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환학생] 새 친구 쯔슈안 / P-Cafe / 셀프 뿌리 염색 / Gregs Tagebuch 북클럽 시작

2017. 11. 6. 10:19독일생활/Tagebuch


2017. 10. 30


저번 주 목요일 들었던 Wortschatz 수업에 보니까 나랑 Theater, Sprechen까지 같이 듣는 한 친구가 보였다. 세 번째 보니 낯익어서 내심 반가워서, 수업 끝나고 계단으로 내려오는 그 친구에게 "Auf Wiedersehen!"하고 인사를 건넸다. 자신에게 한 인사인지 아닌지 몰라 당황하던 그 친구는 내가 웃으며 바라보자 자신에게 인사한 거냐고 되물었다. 응 맞아! 그러자 옆 친구 눈치를 보며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우물쭈물하며 다가와 물었다.


쯔슈안: "너희 저녁에 수업 또 있어?"

지수: "응, 지금 바로 있어."

쯔슈안: "아… 우리 다음 주 화요일에 이 수업 없는 거 맞지?"

지수: "응, 맞아."

쯔슈안: "그럼 너희 그날 뭐 계획 있어?

나: "아니, 없는데?"

쯔슈안: "그럼 우리 여행 안 갈래?"


ㅋㅋㅋㅋ 아니 처음 본 사이에 대뜸 여행이라니?


나: "응? 여행? 아… 그..그래 좋아…!"

쯔슈안: "그럼 어디 가고 싶은 도시 있어?"


놀라운 친구다. ㅋㅋㅋㅋㅋ 어찌저찌해서 왓츠앱 톡방을 파고, 화요일엔 비가 오는데다 종교개혁 기념일은 휴일이니 문 여는 식당도 없을 것 같아 괴팅엔에서 맛있는 밥이나 먹자고 했다. 같은 이유로 괴팅엔 식당도 문을 안 여니 결국 월요일 저녁에 같이 일식집에 가기로 했다. 이름은 쯔슈안, 난징에서 온 친구였다.


쯔슈안이 맛집이라며 알려준 집은 우리 사이에서 이미 딱히 맛있지는 않은데 가격은 비싸기로 소문난 Busumo였다. ㅋㅋㅋㅋ 경쟁사가 없어서 발전이 없는 건가, 아니면 이게 현지인들에게 먹히는 맛인건가. 무난무난한 맛인데, 내심 기대한 바람에 되려 마이너스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쌀국수는 나름 괜찮았다고 한다. 나는 분짜를 먹었는데, 국수가 쌀국수랑 천사채 중간 느낌이었다. 고기도 시간이 지날수록 식으면서 맛이 더 떨어졌다. 쯔슈안이 어떠냐고 물어서 별로라고 답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쯔슈안을 조금 민망하게 만든 걸 수도 있을 것 같아 미안하다. 쯔슈안이 추천한 집인데. 생각이 짧았네.


앉은 자리가 우리끼리 이야기 나누기엔 애매한 자리였어서 편한 대화를 나누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쯔슈안이 우리랑 무척 친해지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나중에 둘이 커피 마시며 수다 떨자고 하면 흔쾌히 오케이 할 것 같다. 안 그래도 엊그제 Wortschatz 수업에서 선생님이 하는 말을 잘 못 알아듣겠으면 B1반으로 내려가라는 말을 들어서 좀 시무룩했는데, 이 이야기를 했더니 쯔슈안이 그래도 이 반에 있으라며 나를 설득했다. 높은 수준 반에 있어야 더 빨리 실력이 늘지 않겠느냐고. 맞아, 맞는 말이다. 아는 사람도 생겼으니 반에 어떻게든 붙어서 살아남아야겠다 마음 먹었다.


근데 알고보니 쯔슈안은 C1이면서 B2로 내려와 수업을 듣고 있다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쯔슈안은 자전거를 타고 왔대서 가게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런데 몇 분이나 지나서 다시 쯔슈안이 우리를 찾아왔다. 왓츠앱 그룹 아이콘으로 쓸 셀피를 같이 찍으면 좋겠단다. ㅋㅋㅋㅋ 아 정말 엉뚱하고 귀여운 친구다.





쯔슈안이랑 진짜 헤어지고 나서, 버스를 타려다가 이대로 헤어지자니 아쉬워서 어디 더 앉아있고 싶었다. 지연이네 집 가면 딱 좋을 위치인데, 하필 오늘 지연이가 없네. 주변 카페를 검색해보는데 왜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매일 매일 여는 카페도 오늘은 휴업이고, 밤 늦은 시간이라 웬만한 카페가 다 문을 닫은 상태였다. 아니 밥 먹고 가는 데가 카페인데 왜 저녁시간에 문 연 카페가 없을까. 그러다 P-Cafe라는 곳을 발견했는데, 꽤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연다고 나와 있었다. 뭔가 PC방 이름 같아서 찜찜했는데,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게 앞에 가서 예쁜 카페인 걸 확인하고 안도했는데, 지수가 다행이라고 자기는 PC방일 거 같아서 걱정했다 하고, 소연이는 거기에 끄덕끄덕하며 막 웃었다.





나는 라떼를, 지수는 핫초코를, 소연이는 압펠숄레(Apfelschorle_사과주스에 탄산수 섞은 것)를 주문했다. 요즘 뭘 잘못했는지 모카포트로 추출해 마시는 커피가 좀 별로라, 간만에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마시니까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테이블마다 켜진 초 덕분에 카페 안이 따뜻한 분위기라 근사했다.


타지에서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외로움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함께 있으니 덜 외로울 순 있어도, 모두가 자신만의 외로운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 교환을 왔으니 외국인 친구를 많이 사귀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출처 없는 의무감도 모두가 공감하는 바였다. 사실 다 사람 사는 데라고 생각하면, 친구는 사귀고 싶어서 전전긍긍한다고 만나지는 게 아닌데. 신입생 때 사람 만나는 걸로 그 맘고생을 해놓고선 그때 배웠던 것들 다 까먹었나보다.






다시 가벼운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이 카페 야외 테라스도 있고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나중에 요엘한테 좋은 카페 추천해달라하니 이 카페가 세 곳 중 하나로 꼽혀있었다. 우연히 얻어 걸린 카페가 생각보다 좋은 곳이었다. : )





2017. 10. 31.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일! 원래 쉬는 날이 아닌데, 이번 해만 특별히 쉬는 날로 지정되었다. 개이득!


밤에 커피를 마셔서 그런가 아니면 또 못된 버릇이 나온 건가, 또 밤을 새버렸다. 원래 낮에 지수네 집 가서 염색해주기로 했는데, 자기 직전에 안 되겠다 싶어서 약속을 뒤로 미루었다. 해 뜨고 잠들어서 해 지니까 일어났다. 해가 빨리 진 탓에 내가 되게 게으른 애가 된 느낌이다. 아무렴 어때.


남의 머리에 손 대는 건 처음이라 은근히 떨렸다. 내 머리는 탈색도 여러 번 해보고 독일 와서 셀프 염색도 성공했지만, 이게 또 남의 머리 해주려니 망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지수한테, 나는 아마추어니까 잘 나온단 보장 못하고 색깔 못 맞출 수도 있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지수는 한국에서 탈색 없이 할 수 있는 가장 밝은 색으로 염색을 한 상태였다. 수영이도 여기 와서 셀프 염색을 했는데, 되게 밝은 색으로 한 건데도 짙은 밤색으로 나왔다고 그랬다. 수영이 말을 참고해서 지수는 거의 백금발에 가까운 색을 사다놨다. 한국인 머리카락이 이쪽 사람들이랑 다르게 두껍고 진해서 염색약 고르는 것도 참 까다로웠다. 예측할 수가 없으니, 원.


거울로 뒤집힐 거 없이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슥슥 바르니까, 확실히 나 혼자 내 머리에 할 때보다 훨씬 빨리 끝났다. 처음에 바른 부분이랑 나중에 바른 부분 시간 차이가 적게 날수록 고르게 나오니까 빠르게 바르는 게 관건이다. 따뜻하면 약이 빨리 먹으니까 다 발라 놓고 머리에 비닐봉지 하나 얹고 수건으로 덮었다. 지수는 그렇게 막 샤워하고 나온 모양새로 부엌에 가서 짜글이를 데웠다. ㅋㅋㅋㅋ 딱 밥 먹고 나니까 색이 예쁘게 빠져있었다.


너무 너무 잘 나왔는데, 딱 하나 아쉬웠다. 두피 가까운 부분을 나중에 발라야 하는데, 그걸 까먹은 거다. 나는 전체 염색하면서 그냥 다 뿌리고 감듯이 색을 먹여서 깜박하고 있었다. 더 두면 두피가 너무 밝아질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지만 지수한테 지금 머리 감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했다. 밝은 곳에서 머리 잘 되었나 유심히 보지 않는 이상 티 날 정도는 아닌데, 그래도 정수리에 띠 두른 것 처럼 살짝 어둡게 되어버려 아쉽고 미안했다. 괴팅엔은 해가 잘 안 나니까 티가 덜 날 걸 다행으로 여겨야겠다 ㅎㅎㅎ 괴팅엔 날씨 구려서 좋은 점도 있네.



지수가 가족 카톡방에 인증샷을 올렸더니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ㅎㅎㅎㅎㅎ





2017. 11. 01.



혼자 읽으니 진도가 안 나가지던 책을 친구들하고 같이 읽으면 완독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북클럽을 만들었다. 한 명만 모여도 시작할 수 있었는데, 의외로 나 포함 4명이 모여서 딱 좋은 인원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읽을 양을 부담 없을 정도로 정해놓고, 매주 일요일을 마감으로 정해, 지각할 시엔 젤라또를 쏘기로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는 날로 정했더니 오늘 시작하면 12월 6일에 끝나는 일정이 되었다. 바쁘기 전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이거 끝나면 바로 2권 시작하고 싶은데, 크리스마스 휴가가 껴있다보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이긴 하다. 여행 다니다보면 3주씩이나 독일어 쓸 일이 없을테니 차라리 이거라도 읽는 게 나으려나 싶기도 하고.


이번에 읽는 게 벌써 세 번째다. 이젠 독일어를 알고 읽는 게 아니라, 의미를 아는 상태에서 독일어 단어를 만나는 게 되어버린다. 이거 완전 수학 책 1단원 집합 꼴이다. ㅋㅋㅋㅋㅋ






오늘도 어김없이 뷰가 환상적인 Waldweg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