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제주도에서 스쿠터 대여하기

2016. 10. 6. 02:19국내여행/2016 제주

다사다난 스쿠터


 혼자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다던 친구는 스쿠터를 빌려 타고 다녔더랬다. 오빠도 그랬다.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스쿠터 한 대를 빌려 신나게 돌아다녔다고. 그래서 나도 당연히 스쿠터를 빌려야지, 하고 생각했다. 자전거 잘 타면 스쿠터는 어렵지 않게 탈 수 있다는 말도 들었고, 오토바이도 아니고 스쿠터인데 그깟 게 뭐 얼마나 어렵겠어 싶었다.


 여행 준비를 하며 특히 스쿠터 대여에 신경을 많이 썼다. 간혹 수리비로 사기를 치려는 악질 업체들이 있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원래 있었던 기스를 꼬투리 잡아 부품 전체를 갈아야 한다며, 비행기 시간 급한 고객의 조급함을 노리는 수작이랬다. 그래서 스쿠터를 빌릴 때는 작은 기스 하나도 놓치지 말고 세세하게 사진을 찍어두라는 충고도 자주 보았다.


 해서 고심 끝에 한 업체를 골랐다. 사람들의 평이 좋았는데, 특히 사장님이 사고 전화를 받고 임차인에게 다친 곳은 없는지부터 물었다는 게 인상 깊었다. 수리비 사기를 당했다는 글도 없었다. 많은 업체가 스쿠터를 수리할 때 '수리비 + 휴차보상료(수리하는 기간을 내가 대여하는 걸로 치고 대여료를 내는 것) + 공임비'를 모두 임차인에게 요구하는데, 이곳은 휴차보상료와 공임비를 면제해준다는 글도 읽었다. 게다가 부가적인 서비스도 괜찮아 보였다. 예약하고 간 건 아닌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연락을 드렸더니 공항으로 픽업을 오셨다.


 사장님이 이것저것 여쭤보셨는데, 만 19세가 넘었는지, 면허가 있는지, 자전거를 잘 타는지, 한 손으로도 탈 수 있는지, 키는 어떻게 되는지 등이었다. 최소 제2종 보통면허 이상은 취득한 상태여야 스쿠터 대여가 가능하다. 다만 125cc 이하의 스쿠터만 가능하고, 그것을 초과하는 이륜차를 운전하려면 제2종 소형면허가 있어야 한다. 키가 155cm라 대답했더니 그럼 '비노(VINO)'를 타야 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양발이 바닥에 닿는 게 좋은데, 다리가 짧으면(...) 차체가 낮은 것을 타야 하기 때문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딱 봤을 때 예쁘장한 것 말고, 튼튼하고 잘 나갈 것 같은 걸 골라야 한댔는데, 나는 고를 것도 없이 바로 그 '예쁘장'한 비노를 타게 됐다. 비노는 50cc짜리인데, 이게 큰 도로에선 탈 만한 게 못 된다. 아무리 엑셀을 당겨도 시속 65Km를 넘지 않는다. 80 도로에서 100 이상 달리고 있는 차들 옆을 65로 달리고 있으면 얼마나 눈치가 보이고 살이 떨리는지 모른다.


 여행을 다 끝낸 입장에서, 나처럼 스쿠터를 처음 빌리는 사람들에게 고려할 사항을 말해주자면,

- 긴 소매, 긴 바지를 입는 게 좋다. 여름엔 잘 타고 가을만 돼도 춥다. 바람막이(혹은 우의)도 꼭 챙기는 게 좋다.

- 헬멧, 장갑, 무릎 보호대, 핸드폰 거치대는 꼭 빌려야 한다. 헬멧은 얼굴 전체를 가리는 것으로 골라야 한다. 얼굴을 가려주는 게 없거나 눈만 가리는 것은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티끌이 눈에 들어가기 쉬워 위험하다. 그리고 무릎 보호대는 귀찮아도 꼭 착용하는 걸 권장한다. 장갑도. 나는 장갑을 깜박하고 빌리지 못했는데, 아 정말 후회되는 것 중 하나였다. 스쿠터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을 때 손 여기저기에 작은 생채기와 멍이 생겼다. 넘어져서 손바닥도 까졌다.

- 125cc를 빌리는 걸 추천한다. 스쿠터가 도로에 나가면 안 그래도 무시당하는데, 속도까지 느리면 진짜 목숨이 위협받는 느낌이다.

- 탑박스가 있는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짐을 묶어 놓고 다니자면 분실 위험도 크고 묶었다 풀었다 하는 것도 번거롭다.

- 업체에서 공항이나 여객선터미널로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면 편하다. 정말 편하다.

-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다양한 각도에서 고화질 사진을 찍어둘 것. 나는 스쿠터를 한 번 넘어뜨렸는데, 안쪽 좌측 부가 깨져 있어서 한동안 수리비 걱정을 했다. 그런데 사진을 보다 그게 빌릴 때부터 깨져있었던 것임을 알게 됐다. 얼마나 안심했는지! 그게 바로 아래 사진이다.



 나는 자전거를 잘 타고 균형 감각도 좋고 힘없는 비실이도 아니다. 그런데도 스쿠터는 예상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무거운 기계였다. 스쿠터가 한쪽으로 넘어지려 할 때 그걸 팔힘으로 붙잡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달려나가다 균형을 잃고 핸들이 제멋대로 꺾이며 휘청이면 진짜 답 없다. 그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면서 내가 이렇게 비명횡사하는구나, 죽음의 공포가 덮친다. 속도가 느려 덜 다친다면 운은 좋은 거지만, 손이 덜덜 떨리고 몸에 힘이 다 빠져서 쓰러진 스쿠터를 일으키는 것도, 뒤에서 달려오는 차를 피하는 것도, 내 몸 다친 것보다 스쿠터 수리비 걱정이 먼저 드는 비참함도 끔찍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내가 안전 운전을 하고 도로 규칙을 잘 지킨다 해도, 다른 자동차 운전자에게 스쿠터는 느리고 짜증 나는 도로 위의 민폐일 뿐이다. 빵- 하고 울리는 경적은 고스란히 내 귀로 파고드는데, 그렇게 깜짝깜짝 놀랄 때마다 혹여 균형을 잃고 넘어질까봐 조마조마했다. 또 전방주시에 여념이 없어 생각보다 경치를 즐길 짬이 나지 않기도 했다.


 스쿠터는 분명히 장점이 많다. 주차하기 쉽고, 초보자도 운전하기 어렵지 않고, 대여료도 저렴하다. 그렇지만 나는 첫째 날 당한 사고 때문에 여행 내내 엄청난 긴장 속에 운전해야 했고, 막판엔 방향 지시등도 켜지 않고 갑자기 밀고 들어오는 택시 때문에 균형을 잃고 정말 죽는 줄 알았다. 헬멧과 보호대를 벗고 쓰는 것도 번거롭고 답답한 데다 어디 갈 때마다 그걸 다 정리해서 넣어두는 것도 귀찮았다. 그래서 나는 일 년동안 운전 연습을 열심히 해서 되도록 차를 대여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