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위로가 된 프랑스-독일 여행

2017. 12. 23. 11:24해외여행/2017 크리스마스 유럽여행

2017. 12. 15 ~ 22.



편안한 동행

스트라스부르 Meet&Go에 들어가자 저 멀리 작은 탁자에 혼자 앉아있는 근희가 보였다.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드는 근희에게 활짝 웃음을 지으며 다가갔다.


"어, 왔어?"


장갑을 벗고 목도리를 풀며 헤치며 근희 맞은 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안부 물을 틈도 없이 근희가 받고 있던 전화를 건네 받아 갑작스럽지만 또 반가운 통화를 이어가게 됐다. 전화를 끊자마자 근희에게 과제 진행 추이를 물었다. 쌓여있는 과제 중 끝끝내 에세이 하나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스트라스부르까지 오게 된 근희는 나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에세이와 씨름하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수개월만에 지구 반대편 낯선 말들로 가득한 곳에서 재회한 사람들이 게 맞긴 한걸까. 학교 앞 카페에서 공강 때 불러낸 것 마냥 너무 아무렇지 않게 앉아 있잖아.


서울살이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이곳을 집으로 여길 수 있을까 하던 의문과 회의가 마음 한가운데에 구멍을 훅 내며 뚫고가던 때가 있었다.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건,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다독이며 지냈던 고등학교 친구들이 또 함께 서울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낯선 타지에 나 혼자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지.


한번도 나 자신을 규정해본 적 없던 방식, 끝끝내 스며들지 못하고 겉도는 이방인, 아등바등 애를 써도 결국은 쓸모 없는 짐짝 신세로 전락하는 스스로를 비참해하면서, 서울살이를 시작했던 그때와 비슷한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간절하게 기다렸던 근희와의 여행이었다. 근희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터져버리면 어떡하지, 걱정을 하며 기차에서 내렸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할만큼 정말이지 일상적인 만남이었다. 서울에 있는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기댈 곳이 되었던 그때처럼, 국경을 사이에 두고 서울과 부산보다도 먼 곳에 떨어져 있을텐데도 우린 유럽에 함께 온 거라며 기뻐한 친구였다. 유럽 어딘가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든든할 거라고 했다.


극적인 반가움보다 함께 있어 편안함이 더 큰 친구. 예쁜 게 보이면 홀린 듯 따라가보고, 길거리에서 붕어빵과 호떡 사먹듯 와플과 크레페를 나눠먹었던 곳. 같이 장을 봐다가 요리를 해먹고, 밤에 불 꺼놓고 영화를 보고, 영화 속 마을에 들어간 기분으로 콜마르 거리를 거닐었다. 일상을 살듯 여행할 수 있는 친구와 함께 있다는 게 더없이 감사했던 스트라스부르였다.




따뜻한 커피

전날 지나치면서 흘깃 보고선, 꼭 노량진에 있는 작은 카페같아 하고 이야기했던 카페가 있었다. 어제 봤던 그런 카페가 하나 나타났으면 좋겠다, 하고 말하던 찰나 정말 우연하게도 어제의 그 카페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빈 자리가 보이지 않아 들어가도 되려나 망설이고 있는데, 뒤에서 한 팀이 "Pardon?"하며 카페에 들어간다 하기에 우리도 얼결에 문을 열고 가게에 들어가게 되었다. 0층이 다인 줄 알았는데 들어가보니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어 또 앞서 윗층으로 올라갔다. 마침 한 팀이 짐을 챙겨 일어나 우리가 그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나중에 보니 우리의 착석을 끝으로 만석이 되어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제법 유명한 카페인 모양인 것 같았다. 주문을 하는 그 잠깐 새에도 다섯 팀이나 들어왔다가 자리가 없다는 말을 듣고 발걸음을 돌렸다. 우리 뒤이어 들어온 두 사람도 자리가 없어 결국 돌아나갔다. 맛집인 줄도 모르고 기웃거리다 떠밀리듯 들어와 마지막 자리를 꿰차고 앉았으니, 행운의 여신이 함께 했나보다.


근희는 내 허리가 아플까 전시를 보는 대신 카페를 찾아 나서고, 내게 자연스레 벽 쪽 의자를 권하며 등을 기대고 쉴 수 있게 해주었다. 근희의 배려가 따뜻해서였나, 돌아오는 길엔 날도 덜 추운 것 같았다.




그 사람의 시선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가 그랬다. 이상순이 찍어준 자기 모습이 가장 예쁘다고. 남편의 눈으로 보는 사랑스러운 자신의 모습이 담겨서 그런 거겠지, 하고. 그 사람이 찍어서 보여주는 내 모습도 꼭 그랬다. 과제를 하다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아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 과제하다 갑자기 렉이 걸려 컴퓨터와 함께 내 손과 입도 멈추어 버린 모습, 피곤에 지쳐 잠시 잠깐 잠든 모습, 낮잠 자는 모습, 꽃을 사진으로 담아보겠다며 애써 손을 뻗어보는 모습, 맵고 뜨거운 걸 먹다 헐레벌떡 물을 마시는 모습. 어느 때보다도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과, 그런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을 그 사람의 시선이 고스란히 읽히는 사진들이었다.


여행을 정리하며 근희에게서 건네 받은 내 사진들에서도 근희의 시선이 보였다. 욕심의 크기만큼 눈을 한가득 뭉쳐 들고 근희를 쫓아갔던 순간, 기차가 정차하는 1분 사이에 얼른 깨끗한 눈 밟아보고 오겠다며 후다닥 뛰어갔다왔던 순간, 고구마인 줄 알고 삶아온 감자를 크게 한 입 베어무는 순간, 기차에서 또 곤히 잠든 순간. 근희는 내 모습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 들었구나. 근희의 사진 속 나는 참 장난기 가득하고, 한껏 신나서 붕붕 뛰어 다닌 아이였다.




혼자만의 겨울정원

비너스의 동굴을 지나 겨울정원이 나타난 순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유리문으로 둘러쌓인 발코니엔 탁자와 의자가 놓여있었고, 유리창 너머 온 세상은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다. '겨울정원'이라니.. 창틀을 액자 삼아 밖의 풍경을 내 방에 걸어둔 그림이라 말하는 것처럼, 루드비히는 유리창 밖의 아득한 풍경을 마치 자신이 소유한 듯, 정원이라 이름 붙였다. 그것만큼은 정말 탐이 났다.


루드비히가 아이제나흐의 바르트부르크 성에 감명을 받아, 많은 부분을 참고해 노이슈바인슈타인 성을 지었다고 한다.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우와 소리가 절로 나왔던 곳이 거대한 홀이었는데, 노이슈바인슈타인 성에도 그 홀을 작게 옮겨다 놓은 듯한 홀이 있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바르트부르크의 로마네스크 양식인 두 개의 홀을 한 방으로 통합시켜 복제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성대한 홀을 만들어 놓고선, 루드비히는 그곳에 홀로 있었다고 했다. 600개나 넘는 초를 켜놓고선 홀로 촛불이 흔들리는 걸 바라보고 있었을 루드비히를 상상하니, 한없이 외로웠을 거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성이 그랬다. 작디 작은 마을 퓌센. 거기에서도 조금 떨어진 깊숙한 산 속 저 높은 곳에 혼자 서 있는 노이슈바인슈타인 성이었다. 이 성의 주인은 세상과 연을 끊은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자기 자신에게 신의 명분을 부여하고자 했던 벽화, 과거의 영광을 애써 붙잡아 두고 싶었던 것만 같은 방의 인테리어, 성대한 홀에 밝혀진 600개의 초, 하지만 그 화려함 속에 놓인 것은 초라한 한 사람 뿐. 과거를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측은하고 안쓰러웠다.




고기와 맥주

성냥팔이 소녀가 지나가다 우리를 보고 부러워할 것 같다고 했다. 풍족한 식사였다.

독일이 나의 나라는 아니지만, 내가 근희를 초대한 기분. 맛있는 것만 먹이고 멋있는 것만 보여주고 싶었다. 하이델베르크가 나의 도시는 아니지만, 근희의 기억에 이 도시가 예쁘게 남길 바랐다.




크리스마스 마켓

크리스마스 마켓은 이제 다 거기서 거기같은 느낌. 하이델베르크의 크리스마스 마켓 또한 예쁜 것이 가득했지만, 더 이상 큰 감명을 주진 못했다. 이미 괴팅엔, 고슬라, 브레멘, 하노버, 스트라스부르, 콜마르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돌고 온 나였다. 도시의 고유한 느낌을 가려버리는 마켓의 화려한 불빛. 그래서 브레멘도 다시 한 번 가고 싶었는데. 하이델베르크는 날씨까지 궂은 바람에 제 모습을 다 보지 못하고 온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다만, 전쟁의 상처를 그대로 안고 무너진 채로 남아있는 하이델베르크 성은 오히려 안개 자욱하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 덕분에 그 정취가 물씬 살아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