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떠나는 여행

2021. 1. 18. 02:17데일리로그

2020.  01.  16.

 

벌써 세 번째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진선이. 지난 주말에는 자매들과 사는 진선이가 마침 집이 빈다며 초대를 해서, 점심부터 밤까지를 그곳에서 놀다가 왔다. 8시간 수다를 떨고서도 아쉬워서 다음 주엔 우리 집에서 보자고 약속을 잡고 헤어졌다. 1년 전엔 브런치를 먹고 4시간이나 수다를 떨었다며 진선이가 인스타에 스토리를 올렸었는데, 이젠 점심과 저녁, 다음날 아침까지 같이 먹으며 수다를 절대 끊지 않는 만남이 되었다. 어제야 안 사실. 진선이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지만, 음음. 내 착각이었다. 이건 진선이의 장기적인 찐친 프로젝트의 성과였다. 경이와 경외 사이 어디쯤에 있는 마음이 든다.

 

치즈 바게트로 만든 아보카도 토스트와 레몬 1개가 통째로 들어간 과카몰리 + 나초.

지금까지 만들었던 아보카도 토스트 중에 가장 열과 성을 다해 아보카도를 잘라 올린 거였다. 전날 점심도 아보카도 덮밥, 저녁은 과카몰리를 먹었지만 연달아 또 먹어도 전혀 질리지 않는 최애 브런치 메뉴. 너무 좋다 진짜. 아주 미세하게 레시피가 개선되고 있다. 토스트에 파프리카 파우더를 뿌리는 걸 유튜브에서 봤는데 초록색 아보카도 위에 빨간색 가루가 뿌려지니 색감이 참 예뻤다. 꿩 대신 닭이라고 파프리카 파우더가 없으면 고추가루를 뿌리면 되지. 매운 향이 살짝 더해지니 더 더 맛있었다.

과카몰리는 어제 저녁에 갑자기 꽂혀서 만들었는데 레시피를 대충 봤다가 레몬즙을 아주 과하게 넣어버렸다. 농도를 맞추느라고 아보카도를 얼마나 더 많이 넣었는지 모른다. 2.5kg나 샀던 토마토 페이스트 국물도 넣었다가 색이 이상하게 칙칙해져서 조금이라도 더 싱그럽게 만들겠다고 아보카도를 (또) 더 넣었다.

 

본격적으로 카메라 들고 찍고 있으니까 찐 블로거 같다고 진선이가 웃었다. 음식 사진에 이렇게 목숨 바치는 타입이 아니었는데, 햇빛이 낭낭하고 차려낸 음식이 예쁘니까 욕심이 막 생긴다.

 

너어어어어무 좋아하는 스콘! 진선이랑 집에서 뭐할지를 정할 때 제일 먼저 넣은 게 스콘 베이킹이었다. 스콘은 퍽퍽해서 맛이 없다고만 생각하다가 발루토에서 발뮤다에 3분 데운 스콘을 먹었는데 진짜 신세계였다. 이사하고 나서 집 근처에서 찾은 스콘 맛집이 있었는데 다른 곳으로 이전해버린 바람에 아-주 상심하고 있었다. 오븐을 사면 꼭 스콘을 만들어야지 생각은 했지만 막상 오븐이 생겨도 귀찮아서 미루었는데, 진선이가 온 덕분에 베이킹에 도전을 해보게 되었다.

재료 준비도, 만드는 법도 아주 간단했다. 유튜브에서 레시피를 찾았다. 밀가루에 버터, 우유, 달걀을 넣고 가르듯이 대충 섞은 다음 구워내면 된다. 얼그레이 티백 3개만큼의 찻잎도 추가했다. 반죽이 약간 질게 되었나 싶었지만 망해봤자 쿠키나 빵이지 뭐, 하면서 쿨하게 오븐에 넣었다.

 

진선이가 카메라로 타임랩스를 찍자고 했다. 오븐에 스콘을 굽기 시작하고 카메라를 세팅했다. 핸드폰이 아니라 카메라로 타임랩스를 찍는 건 처음이었다.

"이거 뭐야, 왜 타임랩스가 아니라 슬로우모션이 찍혀?"

스콘은 총 20분을 구우라고 되어 있었는데 카메라 세팅하다가 10분이 지나갔다. 카메라 박스를 가지고 나와서 도움말을 뒤져보고 메뉴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슬로우모션 대신 타임랩스를 찍는 법을 겨우 찾아냈다.

 

스콘이 점점 부풀어 올랐다. 크랙이 생기는 것도 있었다. 둘이서 오븐 앞에 앉아 구워지는 스콘을 홀린 듯이 지켜봤다. 스콘 향이 퍼지기 시작했다. 불멍하는 기분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베이킹에 빠지나 싶었다. 마음이 따뜻하고 평화로워지는 것 같은 느낌...

 

빵빵하게 잘 구워진 스콘 👍 20분을 굽고 나서 하나를 잘라보니 아직 반죽이 덜 익었길래 10분이 조금 넘게 더 구웠다.

 

조명 맛집 우리 집 ✨ 뒤쪽엔 모닥불이 나오는 캐롤 영상을 틀어놨다. 홈카페에 좀 자부심 있다. ㅎㅎㅎ

 

막 구워서 온기가 가득한 스콘에 딸기쨈. 최고 조합이다 진짜. 진선이랑 하나씩 들고 먹다가 차를 내와야겠다며 물을 끓이기 시작했는데, 스콘 + 티 조합이 정석이라지만 왠지 모르게 우유가 더 생각이 났다.

"진선아, 차 아님 ... 우유?"

'우유'를 말하자마자 진선이 눈이 대답했다. 이건 우유랑 먹어야 된다고. 😂

첫 베이킹이었는데 완전히 성공적이었다. 발루토 스콘 없어도 괜찮아. 이걸 우리가 만들었다니! 뿌듯하고 신이 나서 막 몸이 들썩거렸다.

 

자고 가라고 진선이를 꼬셨다. 냉큼 잠옷도 꺼내 주었다. 1월의 심신 단련 챌린지인 복근 운동 루틴까지 함께 하고 나서, 와인을 사 왔다. 원래 낮에 스콘을 만들까 뱅쇼를 만들까 둘 중에 하나를 고른 거였는데, 하필 파는 와인 중에 떡하니 뱅쇼를 만들어 먹으라고 재료가 덤으로 붙어있는 게 있지를 않겠나. 사야지 사야지. 만들어야지 뱅쇼. 사과 한 알도 같이 사 와서 자정이 다 된 시간에 뱅쇼를 끓였다. 작은 컵에 조금씩 담아 홀짝거리면서 깔깔거리기도 하고 찡한 이야기도 나눴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진짜 우리 자야된다면서 겨우 이야기를 멈췄다. 4시간, 8시간 다음이 14시간 수다라니 🙊 (근데 침대에서 또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들었다)

 

1시간 거리에 살지만 이웃사촌인 것처럼 식재료를 나눠 담아주었다. 혼자 먹기엔 너무 많지만 어쩔 수 없이 샀던 재료들인데 나눠줄 사람이 있어서 기뻤다. 프렌즈처럼 우리도 가까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이 시트콤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