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환학생] Medi O-Phasen Party / Tee Time

2017. 10. 15. 09:50독일생활/Tagebuch


2017. 10. 13.


 Herbst Kurs가 드디어 종강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줄기찬 수업에 저녁마다 짜인 프로그램,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는 느낌이었다. 물론 고등학교 때의 스케쥴이 더 빡빡했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독일어와 영어를 듣고 말하는데 집중한다는게 생각보다 진이 많이 빠지는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역류성 식도염도 오고 마지막 주에는 정말 심신이 너덜너덜해진 걸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시내의 Plan B에서 종강파티가 열렸다. 사실 처음에 안내문에 Plan B라고 적혀있길래, 이미 여기로 예정해놓고 왜 플랜비라 하는 거지, 속으로 의아했다. 적힌 주소로 찾아가서 주변을 돌아보다가 'Plan B'라고 적힌 간판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아, 가게 이름이 플랜비였구나! 들어서자마자 홍대에서 밴드 공연을 위해 대관했던 곳들이 떠올랐다. 살짝 높은 무대, 소박하지만 그래도 있을 거 있는 조명, 작은 바. 스페인, 벨기에, 멕시코, 칠레의 나라 소개 발표가 끝나고 나서 파티가 시작되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 DJ는 우리를 얼른 쫓아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춤추라고 그런 BGM을 틀어줄 수가 없다. 애들이 입을 모아 노래가 너무 구리다고 그랬다. 에우제니아가 DJ한테 좀 힙합같은 거 틀어달라고 요청했을 정도였다.


 Zentralmensa에서 Medi O-Phasen Party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애들하고 쫄래쫄래 그곳으로 향했다. 멘자에서 파티를 한다니 상상이 잘 안 되어서 웃겼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슨 콘서트 입장하는 것 마냥 입구에 줄이 길게 늘어져있었다. 오- 파티 좀 흥하는 모양! 5유로를 내니까 손등에 알약 모양 스탬프를 찍어줬다. 여기가 어디었나 싶을 정도로 Zentralmensa가 확 달라져있었다. 정확히 멘자는 아니고, 멘자로 올라가는 쪽에 살짝 넓은 공간에 무대를 놓고 춤추며 노는 거였다! 같은 반 애들이 플랜비에 오면서 하도 차려입고 안 하던 화장까지 하고 오길래, 여기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던 걸까- 싶었지만, 그렇게 하고 Medi O-Phasen Party에 가는 거였다면 납득할 수 있었다. 옷 보관도 해주고, 바도 있었던 데다가, 노래도 심장이 쿵쿵댈정도로 빵빵하게 틀어주고 있었다.


 한국에서 클럽을 안 가봐서 여기의 분위기를 '개방적'이라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서 키스하고 껴안고 더듬는 커플이 한 둘이 아니라서 조금 충격이었다. 같이 갔던 유럽 애들도 눈살 찌푸린 거 보면 스킨십하는 걔들이 별난 케이스인 것은 같지만, 그래도 와... 같이 춤추고 싶어서 윙크를 하거나 계속 주변을 맴돌며 진득하게 붙어있는 애들도 있고, 춤추는 척 하며 엉덩이 들이대는 애들도 있고, 대놓고 춤추자고 물어보는 애들도 있었다. 프라하에서 밤마다 디스코 찾아다닌 애들도, 디스코에 춤추러 가는 사람 있고 추근댈 상대 찾아 가는 사람도 있지만 거기에서 그렇게 사람 만나 놀면 또 뭐 어떠하리-하던데, 그런 거보면 클럽 문화는 어딜 가든 다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2017. 10. 14.


 장학금 조건 충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언니가 보낸 카톡에 울음이 툭 터져나왔다. 언니가 미국 유학을 다녀오며 그렇게 행복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다. 내가 잊고 있었던 걸 언니가 알려주었다. 그래, 주변 사람들이 내 휴학 생활을 보며, 너는 정말 알차고 성공적인 1년을 보냈구나- 이야기 하지만, 사실 나는 그때 그때 하고 싶었던 거 하다보니 그렇게 행복한 1년이 완성되어 있었단 거, 휴학 끝내면서 얼마나 뿌듯해했는데. 독일에서 무엇을 얻어오려 했는지 내가 금세 잊어버렸구나.


 애들 모두 함께 뚤레뚤레 모여 케익을 나누어먹었다. 파티에서는 술을 마셔도 그렇게 어정쩡하던 분위기가,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으니 하는 말마다 웃음이 터진다. 웃다가 볼도 배도 아파서 힘들어 죽는 줄. 안 그래도 오늘 유튜브에서 영국 애프터눈 티 타임 영상을 봐서, 괜히 거기에 끼고 싶어 나도 밀크티 한 잔 타다 모니터 앞에 앉았었는데, 저녁에 다 같이 이렇게 차와 케익 노나먹으니 마음이 흠뻑해졌다.


 흠뻑해졌다는 건, 마음이 소소한 행복과 만족으로 따뜻하게 젖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