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역서울 284] 파우스트 되기(BEING FAUST – ENTER MEPHISTO)

2016. 12. 22. 14:20문화생활/전시

2016. 11. 27.


문화역서울 284 페이지에서 미리 예약을 하고 참가했던 게임, '파우스트 되기'. 이전에 독일문화원 견학을 갔을 때 이 프로젝트를 소개한 것을 보고 무척이나 참여해보고 싶었다. 마침 이번 '문화역서울 284 영웅본색'에서 매주 수, 일요일에 게임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신청을 한 후 이날이 오기만을 고대하며 기다렸다.


'파우스트 되기'는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를 재해석하여 참가자들이 현실에서 『파우스트』를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든 게임이다. 『파우스트』의 주인공인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리스와 계약을 맺어 영혼을 팔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한다. 게임 '파우스트 되기'에서 참가자들은 각자가 파우스트가 되어 MEPHISTO&co.에 자신의 친구를 팔고, 그렇게 얻은 돈으로 자신이 충족하고자 하는 욕망을 채워나간다.


게임에 입장하기 전, 메피스토 상점과 계약을 맺고 계약서를 작성한 참가자는 주어진 열두 개의 가치 중 자신이 욕망하는 6개의 가치를 골라 순위를 매긴다. 그리고 사전에 부여받은 아이디로 'Enter Mephisto' 앱에서 순위에 따른 가치 6가지를 입력한다.


주어진 열두 가지의 가치는 젊음, 쾌락, 믿음, 사랑, 돈, 아름다움, 권력, 명예, 자유, 지식, 가족, 그리고 발전이다. 각 가치가 적힌 카드의 뒷편에는 가치의 고유번호가 적혀있는데 이것을 앱에 입력하면 메피스토 은행에서 그 데이터를 수집한다.


사람들이 욕망하는 가치 TOP 3는 자유, 사랑, 지식이었다. 보다시피 어두운 게임장 안 곳곳에는 12개의 가치를 담고 있는 다양한 문장들이 붙어 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신이 고른 6개의 가치 문장을 찾아 구매하면 된다. 그렇다면 예산은 어디서 얻느냐?


바로 Bank of MEPHISTO, 메피스토 은행에 친구를 팔아 현금을 받을 수 있다. 희곡 『파우스트』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영혼을 팔았지만, 여기서는 자신의 연락처에 있는 친구들을 넘겨 영혼을 팔아야 한다.


메피스토 은행의 ATM은 현금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팔 수 있는 친구의 수도 한정이 없다. 자신이 팔고 싶은 만큼 자유롭게 팔 수 있다. 그게 허용되는 이유는 1, 메피스토 은행에서는 구매하는 인간의 영혼이 많을 수록 좋고, 2, 참가자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욕망의 충족이기 때문이다. 


설정은 친구의 영혼을 파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연락처에 있는 누군가를 '가짜로' 넘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 죄책감이 많이 들진 않을 수 있다. 더구나 은행에선 연락처 상의 지인과 참가자의 관계를 알 수 없으니, 친밀한 관계인 것으로 전제한다. 그러다보니 게임에서 치킨집 번호나 학교 사무실 전화번호 등이 뜨기도 한다. 주최 측에서 최대한 살리려 한 현실감을 훅 떨어뜨리는 요소이긴 하다. 이번 게임에서는 참가자의 핸드폰에서 수집한 연락처를 통해 친구 리스트를 받아가지만, 원래의 게임에서는 페이스북의 친구를 골라 판매한다. 그래도 비교적 '친구'에 가까운 이들을 판매해야 하니 연락처보다는 훨씬 몰입도가 높을 것 같다.


게임에 참여하는 진지함의 온도차도 그 참가자의 성향이나 가치관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아무리 가짜라고 해도 '친구를 팔아 돈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불편한 이들은 욕망 충족을 포기하거나, 최소한의 친구를 판매하고 최대한의 욕망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할 것이다. 혹은 자신에게 소중하지 않은 이들부터 팔아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친구를 파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건 이 잠깐의 게임에서 우정보다 자신의 욕망 충족을 우위에 두었다는 걸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손전등을 들고 문장을 찾아 헤매는데, 찾은 문장이 욕망하는 가치에 부합하면 문장을 구매할 수 있고, 욕망 만족도가 올라간다. 수요가 높으면 가격이 올라가는 법. 많이 팔리는 문장은 그만큼 비싸지기 때문에, 남보다 빨리 문장을 찾아 구매하는 것이 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다.


가장 많이 팔린 문장 7개 모두 '자유'의 가치를 담은 것들이었다. 게임 중간에도 실시간으로 스크린에 베스트셀러 문장이 뜨기 때문에 참고할 수 있다.


내가 선택한 가치는 순서대로 명예, 발전, 자유, 사랑, 지식, 아름다움이었다. 게임 중간에 다른 사람과 카드를 교환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예를 들어, 내가 가진 '명예' 카드와 다른 사람의 '명예' 카드를 교환하고 그 번호를 입력하면 서로 찾은 문장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즉 교환도 함부로 막 하는 게 아니라, 문장을 많이 찾은 사람의 카드와 교환해야 내 욕망 만족도도 금방 높아진다는 것이다. 카드의 교환 기회는 각각 1번씩 가능하다. (실수로 교환했던 카드를 다른 사람과 또 교환하게 되면 '교환으로 얻은 문장'이 0이 되는 것 같다. 실수로 아름다움 카드를 두 번 바꾸었는데 저런 결과가 나왔다. 게임이 끝나고야 깨달았다.)


게임을 시작할 때 VIP 두 명을 뽑아 선물을 준다고 공지를 했었다. 그래서 욕망 만족도를 채우기 위해 정말 열심히 문장을 찾아다녔다. 100% 넘기면서 요령이 생기고 불이 붙어 굉장히 빠른 속도로 200%를 넘겼다. 친구는 시작할 때 팔았던 6명으로 충분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게임을 원활하게 진행하면 보너스가 붙기 때문에 굳이 돈을 더 인출할 필요가 없었다.


VIP는 알고 보니 예상했던 욕망 만족도 최고점자도 있었지만, 친구를 가장 많이 판 사람이 나머지 한 명이었다. (60명 남짓 판매하신 분이 VIP로 선정되셨다.) 나는 돈이 부족한 적이 없어서 영수증을 많이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의아해했는데, 생각해보니 고민을 많이 하고 손이 빠릿빠릿하지 않으면 갈수록 비싼 문장을 구입해야 하니 친구도 많이 팔아야 했다는 게 이해가 됐다.


사실 200%를 넘기면서 내심 내가 VIP가 될 거라는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웬걸, 발표를 들어보니 VIP는 정말 남달랐다. 무려 370%의 역대급 치를 기록한 사람이었다. 사회자가 말하길,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전면 스크린에 이분의 이름이 그렇게 빈번하게 떴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이 골랐던 1위 가치와는 다르게 가장 많이 찾은 문장이 '돈'이었다고. 호오.......


이 게임의 진짜 재미는 집에 돌아와서 오빠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있었다. 처음엔 게임의 허점을 꼬집던 오빠가 자신의 1~6순위 가치를 고르고, 이유를 이야기 하고, 우리 둘의 가치관 차이를 비교하며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나의 가치관은 무엇에 바탕을 두는가? 나는 성공을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각자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100개가 넘는 문장을 저장하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문장을 읽으면서 『파우스트』의 캐릭터와 그들이 추구하는 주된 욕망이 기억에 남았다. 익히 들었지만 아직 읽지 못한 『파우스트』를 읽고 싶은 생각이 굉장히 많이 들었다. 게임 제작의 목적이 충실히 달성된 대작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