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히읗 x 땡스북스] 활자가 흘러 온 시간, 남겨진 글자의 공간

2017. 8. 12. 01:25문화생활/전시

홍대에서 지하철을 타고 자리에 앉아 인스타그램을 켰다. 팔로우 하는 계정 중엔 폰트 디자인, 타이포그라피, 폰트 관련 잡지/서적 출간 등을 하는 '마켓 히읗'이 있는데, 지금 홍대의 땡스북스에서 전시를 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아, 좀만 일찍 봤더라면! 댓글로 언제까지 진행하는 전시인지 여쭈었더니, 9월 6일까지가 전시 기간이라는 답글이 달렸다. 기간이 넉넉하니 다행, 금요일에 들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재수 작가님이 땡스북스에서 소소한 이벤트를 자주 여시기에, 딱 한 번 밖에 가본 적 없는 나도 왠지 모르게 익숙한 공간이 이곳 땡스북스였다. 다양한 행사를 열기도 하고,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읽고 싶은 책으로 가득한 공간. 내가 만들고 싶어하는 공간과 닮아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주하는 큰 벽에는, 이 전시의 제목이 적혀있다. 

'활자가 흘러 온 시간, 남겨진 글자의 공간'






가만보면 히읗에서 붙여놓은 원도도 있지만, 구경 온 사람들이 붙여 놓은 자신만의 글자 원도들도 보인다.






작은 아크릴 선반에 다양한 종류의 펜들이 있었다.

한 칸 짜리 원도용 종이와, 그것을 눌러주는 자그마한 조약돌.

(조약돌이 이 전시의 핵심 센스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나도 예전에 만들었던 '영원' 레터링에서 '원' 한 자를 그려서 붙였다.

원도를 손수 그려본 것은 처음이라 원래의 형태와는 조금 다르게 그려져서,

다시 그릴까 싶었지만 이미 두 번째 시도였기에 그냥 붙이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전시된 원도 노트를 보며, 손으로 원도를 그리는 건 참 대단하구나,

또 프린트 되어 있는 걸 보는 것과 손으로 그린 걸 보는 게 느낌이 이다지도 다르구나,

혼자 속으로 감탄했다.






이게 바로 그 원도노트다.

처음엔 히읗에서 여는 수업을 들은 누군가의 노트인가 하며,

수업을 들으면 이렇게 그릴 수 있는 건가,

이렇게 세심하고 꼼꼼하게 배우나 싶어 혹했다.

그런데 더 넘겨보니...

전시를 위해 일부 페이지만 예시로 그려 넣은 것 같아서(ㅋㅋㅋ)

그래 당연히 전문가가 그린 거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감탄의 정도가 낮아지진 않았다.






그 옆엔 예전에 텀블벅에서 후원 프로젝트로 올라왔던 활자측정도구-'자'가 있었다.

https://www.tumblbug.com/letterhiut02






조약돌 센스.

몽돌몽돌하고 색감도 아래의 천과 너무 잘 어우러져서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어떻게 이럴 생각을 해냈을까 -






이렇게 예쁜 질감의 돌로.










테이블 아래엔 무료로 배포하는 무가지가 있었다.

예쁜 엽서들이 있으니, 보물 찾기 하듯 잘 살펴보길!






'폰트를 말하는 잡지'라는 이름으로 발간되는 '모임꼴'.

페이스북에서였나, 활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내용이 몹시 궁금했는데, 여기에서 샘플북을 읽을 기회를 얻게 되어 기뻤다.

https://tumblbug.com/moimggol_02






안삼열체로 유명한 안삼열 디자이너의 수필.

"'아마추어'의 어원이 라틴어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부분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리고, 발견하고선 조금 놀랐던 글.

며칠 전 인스타 피드에서 보았던 작품이 실려있었기 때문이다.

@zesstype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는 현승재 디자이너의 글이었는데,

꼭 이분을 직접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혼자 팬심으로 팔로우하고 있는 분이지만...


캘리그라퍼 중에서도 다양한 스타일을 개발하고 시도하는 분들을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분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매 작품 다른 스타일을 들고 오셔서,

감탄을 넘어 경이롭다는 생각까지 하기도 한다.

글을 읽어보니, 어려서부터 그래피티가 뭔지도 모른 채 그래피티를 해왔다고 한다.

정말이지 천상 글자를 그릴 사람이었구나.






히읗을 알게 된 것은 '바람체' 때문이었다.

어쩌다 바람체를 알게 되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폰트만으로 디자인한 에코백을 보고, 그 새로움에 충격을 받았던 건 생생하다.

라이언을 갖다 붙인 모든 게 탐이 나는 것처럼

폰트도 탐이 날 수 있구나 -

굿즈가 될 수 있구나 ,하고.


전시에서 공간 이야기로 은근슬쩍 넘어가기 좋은 타이밍이다.

땡스북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엔 이렇게 다양한 엽서가 진열되어 있었다.

바람체 엽서도 예뻤지만, 그 위에 있는 보태니컬 커버 + 활자로 가득한 엽서도 갖고 싶었다.






서점이라면 으레 쌓아두는 책갈피들.

그치만, 이곳의 책갈피는 광고 같지가 않다.

요즘 사람들은 뭘 다 이렇게 예쁘게 만드나...






여행을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겠다는 로망 + 계획이 있는데,

그 때문에 눈이 갔던 책이었다.

북커버의 그림체만 보아도 여행 드로잉에 최적화된 느낌. 허허헣

어떤 느낌인가 하고 들춰보았다가 얼결에 다 읽어버렸다.

내게도 자신감을 불어 넣는 그림체도 마음에 들었지만,

카페에서 접시 뒤에 드로잉북을 숨기며 그림을 그리다 들켰다는 에피소드를 읽으며 큭큭거렸다.

화가도 어디 가서 그림을 그리려면 눈치를 보는구나!






그러고나서야 알게 된 것이, 드로잉 모로코 책의 저자인 엄유정 작가가 이 책도 썼다는 사실이었다.

같이 드로잉 수업을 들었던 분이 이 책을 읽고 아이슬란드에 가는 것을 꿈꾸었다고 해서 기억하는 책인데,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

이미 모로코 책을 읽은 다음이라, 이 책은 정말 순식간에 홀린 듯 읽어버렸다.

여행을 그림으로 기억하는 건, 어떤 순간을 기억에 반짝거리게 저장하는 더없이 좋은 방법인 것 같다.

필요한 건 이제 나를 설득하는 거겠지! 누굴 보여줄 그림도 아니고, 잘 그릴 필요도 없고, 마음대로 그리면 된다고!

그려보자고!

후!





욕심이 많아서 하고픈 것도 너무 많다.

활자도 더 해보고 싶고, 그림도 그려보고 싶고,

어느 순간엔 국사를 열심히 파보고 싶다가, 또 코딩에 눈이 돌아가고.

뭐부터 해야 할까! 욕심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또 휴학할 수도 없는데. ㅠㅡㅠ