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해상도

2021. 6. 8. 23:34데일리로그

 

공부란 '머릿속에 지식을 집어넣는 행위'가 아니라
'세계의 해상도를 올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뉴스의 BGM이었던 닛케이 평균주가가 의미를 가진 숫자가 되거나
외국인 관광객의 대화를 알아듣거나
그냥 가로수가 「꽃의 시기를 맞이한 배롱나무」가 되거나 한다.
이 「해상도 업그레이드감」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강하다.

 

누군가 이 말을 인용한 걸 본 적이 있다. 거기엔 첫 번째 문장만 언급되어 있었다. '오, 완전 맞는 말이야' 하고 공감했다. 그러다 원문 전체를 발견해버렸다. 뭐? 원래의 의도했던 뜻은 이렇게 단순한 거였다구? 외국인 관광객의 대화를 알아듣는다고 해서 그게 이 세상을 더 '잘' 보게 되는 거라니? 세계의 해상도라는 비유로 공부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할 것이었다면, 가령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늘어나면 만날 수 있는 세계도, 이해할 수 있는 사고방식의 폭도 넓어질 수 있다는 식의 부연 설명이 더 적절하지 않았나? "세계의 해상도를 올리는 행위"에서 멈추고 말을 아꼈더라면 함축하는 의미가 더 큰 문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세계의 해상도'라는 말은 빌려오고 싶다. 해상도가 높아지는 것은 곧 피로도도 함께 높아진다는 걸 뜻한다. 잘 몰라서 관심을 갖지 않던 것을 이제 알아서 보고 듣게 되었다고 그게 항상 좋거나 옳지만은 않다. 사양이 받쳐주지 못할 만큼 높은 해상도는 부담이 될 뿐이니까. 흐린 눈이 차라리 더 편할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고 세밀하게 세계를 바라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입시와 취업으로 전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탁월함을 목표로 공부를 하게 될 때,
아마 한국인은 양념 치킨보다 더 멋진 것,
이를테면 잘 양념된 삶을 이루고 향유하게 될 것이다.

-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어크로스, 2020, 14쪽

 

다시 대학에 입학한다면 어떤 전공을 선택할 거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여전히 국사학을 택하겠다고 답했다. 이유가 많았지만 말로 꺼내서 나열해본 것은 많지 않았는데, 내가 언어화하지 않았던 것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취업으로 전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탁월함. 국사학과에 진학했다고 하면 꼭 전공의 쓸모 혹은 역사학의 쓸모를 묻는 사람이 있었고 나도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 전공의 쓸모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을 내곤 했다. 근데 또 마음 한편에선 당장의 '쓸모'를 위해 선택한 전공이 아니라는 것에서 우러나는 자부심도 분명 있었다.

 

'어떤 탁월함'이라는 건 높은 해상도로 세계를 바라보는 일이 아니었을까. 왜 항상 대학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지, '공부'를 왜 하고 싶은 건지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웠는데, 그 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보여주는 것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이면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 사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또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사건이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상징으로 남는지. 세상의 해상도가 올라간다는 것은 여기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혜안을 갖는 것. 내게 공부는 그러니까, 어떤 대상의 함의를 파악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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