 힘들어서 속도가 떨어지면 노래를 한 소절 따라 불러봤다. 불러지면 '그래 아직 덜 힘드네' 하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오늘 공원은 전부 다 내 거였고! 나무 타는 까만 고양이도 만나고! 혼자 벚꽃도 만끽했다! 내일은 금요일이고!!! Yay!!!!

 

Day 56

2020. 04. 03.

오늘도 러닝 메이트는 동네 고양이들

 

Day 57

2020. 04. 05.

매일 비슷한 시간에 뛰러 나가니, 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벤치에서 노트를 꺼내놓고 글을 쓰는 사람이 있고, 반 바퀴 돌면 철봉에서 턱걸이를 하는 사람이 있다. 고양이 가족도 늘 보인다. 저들도 뉴비인 나의 등장을 알아차렸을까?

 

Day 58

2020. 04. 06.

6' 07"! 기록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지만 새로운 성취는 칭찬함직하지! 잘 뛴다 잘 뛴다 👏👏👏 막판 스퍼트를 내서 후반 1km는 5'48"의 페이스로 뛰었다.

 

Day 59

2020. 04. 09.

20분이 되기 전에 골인했다! 그러고 싶어서 마지막에 좀 기를 썼다. 확실히 초반에 힘을 내는 것보다 막판에 힘을 내는 게 더 쉽다. 끝이 가깝고 충분히 예상 가능해서 그런가보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아주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면 할 만해진다.

 

Day 60

2020. 04. 12.

아주 오랜만의 'Just Do It. Sunday'다. 또 아주 오랜만의 5km 달리기다.

성복천 산책로도, 정평천 산책로도 사람이 너무 많았다. 사람들과 2m 거리 유지하면서 인적 드문 곳으로만 골라 뛰느라 애를 먹었다. 주말이라 사람이 더 많이 나온 것 같다.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지면 사람들이 산책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까 외려 줄어들까?

 

Day 61

2020. 04. 13.

5K Head Starts. 저녁을 먹고도 단 게 당겨서 버블티를 사먹었다. 펄 추가를 하고 밀크폼까지 얹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밀크폼이 밀크티에 다 섞여버려서 정작 먹는 동안은 내가 밀크폼을 추가했다는 것도 까먹어버렸다. 여기 건 느글거리네, 하며 먹었다. 배가 부른 상태에서 더 밀어넣은 간식이라 적어도 행복감만큼은 얻고 싶었는데, 오히려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해서 짜증이 났다. 이럴거면 버블티 왜 먹었나 후회하고 있는 게 제일 기분이 나빴다.

3km 뛸 것을 버블티 먹은 김에 5km로 늘였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연달아 5km를 뛰는 거라, 오늘은 새로운 오디오 가이드를 틀어봤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계속해서 불어넣는 코치의 말을 들으면서, 또 달리면서 속이 좀 괜찮아지면서, 완주 지점에 가까워지면서 버블티 때문에 나빠진 아까의 기분을 생각했다. 재택을 하며 움직임이 둔해져서 살이 좀 쪘는데 이때문에 먹는 것에 강박이 생기고 있었다. 뭘 먹기 전에 칼로리를 먼저 보게 되고, 간식을 먹게 되면 죄책감이 들었다. 먹는 것에 심리적인 제약이 걸렸고 달리기의 빈도도 높아졌고 근력 운동도 하고 있는데 충분한 보상은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더 허기가 지기도 했다. 많이 먹고 더 운동하는 건 기초대사량을 더 높이는 거니까 좋은 거 아닌가 하면서 대충 기분을 위로해놨는데, 계속 '그게 다야? 더 생각해볼 게 있지 않아?' 하는 의문과 회의가 마음 속에 자리해있다.

며칠 전엔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에서 소개하는 록산 게이의 'Hunger' 토크를 달리면서 들었다. 지금의 내게 너무나 필요하다고 느껴져서 처방을 받듯 찾아 들은 컨텐츠였다. 월말에 구매하려고 박상영 작가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도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버블티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충분히 만족하고, 간식 하나 먹니 마니와 상관 없이 독립된 운동 목표를 달성하고, 또 충분히 그 성취를 누리고 싶다. 아직은 어떻게 나를 구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Day 62

2020. 04. 22.

포어풋, 무릎 굽히기, 턱 당기기. 다리면서 상기하고 자세를 가다듬었던 세 가지 키워드였다. 무릎과 고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게 슬슬 착지법을 신경쓸 때가 된 것 같다. 착지를 할 때 미들풋이나 포어풋으로 딛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릎을 살짝 굽히면서 발을 디뎌 무릎에 가는 충격을 완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턱을 당기는 건 호흡법과 관련이 있다. 숨이 차면 절로 고개가 들리는데, 그럼 호흡이 짧아져 받아들이는 산소의 양이 줄고 호흡이 더 가빠지게 된다. 그래서 턱이 들리는 것 같으면 의식해서 턱을 당기고 시선을 가상의 저 앞사람 허리께에 두도록 한다.

한동안 뛰러 나오질 못했다. 릴리즈를 앞두고 이틀에 한 번꼴로 밤을 새는 마당이라 뛰러 나올 여유도 정신도 없었다. 그래서 더 간절히 뛰고 싶었다. 재택근무를 하니 오히려 일을 놓고 퇴근할 타이밍이 불투명해져서 잠을 자야 하는 시간까지 일이 침범을 한다. 실제로 일을 하는 게 아니어도 일 생각, 일 걱정을 침대까지 끌고 온다. 급기야는 펼치지도 못할 노트북을 끌어안고 침대에 기대앉아 쪽잠을 자기도 했다. 잠을 잘 못 자니 점점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지치는데다 우울감에 빠졌다. 일을 착착착 해내지 못하는 내가 답답하기도 하고, 프로젝트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내보이는 지난 작업자의 흔적에 질투심을 느끼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인데 잘 해내질 못해서 슬펐다.

일을 하다 말고 다이어리를 펴서 '오늘은 바쁘더라도 뛰고 와야겠다'고 적었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일을 접어놓고 뛰고 왔다. 바른 자세로, 가다듬은 자세로. 잘- 뛰었다. 달리러 나가는 건 어렵지 않지만, 단 1km라도 달리면 나는 '오늘도 달린 사람'이 된다. 성취감이 필요하면 달리면 된다.

 

Day 63

2020. 04. 26.

왠지 모르게 힘이 나지 않았다. 처음 500m를 뛸 때 컨디션을 보면 그날의 페이스가 대충은 예상이 된다. 시작이 홀가분하면 끝까지 비슷한 페이스로 유지되거나 더 좋아지지만, 다리가 무거운 느낌이 들거나 축축 처지는 듯하면 뒤로 갈수록 페이스도 더 떨어진다. 1.2km만 뛸까, 1.5km만 뛸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중간 지점을 넘으니 '기왕'의 마법에 홀렸다. '기왕 -한 것'이라는 말은 진짜 무서울 만큼 효과가 엄청나다. 기왕 손댄 코드는 고치기를 멈출 수 없다. 기왕 달리러 나오면 중간에 포기하기 너무 아깝다. 기어코 다 달렸다. 잘했다!

후반부에 왼 발목이 조금 아팠다. 이 글을 쭉 적어 내려오며 알게된 것인데, 전에도 난 왼 발목이 아팠다. 달리는 자세의 문제일까? 신체 균형이 맞지 않는 걸까? 아니면 전에 킥복싱을 하다 발목에 타박상을 입었던 게 제대로 회복이 안 된 걸까? 앞으로도 달리면서 어떤 증상이 있으면 사소한 것이라도 적어놓아 봐야겠다. 다친 게 왼 발목이었다는 것도 찍어둔 사진을 찾아보고 알았다.

 


달리는 사람의 자아

200km 채운 날 할법한 감상을 조금 모자라게 달린 날 미리 해버렸다. 매번 달릴 땐 그저 별생각 없이 20분 정도를 달리고 오는 거라고 여겼는데, 쭉 모아놓고 보니 내가 달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열어주는 생각의 물꼬가 참 많다. 내 몸에 대해서, 내 건강에 대해서, 내 마음에 대해서 관찰하고 실험하고 기록하는 계기가 된다.

100km를 찍으며 다음 목표를 부담 없이 운동화 신기로 삼았었다. 200km를 찍은 지금, 조금 미적거리긴 해도 운동화의 무게는 훨씬 가벼워졌다. 300km를 달릴 때까지 이루고 싶은 목표는 '5개월'. 누적 100km는 6개월, 누적 200km는 7개월이 걸려 달성했다. 곧 여름이 오는 걸 감안해서 다음 100km는 5개월 안에 달릴 거다. 그럼 하반기엔 10K 마라톤에 어렵지 않게 나갈 수 있겠지.

 

 

▼ 이전편/ 작년 3월, 무작정 달리기 시작한 이래 총 100km를 달리기까지의 기록

 

[러닝로그] 매일 3km씩, 초보 러너가 누적 100km를 달리기까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일단 뛰어본다 2019년 3월 1일, 디사커 친구들과 함께 러닝 크루를 만들었다. 극한의 에쓰노 - 디사커 수업을 연달아 들으며 숱한 시간을 밤샘으로 함께한 친구들이라 다들 건강 상태에 염려가..

eternal-records.tistory.com

 

▼ 다음편/ 5월의 러닝로그

 

[러닝로그]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누적 200km를 달린 후 "다음 100km는 5개월 안에 달릴 거다"라고 호언장담을 하며 러닝로그를 마무리했는데, 아주 보기 좋게 망했다. 5월에는 드문드문하게나마 달렸는데 6월부터는 날씨가 더워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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